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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크립씨 Feb 12. 2023

VII: 대중 역사가

"과거를 마주하며"

2019년에서 2020년으로 해가 바뀌고 있을 때였다. 해가 바뀐지 얼마되지 않아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전 세계 각지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꽤 빠르게 전 세계로 퍼졌다. 거리가 휑해질정도로 세상이 조용해질 때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백신들이 소개됐다. 백신 그 자체만 사람들에게 전해진 것만이 아니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백신의 원리까지 연구소 담을 너머,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대중 과학자'들이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백신이라는 것의 원리부터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새로운 백신은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연구소의 담을 넘고 세상에 나온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처음이 아니었다. 자연과학, 공학 등으로 이루어진 이 특정 종류의 과학은 대중들에게 이미 전달되고 있었다.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공유했을 뿐더러,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주로 활자와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지식들은 전해졌지만, 글자와 글은 '일정' 교육을 받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쇄술이 나온지 몇 백년이 지났으나, 전 세계적으로 문맹률이 줄어든 것이 다소 최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지식은 한동안 대중들과 만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문맹률의 비약적인 감소와 더불어, 근현대 사회에 확산된 대중교육 덕분에 대중들은 어렵지 않게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계층과 성별 등에 따라 기회가 차등적/차별적으로 주어지는 현상은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과거에 비해서 지식은 대중들의 생활속으로 바야흐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에 '앎'을 전달하던 과학자들은 책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앎'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대중 과학자들이 탄생한 것이다. 대중들이 복잡한 과학내용을 정확히 이해했는가는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주목할 점은 지식을 접근하는 사람들의 범위가 빠른 시간안에 넓어졌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앎'에 접근할 수 있음에 관심을 보였고, 또 열광하기도 했다.


          대중들은 자연에 대한 이해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시작하며, 인간 사회에 대한 이해도 함께 추구하기 시작했다. 자연의 원리와 섭리를 찾아 헤메는 과정을 즐기며, 동시에 사람들은 자신들과 선조들이 살아온 시간과 경험에 대한 의미/가치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하게, '지나간 시간들'도 글자와 글을 누릴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고 읽혀졌다. 그러나 문맹률의 감소와 함께, '역사'도 먼지 자욱한 도서관이나 서고를 넘어 대중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역사에 관련한 대중 지식의 확산을 더욱 쉽게 찾을 수 있다. 많은 역사 교양서뿐만 아니라, 역사를 주제로 한 다양한 시각매체들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대중 역사가'는 한발짝 더 범위를 넓히며 재탄생했다.*

*'대중 역사가'에서 '대중 역사'는 소위 말해 '민중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해석을 대중들과 사회에 제시하는 사람들을 의미함을 밝혀둔다.




          시간이 생길때면 역사와 관련한 여러 매체들을 챙겨보게 된다. 그러면서 종종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들은 이런 것들이다. 그것들에 대해 간략한 생각을 밝히고 싶어서 간만에 브런치를 켜게 되었다. (i) 어떤 것들이 설명되어야 하는걸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설명되고 받아들여져야 하는걸까? (ii) '대중 역사가'와 '자격'의 관계는 무엇일까? (iii)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대중에게 필요한 존재일까? 이것에 대한 짧은 생각들은 아래와 같다.


(i)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기초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흩뿌려져있는 과거를 특정 주제나 사건으로 정리한 뒤, 그것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전달하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이것에 대해 이미 긴 세월동안 역사학자들의 논의가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은 역사라는 것은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가버린 과거는 셀 수 없이 많은 호모사피엔스종의 태어남, 활동, 그리고 죽음의 나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개인적/집단적 삶과 활동에 대한 의미가 부여될 때, 그것은 역사로 재탄생한다. 주의할 점이라면: 이 과정에서필연적으로 각양각색일 수 밖에 없는 주관이 들어가기 때문에 과거를 해석하고, 나아가 그 해석을 '절대적인' 의미로서 전달해서도 그리고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ii) 이 질문은 이전의 문제보다 대답하기에 더욱 어려운 문제이다. 대중 역사가의 자리에 위치한 사람들은 소위 말해 '자격'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사회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졸업장이든, 대중의 인기를 끄는 책이든, 혹은 일련의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통해 '자격'을 부여한다. 이들은 대중 역사가가 될 수는 있지만, 그들이 가진 자격들이 '대중 역사가'가 되기 위한 자격으로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이러한 자격들이 절대적인 신용을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절대적인' 해석에 대한 우려를 다시 상기하며 이야기하자면: '꽤 멋져보이는' 자격들을 가진 이들의 해석들은 이따금씩 '절대적인' 해석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정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대중 역사가'가 되기 위한 자격 같은 것은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이 위험천만한 사태도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도 역사적 사건을 다룸에 있어서 절대적인 가치는 가지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개인으로서 내비치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의견'이라는 가치와 자격만을 가진다.)


(iii) 우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기 전에 누가 '대중 역사가'가 될 수 있는 가에 대한 생각이 먼저 스친다. 소위 말해, 특정 트레이닝을 거쳤기 때문에 '자격'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종종 신뢰받곤하는 역사가만이 '대중 역사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결국 하나의 상대적이며 개인적인 해석은 절대적인 해석으로 둔갑할 것이기 때문이다. (ii)에서 언급된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누구나 '대중 역사가'가 될 수 있다. 나아가,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굳게 믿는다. 나는 역사라는 것은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기록하는 것이기보다 '왜'를 위시한 해석을 기록하는 행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될 수 있는 '대중 역사가'는 사회에 필요한 것일까? 짧디 짧은 대답은 그렇다이다. 사람들에게 꽤 익숙한 사실에 또 다른 하나의 의견을 더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 무엇보다, 존재했었던지도 모르는 이미 먼 시간에 묻힌 사람들과 그들의 경험을 오늘날의 타인들에게 소개하며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빛을 받지 못하고 있던 이들을 '역사'로 변모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필연적으로 '대중 역사가'가 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항상 머릿속을 돌지만, 희미한 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대중 역사가'라는 주제에서 나는 절대적인 권위에 대한 의심, 우려스러움 그리고 두려움 등의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다시금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모든 역사적 해석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이며, 동시에 어떠한 '멋져보이는 자격'도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대중 역사가'가 '절대적' 존재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대중 역사가'의 필요성은 의심하지 않는다. 이들은 생명력을 잃어가는 '지나간 일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것이다. 


          요즘은 훨씬 많은 이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역사라는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 '앎'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한 발자국 더 나아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각자는 불규칙하게 퍼져있는 조각들을 각자의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바탕을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로 재구성해보는 것을 시도해야만 한다. 그렇게 제각각의 과거를 만들어가며, 모두는 서로에게 '대중 역사가'가 되어가야만 한다.


박물관은 과거를 설명할 때 고압적이고 수직적인 태도를 보인다. 역사를 쓰고, 설명하고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은 이와 달라야 한다.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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