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정도전의 일월오봉도와 너 때문에 생긴 제사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무신 출신으로 정치는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정치적 참모를 두고 조언을 구하는데 그 인물이 바로 정도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보통 군사 반란을 통해 정권을 잡은 왕들은 이성계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중국의 무왕은 정권을 잡은 뒤 강태공을 참모로 두면서 홍범구주에 능한 기자에게 국가 통치의 협조를 구한다. 이 과정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무왕의 제안
- 찬성: 강태공, 기자
- 반대: 백이, 숙제
무왕의 제안을 거절한 백이, 숙제는 육각수의 흥보가 기가막혀 노래 가사처럼 수양산으로 도피를 한다.
* 이성계의 제안
- 찬성: 정도전
- 반대: 정몽주
이성계의 제안을 아들 이방원을 통해 '하여가'로 표현하자 정몽주는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단심가'로 답해 결국 이방원에게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한다.
이처럼 반란을 통해 정권을 잡은 군인들은 브레인이 필요했고 제안을 수락한 브레인들은 요직에서 국가 형성을 도왔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건국의 주역은 이성계이지만 조선 정국의 주역은 정도전이다.
유교의 매뉴얼 '경국대전'과 '일월오봉도'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편찬하여 요즘으로 치면 유교 사상에 입각한 '조선 건국 매뉴얼'을 수립한다. 조선경국전은 향후 경국대전이라는 개정판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 첫머리부터 공자왈이 나오며 유교 사상에 따른 정치를 읊어대기 시작한다. 조선경국전을 시작으로 정도전은 유교로 조선을 도배하기 시작하는데 그중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일월오봉도'이다.
일월오봉도는 임금의 자리 뒤에 있는 병풍 그림으로 임금이 항상 이 그림을 보며 유교 사상에 따른 왕의 책임성을 자각하고 나라를 다스릴 것을 망각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 그냥 보면 한 폭의 그림 같지만 이 그림에는 엄청나게 많은 유교적 의미가 담겨있다.
먼저 우리가 유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는 철저한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유교는 세상의 모든 원리가 음양오행에 따라 생성되고 움직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대략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백월과 홍일(일월): 그림을 보면 의아스러운 것이 태양이 2개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태양 2개가 아니라 흰색을 음을 나타내는 달, 붉은색은 양을 나타내는 태양으로 음양오행의 조화에 따른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소나무: 소나무는 영생을 뜻하는 것으로 살기 좋은 낙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양쪽에 흐르는 물: 농사에 필수인 물이 필요할 때 물을 내려줄 수 있는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왕이 기우제를 지냈고 가뭄의 원인은 왕이 정치를 못해 하늘을 노하게 했다 여겨 비가 올 때까지 왕은 하늘에 반성하는 의미로 식음을 전폐하기도 했다. 조선시대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뭄이 들면 왕을 탓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래 물결무늬: 바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왕을 둘러싼 세계를 의미한다.
5개의 봉우리(오봉)
- 가장 왼쪽 봉우리: 태음을 나타내는 봉우리로 사계 중 겨울이고 만물 중 '수(물)'를 의미한다.
- 왼쪽 두 번째 봉우리: 소음을 나타내고 사계 중 가을. 만물 중 '금'을 의미한다.
이 두 봉우리는 음의 기운인 달 밑에 있어 태음과 소음을 나타내고 토를 중심으로 점점 추운 계절이 된다.
- 가운데 봉우리: 세상의 중심으로 '토'를 의미한다. 고로 가운데 봉우리는 곧 임금이다. 중국 황제가 황금색 옷을 입었던 이유도 역시 세상의 중심인 '토'의 색 즉, 흙의 색을 의미하고 세상의 모든 땅이 자기 것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어이없음...)
- 네 번째 봉우리: 소양을 나타내고 계절 중 봄이자 만물 중 '목'을 의미한다.
- 마지막 봉우리: 태양을 나타내고 계절 중 가장 뜨거운 여름이자 '화'를 의미한다.
