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디 살리 Carlos Di Sarli의 스타일과 왼손의 비밀
유명한 뮤지션 중엔 시력 장애가 있는 사람이 꽤 많다. 아트 테이텀 Art Tatum과 레이 찰스 Ray Charles, 스티비 원더 Stevie Wonder, 그리고 멜로디 가르도 Melody Gardot까지. 탱고 신에서도 그런 뮤지션이 하나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오케스트라 리더, Mr.Tango로 불리는 마에스트로. 바로 카를로스 디 살리 Carlos Di Sarli다.
언제나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디 살리.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내 가게에선 연주 못 한다’는 카페 주인과 싸우다가 쫓겨날 뻔하기도 했던 디 살리. 그가 앞서 완전히 앞을 못 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역시 남 못지않은 사연이 있다.
디 살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00km가량 떨어진 바이아 블랑카Bahia Blanca에서 태어났다. 바이아 블랑카는 여러모로 디 살리에게 아주 중요한 곳이다. 이 곳에서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첫 번째 오케스트라를 결성했으며, 동명의 곡을 발표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동시에 이 곳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에 평생 선글라스를 껴야 하기도 했다. 13살 때 디 살리는 아버지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총기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다.
그 상처와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 더해져, 평생 검은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디 살리의 연주를 듣고 있자면, 특히 왼손의 화려한 연주를 듣고 있자면, 시력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좋은 시력을 가진 게 뮤지션에게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카를로스 디 살리는 탱고에 입문하면 반드시 접하게 되는 이름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탱고 워크숍에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다. 탱고 몇 곡을 선정해 다양한 오케스트라의 스타일로 합주를 하는 게 기본 내용인데, 그때마다 빠지지 않던 게 카를로스 디 살리 오케스트라의 곡이었다. 상당수의 참가자가 아마추어 연주자인데도, 리허설 몇 번 만에 그 스타일을 어느 정도 흉내 내고 있었다. 탱고를 추는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그들 역시 비기너일 때 다 살리 곡으로 스텝을 배운다고 한다. 연주든 춤이든 초심자에게 다 살리 스타일을 권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쉬워서? 아니면 유명해서?
난이도와 유명세. 둘 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곡의 구성과 코드 진행은 비교적 단순하고, 템포는 비교적 느린 편이며, 악기별 솔로 파트가 거의 없다. 물론 제대로 연주하자면 지켜야 하는 디테일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속사포 랩처럼 쏟아내는 반도네온의 배리에이션과 조금만 실수해도 티가 확 나는 솔로 연주 부담이 없으니까 초심자가 연주하기엔 수월한 것이다. 적어도 피아니스트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디 살리의 유명세는 어떤가. 그가 활동한 193-40년대는 아르헨티나 탱고의 황금기라고 불린다. 당시엔 수백 개가 넘는 탱고 오케스트라가 있었고, 그 와중에 디 살리는 한창 일해야 할 때 무대를 떠나 공백기를 몇 년 갖기도 했다. 1940년, 디 살리가 다시 복귀를 하자마자 대중은 그를 “탱고의 제왕 El Señor de tango”라 불렀다. 이것만으로도 그의 명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이유만으로 디 살리가 여전히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디 살리가 특별한 이유는 그의 스타일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편곡 스타일과, 그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완성하는 피아노 연주 스타일 모두.
일단 그의 편곡은 한번 들어도 귀에 팍 꽂힌다. 몇 번 디 살리 오케스트라 곡을 듣고 나면, 수십 개의 탱고곡을 듣다가도 디 살리의 곡을 바로 찾아낼 수 있을 정도다. 수백 개의 오케스트라가 활동하던 시기. 그의 음악은 아주 확실하게 대중의 귀에 명중했고,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워지지도 않는 지문을 남겼다.
디 살리의 편곡은 후기로 갈수록 복잡해지긴 했지만, 대체로 심플하다. 작품을 한번 들어보자. 앞서 얘기한 디 살리의 대표곡, Bahia Blanca.
일단 곡의 구성은 단순하다. A 파트와 B 파트로 나뉘어 있고, 두 파트가 번갈아 가며 연주될 뿐이다. 마지막에 가서 바이올린의 멜로디 변주가 있긴 하지만, 극악 난이도의 반도네온 배리에이션이나 솔로 연주는 없다.
하지만 구성은 단순할지언정, 각 멜로디를 연주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바이올린이 레가토로 멜로디를 노래하면, 반도네온은 스타카토로 대비를 주고. 풍성한 포르테의 사운드가 울린 직후엔 조용한 피아노의 사운드로 또다시 대비를 주고. 계속 이런 식이다. 정반대의 느낌이 반복해서 교차하니, 단순한 구성이라도 듣는 게 지루해지진 않는다. 물론 연주하는 입장에서도 그 특징을 잘 살리는 게 까다롭지만 재미있기도 하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초보자 대상의 워크숍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게 아닐까.
후안 카를로스 코비안 Juan Carlos Cobian이 작곡한 Mi Refugio, 디 살리 오케스트라 1941년 녹음 버전
오스발도 프레세도 Osvaldo Fresedo가 작곡한 El Once, 디 살리 오케스트라 1946년 녹음 버전
이렇게 몇 개를 들어봐도 곡이 갖고 있는 느낌은 비슷비슷하다. 크게 복잡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다. 대비를 이루는 요소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건 누구? 바로 그게 피아노 앞의 카를로스 디 살리다.
