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밑, 새치 몇 가닥

사람은 책상 아래에도 많은 흔적을 남긴다

by 따심


창가 쪽 책상 밑에서 처음 새치 몇 가닥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 자리의 하루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늘고 긴 머리카락은 그곳에서 버텼을 긴장과 스트레스의 시간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옆자리 책상에는 늘 빈 초콜릿우유 팩이 쌓였다.

업무가 몰릴 때 달달한 걸 찾던 나도 떠올랐다.

복도 쪽 자리에는 우산이 하나씩 남겨져 있었다.

비 오는 날 썼다가, 퇴근할 때 챙길 여유조차 없었던 하루들이다.


사람의 하루는 얼굴보다 공간에 먼저 남는다.

이 사실을 깨달은 건 내가 고객센터와 마케팅을 맡고 있을 때였다.


내가 만든 CS 스크립트로, 전화 설명은 익숙해졌지만

정작 그 공간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다.

'이 공간을 모르는 사람이 쓴 글'이라는 생각,

그래서 주말마다 직접 사무실 청소를 나갔다.


처음 한 달 동안은 먼지만 보였다.

모니터 뒤편, 의자 바퀴 틈, 탕비실의 커피 얼룩.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그저 치워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먼지가 아닌 사람의 하루를 보기 시작했다.


책상 주변에 쌓이는 것들은 그 사람이 평소에 버티는 방식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냈다.

정리된 책상 위보다, 발 밑의 작은 패턴들이 그 사람의 리듬을 잘 보여줬다.


알게 되었다.

청소는 먼지를 치우는 일이 아닌, 사람과 팀이 남긴 흔적의 패턴을 읽는 일이라는 것.


이 경험은 나의 일하는 방식도 바꿔놓았다.

고객센터에서 반복되는 문의가 왜 생기는지,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쌓이고 있는지,

공간을 보면 더 빨리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무실 청소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직장인의 하루를 가장 정확하게 기록한 현장 보고서였다.

그 보고서를 읽는 사람이 되는 것,

내가 주말마다 현장에 나간 이유였다.


퇴근하는 길에 문득 든 생각.

내 책상 아래에는 어떤 패턴이 쌓이고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어딘가에 흔적을 남기며 일한다.

그리고 그 흔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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