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무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사탕 Jun 20. 2023

꼼지락이 나를 살렸다

새벽에 일어나 다짐을 적고, 책을 읽으며 희망을 채워 넣었다.

매일 하다 보니 당연한 루틴으로 적응되기 시작했다.

중간에 하나라도 빠지면 뭔가 허전했다.

그래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했다.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기 시작하니 하나씩 더 늘려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꼼지락을 시도했다.


영유아 두 명에 전업주부로서의 기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코로나라는 특이사항 덕분에 바로 취업을 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무엇보다 돌봄의 공백은 나의 탈출을 어렵게 만들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시급한 문제부터!

들어올 돈이 없다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살림에 취미는 지금까지도 없지만 나의 취향 따위는 사치였을 뿐이었다.



두 아이 모두 천기저귀를 사용했다.

한 번도 시판 이유식을 사 먹인 적이 없었다.

신혼 초부터 맨바닥에서 시작했던 터라 금전적인 부분이 가장 컸다. 하지만 그나마 나에게 남아있던 자존심까지 던져버리고 싶지 않았다. 친환경과 모성애라는 포장지를 갑옷처럼 두르고 버텼다.


내 몸이 쉽게 망가진다느니, 미련하다느니 등의 주변의 한마디 들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소 미련했지만 매번 불린 쌀을 갈아내고 체에 밭치고, 매일 먹여야 할 식단표를 만들어 계획을 잡고 부엌데기로 살았다.


코로나 19라는 특이사항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첫아이의 이유식을 만들면서 식단표도 있었고, 천 기저귀 또한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이미 준비물이 다 갖춰져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첫 아이 때보다는 능숙하게 척척 해낼 수 있었다. 다행히 똥손인 엄마 작품을 잘 먹어 준 고마운 아가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내 집에 들어온 이상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식재료들을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책을 읽으며 아이들 이유식과 각종 요리를 배웠다.


계란프라이 하나 할 줄 알던 내가 밥상이라는 것을 차리게 될 줄 알게 되었고, 라면 물조절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가 국의 간까지 맞출 줄 알게 되었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기억에서 사라져 상해 버리는 식재료가 없도록 냉장고지도를 만들어 관리를 했다.

먹을거리가 없다는 투정 대신 자투리를 이용해 비빔당면, 삼각김밥, 야채토스트 등 다양하고 간단한 것들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없는 솜씨여도 늘 엄지 척해주는 남편의 지지와 엄마가 만들어 주는 것에 최고로 맛나다고 추켜올려주는 두 아이의 격려에 버틸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려와 코바늘 뜨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족한 생활비를 채우고자 당장 바깥으로 나갈 수 없기에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도 했다. 손으로 하는 것은 죄다 못한다 여겼던 나를 뒤로 한채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센스도, 재주도 없었지만 재료를 사서 하나씩 꼼지락 거리다 보면 어느새 완성되어 있는 알록달록 수세미들.

사업으로 나가기에는 한 땀 한 땀 만들어 개당 1~2천 원씩 지인들에게 팔다 보니 거나한 수입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 우유 한 팩, 당근 몇 개 정도는 살 수 있었다. 


수세미 뜨기, 집밥 먹기, 엄마표 놀이, 미니멀라이프 등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뭐든지 하려고 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간혹 멈칫할 때에도 있었지만 들이대서 손해 보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시간이 지나 코로나의 위협은 여전했지만 사람들은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책 좋아하는 나와 엄마가 읽어주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

그 무렵 도서관에서는 도서 대출만이 가능할 정도로 문을 열기 시작했다. 나의 책사랑은 이곳에서 불씨가 타올랐다.

각종 육아서나 자기 계발서에서는 책을 직접 구입하라고 연신 쓰여 있었으나 교통비조차 부족한 상태에서는 사치였다. 그랬기에 더욱 도서관 문이 닳도록 책을 빌려 날랐다. 새로 나온 책은 출판사 등에서 진행하는 서평 이벤트를 통해 간간히 충족했고, 대부분 도서관을 통해 조달했다.


안된다며 주저앉기보다는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알려주는 책들을 골라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상상하는 미래의 색상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간절히 원한다면 온 우주가 들어줄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