이 두 봉우리는 양의 기운인 태양 밑에 있어 태양과 소양을 나타내고 토를 중심으로 점점 더워지는 의미이다. 이 그림에는 월부터 일까지 모든 요일이 담겨있고 세상 만물의 이치가 스며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한의학의 사상 체질 역시 음양오행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정도전은 경국대전과 일월오봉도를 바탕으로 조선 모든 것을 음양오행으로 물들인다.
유교에서 온 제사문화
먼저, 우리나라 여자들을 기겁하게 하는 제사 문화가 있다. 이 지긋지긋한 제사 문화는 유교 문화에서 온 것인데 아래 사진처럼 누구 하나는 죽어나갈 정도의 상차림이 정석이었다.
제사는 일종의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의 증거인데 이런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은 종교마다 모두 달랐다.
-샤머니즘 시대: 이승의 삶이 저승에서도 이어지기 때문에 왕이 죽으면 신하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신하까지 생매장하는 악습인 순장이 행해짐.
-고려시대: 이승의 업보가 저승에 반영되기에 살생을 금지함. 악습인 순장이 사라짐.
-조선시대: 귀신을 믿지 말고 부모에 대한 효를 행하는 것이 중요함. 제사를 제대로 지내야 함.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 하나인 '혼비백산'은 이런 유교의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말이다.
-혼비: 혼은 양의 기운으로 날아가고
-백산: 몸은 음의 기운이 되어 땅에 묻힌다.
한마디로 정신이든 육체든 다 빠져나갈 듯한 상황이라는 것.
이렇듯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과 시체를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에서 생긴 것이 혼을 달래는 제사이고 시체를 잘 섬기기 위한 풍수지리이다. 조상에게 제사를 잘 지내고 묘를 잘 써야 후대가 편안하다는 믿음. 이게 모두 유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풍수지리를 보면 모두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하는 걸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는 왜 장남이 메인이 되어 지낼까? 가장 맏이인 장자 즉, 큰아들이 제사를 지내야 하는 이유는 장남이 기가 가장 세기 때문에 조상이 그 기를 느끼고 찾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장자 사상. 그리고 음양의 원리에 따라 낮은 양이고 밤은 음이라 조상의 혼은 밤에 찾아온다고 하여 제사를 밤에 지내는 것이다. 게다가 제사를 지낸 후 다 같이 제사 음식을 먹어야 조상의 복을 많이 받는다고 믿었다. 홍동백서니, 어동육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차례상의 규칙도 음양오행 그 잡채로, 으리으리한 차례상 역시 유교의 기본인 음양오행에 따라 차려져야 했기에 많은 아녀자들의 진을 빼놓았다. 제사상 차리다가 제사상의 주인이 될 정도로 피곤하지 않았을까.
조선 8도의 유래도 유교
조선 8도라는 말이 있듯 우리나라가 8개의 도로 나눠진 것도 조선시대였는데 이 역시 유교의 음양오행을 기반으로 나누었다.
동서남북을 기준으로 5악이 있는데 북악이 백두산, 서악이 묘향산, 남악이 지리산, 동악이 금강산, 중악이 삼각산이라 했다. 이 오악이 둘러싸고 있는 곳을 수도인 한양으로 정하고 나머지를 8개 도(현재의 북한 포함)로 나누었는데 그게 바로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길도 8도이다. 8개의 도로 나눈 이유 역시 하도 낙서의 낙서에서 비롯된다고 3편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이렇듯 조선 8도의 분할은 유교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유교는 조선을 떡칠하고 있던 사상인 것이다. 그리고 수도까지 포함하면 총 9도인 셈인데 유교의 음양오행에서 짝수는 음이고 홀수는 양이기 때문에 양의 기운을 나타내는 9를 상징하기 위함이다.
이미 지난 역사이지만 유교가 여전히 현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음 편에는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쓰고 있는 유교적인 것들을 좀 더 많이 풀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