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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미 Feb 16. 2024

정방울 산책 일상

아침에 눈을 뜨면 내 옆에는 밤새 그리웠다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눈을 맞추고 내 품에 안기는 방울이가 있다.


이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아침에서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선다.


계단을 내려가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선택이 시작된다.

하지만 첫 선택은 거의 정해져있다.

오른쪽으로 나가는 것은 아침, 밤 산책, 왼쪽으로 나가는 것은 오후 산책이다.


오른쪽 길로 나가면 그곳에는 또 세 가지 선택이 존재한다.

각각의 선택지에서 유한하지만 무한해보이는 선택지들을 창출해낼 수 있다.

이 선택은 웃기게도, 방울이에게 달려있다.


방울이는 매번 산책마다 다른 길을 선택하고, 그 조합도 매번 다르다. 비슷해 보이는 산책길에서도 새로운 길을 코스에 넣는 등 익숙함 속에 약간의 변주를 주어 일상 속 소소한 도전을 즐긴다.


집에서 멀어지는 산책길에선 신나서 귀를 있는 힘껏 뒤로 젖히며 톳톳톳 앞장서는데, 신나게 앞서가다가 속도를 늦추고 뒤돌아서 나에게 말거는 것 같은 상황이 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땐 꼭 뒤를 돌아 내 눈을 마주친다.

‘지금 건너도 돼?’


새로운 길을 가거나, 방울이가 좋아하는 오르막길을 오를 때도 꼭 뒤를 돌아 눈을 맞춘다.

‘잘 오고 있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걷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지고 이미 맡은 풀냄새도 한번 더 맡으며 집에 최대한 늦게 들어가려 애를 쓰다가 또 한 번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본다.

'여긴 재미없어. 안아줘.'


내가 쭈그려 앉으면 방울이는 내 무릎에 폴짝 두 발을 올린다. 그런 방울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향한다.


방울이는 집으로 가는 길을 유심히 보고 있다가 자신이 원하는 장소가 나오면 앞발로 내 배를 밀면서 내려달라는 의사를 표현한다.

그곳에 내려주면 마음에 드는 풀이나 튀어나와 있는 물체를 냄새맡거나 마킹을 한다.



방울이가 마킹을 처음부터 한 것은 아니었다. 다리 수술을 하면서 중성화 수술도 함께 한지라 한 살이 되기 전 산책 땐 한 쪽 다리를 들지 않고 쉬야를 했으면서 산책에 재미를 붙일수록 마킹도 하고, 뒷다리를 팡팡 차면서 '내 냄새야 멀리멀리 퍼져라'를 시전했다.

(도대체 이건 어디서 배우는 걸까? 강아지 유치원에서? 아니면 산책하다가 형아 강아지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정말 본능?)


산책을 바로 나왔을 때 첫 쉬야를 콸콸콸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방울이 나름대로 쉬야를 중간에 끊어서 남겨놓는 건지, 마킹하고 싶은 곳에 마킹할 때 끊임없이 나오는 쉬야는 정말 미스터리다.


집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마킹은 계속되는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 짜며 방울이의 냄새를 퍼트린다.

이렇게까지 쥐어짜낼 수 있나 싶을 때까지 쥐어짠다.

가끔 보면 이제 더이상 나오는 것이 없는데 다리만 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실컷 방울이 냄새를 퍼뜨린 후 집으로 돌아온 후 방울이는 오늘 산책에 대한 별점을 준다.

별점은 총 3점 만점이다.

내가 일정이 있어 산책시간이 짧거나 비가 왔을 경우, 방울이가 늘 앉아 있는 자리로 터덜터덜 돌아가 앞발 사이에 턱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나를 쳐다본다.

'정말 이렇게밖에 못해?'


방울이의 평가는 대부분 극단적이어서 2점의 경우는 흔치 않은데, 평범했던 산책의 경우는 방울이 자리로 돌아가 코로 이불을 들쑤시며 누울 자리를 만든다.

다음 산책을 위한 체력보충을 하는 듯 잠을 청한다.


 감정을 하나도 숨기지 못하는 정방울은 산책에 만족하면 그대로 행동에 드러난다. 3점을 주는 날엔 일단 발을 닦아줄 때부터 내 배에 이마를 비비며 애교를 부린다.

뒷발을 닦아야 하는데도 자꾸 이마를 비비려고 한다. 발을 다 닦으면 우다다를 시작한다. 엉덩이는 높게 들고 앞발은 쭉 앞으로 내밀어 다운독 자세를 하며 또 놀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에 응해주면 좁은 거실을 힘껏 달린다. 거실에서 침대방으로, 다시 옷방으로, 여기저기 우다다다 왔다갔다.


그러고나선 장난감을 물어다가 내 앞에 툭 던진다. 도대체 너의 체력은 어디까지인거냐.

터그놀이를 한참 하다가 공을 가져온다.

공던지기 놀이를 하다가 혼자만의 공놀이가 시작되는데 공을 등에 끼고는 네 다리는 하늘을 향하고선 등을 비비기 시작한다.

이런 솔직한 강아지같으니라고.


오늘은 별 3개




너의 날들이 늘 별 3개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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