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코나 행 비행기로 환승했다. 수속절차를 밟으려 줄 섰는데, 내 생애를 통틀어 내 주변에 서양인이 이렇게 많았던 건 처음이었다. 영화에서만 봤던 서양인무리 속에 내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앞엔 아직 앳돼 보이는 여성이 큰 백 팩을 둘러메고 작은 가방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는데, 얼굴크기만 한 헤드폰을 목에 걸고 세상무관심한 표정이 무척 힙(hip) 해 보였다. 미국드라마 ‘퍼니셔 시즌2’에 등장하는 (조지아 위검이 연기한) 에이미 같은 느낌으로. 거기서 나는 무심코 재채기를 했는데, 그녀가 휙 돌아보더니 한 마디 해주는 게 아닌가.
“Bless you.”
서구에선 흔한 리액션이라 하지만, 나는 으아! 쿨(cool)하구나! 하고 내적 박수를 쳤더랬다. 사실 퍼니셔보다는 데어데블이 할 법한 말이었다. 나는 할리우드 영화를 꽤 좋아하지만, 특히 사회문제로 다루어지기도 하는 퇴역군인들의 이야기를 좋아라 한다. (퍼니셔는 퇴역군인이 주인공에다 심지어 마블식 안티 히어로물이다.) 전후, 젊은 군인들 중 퇴역한 많은 이들이 그 값으로 공학도가 되거나, 디벨로퍼가 되어 서부도시를 재개발해나갔다는 사실도 퍽 흥미롭다.
어쨌든 공항은 일종의 전이공간이다. 한국인에서 여행객으로 변하는 시공간을 바로 이곳 공항에서 경험하게 된다. 일상에서 날 옥죄던 제약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여행지를 즐기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몸과 마음을 다해 준비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재채기로 영혼이 빠져나갔다가 축복 속에 변화되어 하와이에 돌아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