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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탈 May 28. 2022

융통성 없는 며느리

큰 걸 바라지도 않는다.

# 융통성 없는 며느리


산골로 날아든 도시 촌놈들은 공통점이 있다. 남성 DNA 때문인지 로망이 작동한 것인지 아니면 도망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남성이 대부분이다. 이런 양반들을 싸잡아 철없는 남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가끔 운 좋은 친구들은 마나님을 모시고 내려온다. 복 받은 사람들이다. 부럽기 짝이 없다.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산골이다 보니 쉽게 친해지고 끼리끼리 놀기도 한다. 며칠 전 기타 동아리 형님을 통해 또 다른 형님을 소개받았다. 


촌구석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낮술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날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와인 한 잔씩 걸치고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눈다. 알고 보니, 이 양반은 위에서 말한 행운아 중 한 명이다. 부부가 효심이 지극했던지 자식에게 본보기도 보일 겸 연로하신 어머님을 모시고 살아간다. 뻔한 내용이지만 서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다가 뻔하지 않은 하소연을 듣고 전해 본다.     


이 양반은 귀농이 아닌 귀촌이어서 농사랄 것도 없는데, 어쩌다가 아내가 어깨 수술을 받게 되었다. 입원 전 두 아들에게 사전 통보를 했는데도 반응이 없자 오롯이 본인이 병간호를 하게 되었다. 병원 간이침대 잠자리에 지쳐가던 중 용기를 내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눈치가 보여 며느리에게는 전화도 못 하고, 상대적으로 만만한 아들에게 전화한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엄마가 수술했는데 전화도 없느냐,라고 나무랐다. 역성이 효과가 있었는지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님 죄송해요. 아이들 때문에 시간이 통 나질 않네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내가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 길에 차 안에서 아내가 하는 말이 “우리 며느리는 참으로 융통성도 없더이다. 전화하지 않은 것보다 더 괘씸하네요.” 사연은 이러했다. 어느 날 기다리던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내용인즉 “어머니 죄송해요. 전화를 잘못 걸었네요. 삐~~~"    


낮술 때문인지 분명치 없지만 이 양반 눈가가 붉어진다. 어찌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나도 아들이 있다, 라는 허접한 위로 말을 날린다. 이날 늙수그레한 남자 세 명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늙으니 서럽다. 아들 다 필요 없다. 딸이 있었다면 이런 서러움은 덜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모계사회로 바뀐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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