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쁘도록 컨디션 좋고 날씨도 화창했던 어느 주말의 오후.
망했다.
나는 완전 쫄딱 망했다.
예상치 못했기에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고, 그다음에는 눈물이 났다.
한참을 쏟아내어서 그랬을까.
정신을 차린 이후에는 이유도 모른 채 이렇게 다 털린 상황에서 허탈함과 원인을 찾아 헤매었다.
나의 꿈과 미래, 그리고 사랑이 한데 모여있던 나의 전 재산이었다. 아무리 먹고살기 어렵다 할지라도 살아있는 순간이 힘들어도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얼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때에 다 털어갔다.
충격적인 상황을 마주한 채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핸드폰을 들었다. 나의 의지로도 멈추지 않는 부들거리는 손가락들을 들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범인이 아니었고, 출근하던 그는 방향을 돌려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차가운 방바닥에 최대한 웅크리고 앉아 훌쩍대는 나를 보고 달려왔다. 그러곤 나를 꼭 안아주었다.
방 밖에 있는 아이들이 들을까 차마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끅끅거리며 눈물만 흘리던 내가 그의 품을 만나 엉엉 거리며 오열을 시작했다.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로지 '어떻게' 단 한마디. 연신 같은 단어를 연신 내뱉는 것뿐이었다.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수도 그 외에 다른 단어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쏟아내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그의 품 안이어도 드라마처럼 마음이 놓이는 일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무에게도 말 못 하는 일을 단 한 사람, 남편에게는 털어놓을 수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눈물로 범벅이었던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제야 한 마디를 건네주었다.
"괜찮아.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니까 괜찮아."
사실 그 말은 맞았다. 사람이 다치거나 생명이 위독한 것은 아니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전혀 위로가 되지도 않고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이후 나는 한참을 더 울고 그는 나를 지켜주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늦었지만 그는 다시 출근을 실행했다.
큰 충격을 받은 내가 너무나 걱정이 되었던 그는 그날따라 유독 한 시간에 한 번씩 전화를 했다. 멘털이 나간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나는 몸을 일으켜 저녁 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멀쩡한 척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을 제외한 세상의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어떤 글에서 불행을 마주하는 사람의 심리 5단계를 본 적이 있었다.
1단계 : 부정
2단계 : 분노
3단계 : 협상
4단계 : 우울
5단계 : 수용
그 글을 보았을 때에는 그저 웃고 넘기기 바빴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 돌이켜보니 내가 그 길을 차곡차곡 따라가고 있었다. 마치 성경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라 하려는 성실한 신도같이 말이다.
처음에는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렇게 외면했다. 그저 그의 품에서 한없이 울며 쏟아냈었다.
두 번째는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세상이 나에게 이래!'라고 외쳤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 홀로 침대에 울면서, 거실 창밖에 먼 산을 쳐다보면서 원망만 했다.
세 번째는 '하느님이 더 큰 무언가 주시려고 이렇게 힘들게 하시나? 내가 뭘 잘못한 게 있어서 벌을 주시는 건가?' 이과 출신으로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들어가며 일련의 사건들의 이유를 창조해 내고 있었다.
그렇게 3 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데에 무려 한 달이란 시간을 사용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의 공간을 바라보면 처음 상태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 현타가 밀려왔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며 끊이지 않는 일.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임무가 존재했다.
네 번째 단계고 진입하게 되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니까 드러내선 안돼'
아이들의 친구 엄마들과 웃으며 이야기도 하고 커피도 마셔가며 어제와 똑같이 평범하고도 행복한 가정을 둔 주부의 모습을 연기하게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뭐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생각해 보니 벌써 3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가 아직도 네 번째 인지 마지막 단계인지 확실하게 구분 지을 수가 없다. 누군가 나름의 단계를 정해놓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다 마음의 흐름인데 몇 월 며칠이라고 단정 지을 수가 있을까. 어쩌면 1~5단계 사이를 꾸준히 오락가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금은 조금은 나아졌다고 믿는다. 적어도 멈춰서 계속 울고만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내 마음 심리가 어떻든, 정신 건강이 어떻든...
나는 망했다. 마음속 영혼의 전 재산이라고 부르던 것을 잃어버렸다.
그동안 마지노선이라고 여기던 모든 것들이 어느 날 어떤 시점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어떻게든 일어서보려고 했다.
처음 출발선에서부터 시작해 보자고 뇌피셜을 해 보았다. 그러나 현실은 '0'이 아닌 지하 깊은 곳인 끝없는 마이너스였다. 아무리 노력하고 다시 생각해 보아도 자기 최면의 끝에는 혼자 울고 있는 초라한 내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일어서야 한다'라고 다짐하며 억지로 울타리를 만들어 충격과 슬픔을 집어넣었다. 아마 신이 주신 축복이라는 망각의 힘이 많은 것들을 잊게 해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 난 부분은 완치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이제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우습게도 쌓아놓은 커리어도 특별한 재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심신이 고달파도 지금의 웅덩이에서 빠져나오려면 정신부터 바짝 차려야 된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상기시키는 중이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을 골라서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았다. 며칠이 지나자 깨달은 점이 있었다. 나는 우습게도 할 줄 아는 재능이란 것은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책 읽기.
빈 종이에 한 단어를 써 놓고서 황당함에 헛웃음이 지어졌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책 읽기라니...
'시작이 반'이라는 명언이 떠올랐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문고리를 열어주듯 나는 신체 건강하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그때부터 청소, 설거지, 커피 타먹기, 노트북 켜기, 도서관 가기 등등 보잘것없는 것들도 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맞다.
사지 육신이 다 멀쩡한데 그동안 못 하는 것에만 이렇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었나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질러진 책장, 더러운 바닥, 쌓여있는 빨랫감, 한적한 식기건조대와 비교되는 그릇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싱크대까지... 마음이 힘들다는 핑계로 외면해 왔던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상황까지 왔는데도 남편은 그동안 나에게 잔소리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고마웠다.
그래.
이제 방황을 끝내자.
우울한 네 번째 단계에서 벗어나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들어서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적어도 마음이 다쳤다고 이 꼬락서니에서 계속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되뇌어본다. 이미 고개를 들기만 해도 지금의 상태가 얼마나 어그러져있는지 눈에 보이기에 엉덩이만 일어서면 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