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봄
“할 일: 영어정복 - ✔”
2011년의 9월이었다.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마 그 때의 벅찬 느낌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사학과와의 만남이 성사된 날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아침 일찍 VIVA 버스를 타러 집을 나섰다. 소위 말해, 그 동네에서 가장 괜찮다는 대학에서 학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게다가 학창시절 때부터 그렇게 기다렸던 사학과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참 오래도 걸렸다. 사학과에 관심을 가진 것이 2005년이었으니, 6년이 지나서야 사학과와 만날 수 있었다. 어학연수를 꽤나 신속하게 그리고 성공적으로(?) 마쳤던 지라 (급한 성격이 도움이 됐던 걸까?), 영어에 대한 자신감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버스 스탑까지 가는 길이 조금 춥긴 했어도, 언제나처럼 만석인 버스에 타게 되었어도, 음침하고 인터넷도 안되는 토론토 지하철 (TTC)에서도 기분은 날아갈 듯 기뻤다. 애석하게도 이런 기분은 첫 대학수업을 듣기 직전까지만 유지되었다.
아, 혹시 눈치채셨는가? 지난 편은 2011년 초의 시점에서 끝났는데, 왜 갑작스럽게 2011년 9월 이야기를 하느냐고. 사실 2011년 상반기는 그럭저럭 잘 풀렸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세히 적어봐야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정상 궤도를 벗어나서 희한한 사건들이 가득한 것을 들여다보는 것이 조금이나마 더 재미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수능에서 잠을 잤다는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대학에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당시 즈음하여 들었던 생각을 잠시나마 적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저번 글에서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 그래. “이름있는” 대학교에 가고 싶은 나의 욕심까지 얘기했었다. 우선 ‘학벌’이라는 것에 대해 일러둘 것이 있다. 종종 들어봤을 법한 “뻔한 소리”지만, 사회에서 ‘학벌’이라는 것은 아주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지도 않는 것 같다. 심지어 대학사회나 학계에서도 ‘학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마술을 부리지는 않는다. 지난 10여년을 돌이켜보며, 억지로라도 괜찮은 점 하나를 꼽아보라면 다른 이들의 눈길을 한번 받아보는 것 정도로 본인의 어깨가 잠시나마 으쓱해져 볼 기회가 있는게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닥 느껴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다. 추측만 해볼 뿐이다. 어느 한 대학원을 다닐 때, 잠시나마 친하게 지냈던 친구는 옥스포드 대학교 출신이었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물었던 질문 중 하나는 ‘정말 학교 캠퍼스가 해리포터 영화의 호그와트 같느냐?’였다.
불행하게도 ‘학벌’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갈 때도 “이름있는” 대학에 기웃거리고는 했는데, 긴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보면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머리로는 설령 이해했을지라도 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조바심도 많았지만, 욕심도 참 많았다. 무엇이 더 중요한 지를 깨닫지 못했고, 마음을 비워낼 줄도 몰랐다.
어쨌든 간에 2011년 봄 쯤으로 다시 되돌아가보자. 어학연수가 마무리 되어 가던 도중, 대학진학의 퀘스트가 다시(?) 주어진 나는 수능 결과로 인해 붕괴된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었던 것인지, 머나먼 캐나다까지 오게 된 현실에 일말의 “능동성”이라도 부여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히 “이름있는” 대학교 타이틀을 갖고 싶던 마음이었던지, “이름있는” 대학에 눈길을 자꾸 주기 시작했다. 그 동네 이름을 딴 토론토 대학교였다. ‘어떻게 하면 저 곳을 갈 수 있을까? 물론 사학과로 말이다!’
토론토에 위치한 다른 모(某)대학이 제공하는 어학연수 과정의 중간 지점을 넘어설 즈음에 토론토 대학교의 어학연수 코스로 훌쩍 떠나버렸다. 공부하던 곳에서 얌전히 마무리했어도 아마(?) 큰 무리 없이 그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겠지만, “이름값”에 눈이 멀어버린 것인지 토론토 대학교로 옮겼다. 다행히, 운이 좋게 그 해 입학 시즌에 맞춰서 원서도 접수 할 수 있었고, 영어 성적에 대한 조건도 맞출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학 허가가 나왔다.
이 시기는 참 좋았다. 아직 고등학생에서 못 벗어났던 어린 나로서는 가고 싶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으며, 영어도 완전히 정복했다고 생각할 때였다. 가슴이 터질 듯 부푼 마음으로 학기가 시작하는 9월을 기다렸다. 모든 것이 잘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럴 것 같았다. 이제 사학과에서 서양사와의 눈물 겨운 재회만 남겨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