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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Aug 21. 2023

길 끝에 있는 나만의 빛

어느 날 꿈을 꾸었다.

푸른 잔디 위에 길게 나있는 1차선 포장도로.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이었으나 무언가 계속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형체는 보이지 않았으나 귀신 또는 괴물이라는 마음의 확신이 있었다. 그 무언가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압박감은 이미 두려움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어디에라도 내 몸을 숨겨야 했다.

하지만 드넓은 초원 위에는 내 한 몸 가릴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작은 돌멩이조차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욱 무섭게 만들기 시작했다. 급하게 사방을 둘러보니 넓게 펼쳐진 평원 끝에 자리한 울창한 숲이 보였고, 이내 그쪽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저쪽에만 가면 숨을 수 있어'


단순하지만 명확한 목표를 향해 연신 발을 놀렸다.

하지만 꿈속의 나는 아무리 발을 놀려도 속도는커녕 물속을 걷는 것보다도 더 무겁게 나아가지 못했다. 점점 조여 오는 추격자의 기운은 제대로 한 발을 내딛지 못할 무력감과 함께 절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젠 다 끝이야'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과 앞으로 갈 수 없다는 혼란의 공존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다짐은 점차 포기로 향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상황에서 빠르게 놀리는 다리의 힘은 풀려갔고 '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에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속도는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힘을 빼면 뺄수록, 천천히 걸으면 걸을수록 속도는 반비례했다. 결국 마음을 편하게 먹으며 한 발작씩 내딛던 걸음은 절대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 같던 숲 속의 이미지. 어느새 손톱만 한 작은 브로콜리의 나무들이 내 눈앞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고, 뒤에서 나를 쫓아오던 형체 없는 무언가의 존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새까만 터널 같은 숲 속 길을 걸으며 갈등했다.

하늘에 해가 떠 있는지 알 수 조차 없는 미지의 세계. 멈추지 않는 발걸음과는 상관없이 마음속은 내심 앞으로 나아갈지, 뒤로 돌아 평화로워 보이는 초원으로 가야 할지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뒤를 돌아간다면 밝음은 있으나 예전처럼 계속되는 안전은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숲길 끝, 아니 숲 속 안에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용기를 내어 앞으로 가기를 결정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산짐승들의 무서운 울음소리는 스스로를 위협했으나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억울해서라도 나아갔다. 결국 숲 안의 오솔길 끝에 작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에 그 밝음을 향해 뛰어갔고, 영화같이 그 길의 끝에서 만나는 밝은 빚은 새하얀 백사장과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푸른 바다가 있었다.


'여기가 세이프존일까?'


바닥에 밟히는 고운 모래는 왜인지 모를 안도감과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처음 보는 공간. 

마치 그동안 나를 무섭게 만드는 모든 것을 가짜라고 말해주는 듯 시원한 바람과 함께 그곳에서 물놀이를 하던 가족들이 보인다.


바비큐파티를 하는 부모님과 바닷물에 흠뻑 젖은 채 남편과 함께 깔깔거리며 놀고 있는 아이들.

마치 애초부터 나와 함께 놀고 있었다는 듯 이질감 없는 그들의 모습에 얼굴도 모르는 괴물의 두려움은 사르르 녹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훈훈하게 꿈을 꾸고 난 이후 잠에서 눈을 떴다.


분명 모두들 작은 방에서 일렬로 누워서 잠을 청했으나 우리 네 식구, 참으로 자유분방하게 꿈나라를 탐방 중이다. 둘째의 작은 발은 내 얼굴 옆에 놓여 있고, 둘째의 묵직한 팔은 다리 위에 놓여있었다.


별로 특이할 것 없는 나의 꿈은 무서움, 두려운, 행복함, 편안함이 공존했으나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싶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여전히 형체조차 파악되지 않는 무언가로부터 쫓기고 있는 것일까,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숲 한가운데 들어와 있을까. 정확한 것은 숲을 지나 수평선이 보이는 평화롭고 가족이 함께 웃으며 놀고 있는 그 해변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로운 집의 이사 준비와 내가 처한 환경들에 대한 압박감이 반영되어 그러한 꿈을 꾸었으리라 조심스레 유추해 본다. 평화롭게 보였던 꿈 속에서 불안하고 무서웠던 초원과 숲 속 길. 결국 나를 해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무것도 덮치지 않았다. 급하게 발을 놀려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오히려 발걸음을 천천히 했더니 속도는 올라갔다. 서두른다고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한 걸을 씩 천천히. 멈추지 않고 꾸준히 가다 보니 흠잡을 데 없는 밝은 빛을 만날 수 있었다. 내 인생 또한 그러하리라 믿어본다. 서두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모름지기 내가 가는 길이 지금은 보잘것없고 심리적 두려움이 가득할지라도 멈추지 않고 싶어 진다. 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진다. 


지금 서 있는 곳이 평원이라 할지라도 멈추지 않으면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당연하게도 빛나는 영광을 얻기까지는 어두운 터널을 건널 수도 있다. 하지만 그조차 포기하지 않는다면 달콤한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리라. 그리고 꿈속의 엔딩처럼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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