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놀이터엔 짚라인,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울어진 컵 등 어른인 내가 봐도 재밌어 보이는 새로운 놀이기구들이 많은데, 옛날 놀이터들은 놀이터 가운데에 미끄럼틀이 있는 대형 구조물 위주로 획일화되어 있다.
이 구조물은 미끄럼틀을 타기 위한 것으로 계단을 오르거나 암벽등반으로 올라가 미끄럼틀로 내려오는 구조이다.
방울이는 옛날 놀이터를 좋아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미끄럼틀 구조물 꼭대기에 꼭 한 번씩 올라가본다.
그 계단에 올라가서 곳곳을 탐색하고, 구조물 난간의 틈 사이로 까꿍 놀이도 한다.
방울이 덕에 이 동네 놀이터는 모두 가본 것 같다.
어떤 놀이터는 계단으로 오르내릴 수 없어 방울이가 오르기에 힘들고, 또 어떤 놀이터는 출입구가 많아서 방울이의 까꿍 놀이 선택지가 많기도 하다.
여느 때처럼 방울이와 까꿍놀이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좋아요?”
길을 지나가던 아저씨가 방울이와 놀고 있는 나에게 물었다.
보통 사람이 지나가는지 확인하고, 사람이 없을 때 최선을 다해 오두방정을 떨면서 까꿍 놀이를 해주기에 방울이에게만 보여주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킨 것이 민망해서 머쓱하게 그렇다고 짧게 대답했다.
대화가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왜 좋아요?“ 라며 질문이 이어졌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어서 ‘왜’라는 단어에 정신을 빼앗겨 ‘귀여우니까’ ‘나만 바라보는 아이이고, 내가 책임을 지는게 맞으니까’ 등 허둥지둥 머릿 속에서 말을 쥐어짜냈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생각하기에 방울이를 좋아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은 대답들이어서 찝찝했다.
평소에 반려인들의 강아지 키우는 이유가 궁금해서 설문 조사를 하고 다니시는 건지,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가며 질문을 쏟아내시던 아저씨가 “그럼 누군가를 만날 때도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네요?”라고 하시길래 이 대화는 끝나지 않겠구나 싶어서 상냥함은 뺀 채로 "아닌데요" 라는 말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방울이 발을 닦으면서 내가 아까 했던 대답들을 곱씹어 보았다.
귀여워서 좋아한다느니, 나만 바라봐서 좋아한다느니.
방울이는 평생 귀여운게 맞긴 한데, 나는 동물, 인형 등 귀여운 것을 다 좋아하는 편이어서 방울이를 특별하게 좋아하는 이유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나만 바라봐서 좋아한다는 것은 더욱 말도 안되는 이유였다.
나를 기다리기 때문에 외출을 해도 집에 빨리 가는 이유에는 타당하지만 그것 때문에 방울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방울이 발바닥을 한참을 쓰다듬다가 문득, 지나치게 ‘왜’라는 단어에 몰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말을 건네면 귀를 움찔움찔 움직여서,
땀도 안나는 보송보송한 몸에 산책 후엔 바람 냄새만 가득 묻혀와서 너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냥 네가 좋았다.
왼쪽 골반을 수술해서 절뚝이며 처음 본 나에게 쏙 안기던 그 품은 영원히 또렷하게 너의 자리로 기억될 것이다.
한 품에 쏙 들어오던 네가 나와 시간을 보낼수록 거대한 털복숭이가 되는 것이 행복이 쌓이고 있는 것이라 믿고 있다.
나는 너를 좋아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너를 좋아하는 데는 이유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냥 네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