디 살리 오케스트라 곡에서 중요한 건 사실 바이올린이나 반도네온, 혹은 베이스가 아니다.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피아노다. 다시 곡을 들어보자. 바이올린과 반도네온이 주거니 받거니 여유롭게(?) 연주를 하고 있을 때, 피아노는 혼자 바쁘다. 멜로디 사이사이의 빈틈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은쟁반에다가 작은 구슬을 떨어트린 것 같은 섬세한 피아노의 소리가 곡을 쉼 없이 장식하고 있다.
더욱이 피아노는 스윙을 만들어낸다. 피아노의 왼손에 집중해서 들어보면, 그가 사운드의 강약을 조절하고 악센트를 주거나 빼고, 멜로디를 밀고 당기면서 ‘프레이징’ 작업을 하고 있단 걸 알게 된다. 그 덕에 오케스트라의 다른 악기들이 다소 단순한 연주를 하고 있음에도 곡이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마법의 왼손'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던 디 살리의 피아노 연주. 후기 곡으로 갈수록 그 왼손의 테크닉은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특히 1940년대 이후 완성된 그의 레이백 (프레이징) 스타일은 정말 환상적이다. 느린 템포의 곡을 간드러지게 연주하는 그의 스윙은 그 어떤 꿀성대보다 감미롭다.
1950년대의 디 살리 오케스트라 곡을 듣고 있자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 그래 이게 탱고지, 하면서 난 이 마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낀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지휘봉 없이 오케스트라를 전두 지휘하던 카를로스 디 살리. 나는 이 Mr. Tango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디 살리의 유명한 일화를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56년, 디 살리가 은퇴를 하기 겨우 3년 전. 이 대단한 마에스트로의 오케스트라에 새로 들어온 연주자가 물었다.
“선생님, 어떤 스타일로 연주해야 할지 알려주시겠어요?”
그러자 디 살리가 대답했다지.
“여러분은 그냥 악보를 보고 쓰여 있는 대로 연주하시오. 스타일은, 내가 만듭니다.
(Ustedes toquen lo que está escrito. El estilo lo hago yo)”
당시 디 살리는 병으로 몸이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아쉬운 점은, 그가 생전에 자신이 피아노 치는 것을 절대 녹화하지 못하게 했단 점이다. 누군가 자기 뒤에 가서 서기만 해도 연주를 멈췄다고. 며느리에게도 소스의 비밀을 안 알려준 마복림 여사님처럼... 디 살리 역시 자신의 영업비밀(!)을 밝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에스트로는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의 스타일의 비밀은 음반으로만 전해질뿐이다. 이제 그 왼손의 비밀을 알려면 우리 말학들이 앨범을 수십 수백 번 듣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디 살리 역시 시력에 장애가 있었으니, 귀로만 연구하는 것을 어디에 대고 불평할 수도 없고.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의 곡을 손쉽게 찾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다고 해야겠다.
덧 1.
디 살리의 편곡 스타일 - 바이올린이 유니즌으로 멜로디를 부르고, 반도네온이 화음을 넣는-은 당시 디 살리의 녹음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녹음 시설이 좋지 않던 시기이기도 했고.. 일단 디 살리 스튜디오의 사진을 보자.
사진상 좌측에는 피아노와 베이스가 있고, 두 악기는 마이크 한 대를 공유한다. 피아노의 우측으로는 반도네온이 두 줄로 앉아있고, 그들에게도 스탠드 마이크 한 대. 바이올린은 가장 우측 끝에 역시나 두 줄로 앉아있고, 마치 지미집 카메라처럼 마이크가 위에서 바이올린 소리를 녹음한다.
일단 이 배열은 일반적인 탱고 오케스트라와 사뭇 다르다. 보통은 반도네온이 앞줄에 앉고, 바이올린이 뒷줄에 선다. 그래야 피아니스트(주로 오케스트라의 리더)는 베이스, 제1반도네온, 제1바이올린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니터 스피커란 게 없던 시기. 디 살리 오케스트라처럼 배열을 갖추면, 피아니스트는 바이올린의 소리를 제대로 듣기가 어렵다. 원래가 반도네온의 소리가 바이올린보다 큰데, 바이올린이 멀리 있으까지 하니 말이다. 디 살리가 연주 중엔 바이올린의 멜로디를 제대로 듣기조차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니 바이올린은 유니즌으로 멜로디를 강조하고, 반도네온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백그라운드 소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정말 이게 이유였는지는 디 살리 본인만 알겠지.. 너무나 많은 비밀을 남겨두고 떠난 마에스트로여.
덧 2.
디 살리가 탱고 신에서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쌓은 건 1926년 오스발도 프레세도 Osvaldo Fresedo와 함께 하면서부터이다. 디 살리는 프레세도의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후 그에게 헌정하는 곡을 짓기도 했다. 마침 5월 5일이 프레세도의 생일이라길래 기념으로 그 곡을 함께 남긴다. (얻어걸림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