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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미 Sep 21. 2024

파리까지 가져온 마음

베른에서 파리로 가려면 일단 바젤까지 1시간 기차를 타고 간 후에, 그 곳에서 TGV로 파리까지 3시간 이동한다.


스위스패스를 3일권만 끊어서 마지막 날엔 우버를 부르거나 트램 티켓을 끊으려고 했는데, 베른에서 숙박을 하면 호텔에서 베른 웰컴이라는 어플에 대중교통 패스를 등록해준다.

베른 웰컴을 사용하여 베른 시내의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베른역으로 갈 땐 베른웰컴을 활용했다.




방울이랑 긴 시간을 이동해야 해서 조금이나마 편하게 가려고 1등석을 발권했는데,

웬 걸. 1등석은 2층에 위치했다. 기차 안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하하.

일단 방울이를 먼저 2층 자리에 올려두고 캐리어를 옮겼다. 출국 시 23kg였던 캐리어는 한 도시에서의 여행이 끝날 때마다 추가되는 기념품들 덕에 무게가 늘어났고, 계단 한 개씩 올라갈 때마다 눈물도 한 방울씩 날 뻔 했다.


모든 것을 옮긴 후 지친 내 발가락..




프랑스의 기차와 독일과 스위스의 기차가 다른 점이 있다면, 가방에 넣은 강아지라도 프랑스의 철도청은 7유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TGV 1등석은 다른 나라에서 이동할 땐 점심을 제공한다.(니스로 갈 때 이동 시간이 더 길었는데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것 보니 아마도 다른 나라 이동 시에만 제공되는 것 같다. TGV 브랜드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세 시간 후 Paris Gare de Lyon에 도착했다. 거리 곳곳에는 파리 경찰들이 서있었다.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파리는 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들뜬 분위기였고, 새삼 차가 막히는 걸보니 큰 도시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났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서 맨 꼭대기층에 방을 배정받았다. 다행히 숙소엔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짐을 끌고 좁은 복도를 지나서 터치 형태가 아닌 삽입식의 키카드를 넣었다 빼고 방문을 열었는데, 방문이 침대에 닿을 것만큼 가까웠다. 방은 침대로 꽉찼고, 침대 건너편엔 화장실이 있는데 화장실 문도 침대에 닿을 것 같았다. 화장실 문과 침대 사이에 캐리어를 펼치니 정말 발디딜 곳이 없었다.


뭐 일단 숙소 크기는 차치하고,

꼬박 하루를 이동하는데 써서 오늘 산책량이 부족한 방울이와 숙소 앞에 산책을 나섰다.



숙소 앞은 센강이 흐르고 있었고, 센강을 앞에 두고 오른쪽을 보면 에펠탑이 보였다.

에펠탑으로 가는 길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방울이와 에펠탑을 향해 걸었다. 도시 간 이동으로 피곤하고, 파리는 생각보다 더워서 땀이 나는 그런 날씨였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파리에 오니 확실히 강아지들 크기가 달라졌다. 귀족들이 무릎에 앉혀놓고 키워서 그런지 여태껏 다른 나라에서 만났던 강아지들보다 작은 강아지들이 많았다.



다음 날, 파리에서 엄마와 동생을 만났다. 2019년에 싱가포르 가족여행 후에 한바탕하고, 다신 해외여행을 가족과 함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그 다음 년도에는 스위스 가족여행을 갔었는데, 온갖 핑계를 대며 혼자 집을 지켰었다. 그 좋은 스위스도 가족이랑 가면 속만 터질 것이 뻔했다.


이번 파리 여행은 고통스러웠던 5년 전의 싱가포르의 기억이 희미해진건지, 마지막 학기라며 의미부여를 하면서 마음이 약해진건가 했지만, 사실은 올림픽 시즌 파리여행은 엄마의 도움이 아니면 가기 힘들기에 가이드를 자청하며 가게 되었다. 올림픽 시즌에 방울이랑 파리 여행은 정말 하고 싶었으니까.


엄마랑은 몽마르뜨에서 만나기로 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엄마랑 숙소를 따로 잡았다. 일단 파리 숙박비가 평소의 2~3배 이상 비쌌고, 강아지 동반 가능한 숙소는 더 비싸서 일단 합리적인 가격의 숙소를 엄마랑 동생에게 잡아주고, 나랑 방울이가 지낼 숙소를 찾다보니 숙소를 다른 위치에 잡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매정한 편은 아니다. 당연히 처음에 넷이 함께 머무를 수 있도록 에어비앤비로 예약을 하고, 호스트가 자신의 강아지 사진도 보여주고 개모차도 빌려줄 수 있다면서 소통을 했었는데, 두 달 뒤에 호스트가 본인 사정이 생겼다며 취소해버렸다. 이미 그때는 숙박비가 오를대로 오른 상태였고, 다른 숙소를 알아보기에 늦은 타이밍이었다. 그래, 이래서 내가 에어비앤비 사용안하고 글로벌 호텔 체인 이용하는 거였지 상기시키며 마음편히 호텔을 알아보자하고 알아본 것이 숙소를 따로 잡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몽마르뜨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올림픽 개막식 당일이라 그런지 오버투어리즘의 끝판왕을 보는 것 같았다. 파리에 오기 전까지도 결혼 문제로 엄마랑 한바탕했고, 파리에 오니 마니 취소를 하니 마니 난리를 쳤었다. 그렇게 얼굴을 붉히고서 파리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색하게 '왔어?'라고 인사를 나눴는데, 차라리 사람이 북적거려서 어색함을 채워주니 다행이었다. 그렇게 같이 온 듯 따로 온 듯 몽마르뜨 한 바퀴를 돈 후 밥을 먹었다. 그래도 나름 프랑스에 왔으니 양파 스프, 뵈프 부르기뇽에 샐러드랑 스테이크를 추가해서 먹었다. 역시 현지에서 먹는 뵈프 부르기뇽은 다른 것인지 한국에서 프랑스인이 해주는 뵈프 부르기뇽 식당에서 먹은 것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새로운 음식 덕에 이야기할 거리가 생겨서, 어색했지만 엄마랑 몇 마디씩 서로 주고 받았다.


엄마는 라면을 챙겨왔다면서 라면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숙소가 가까웠으면 내가 가서 챙겼을텐데 완전히 동쪽과 서쪽의 끝이어서 관광지에서 만날 때 엄마가 가지고와야 했다. 다음에 밖에서 걸어야 되는 일정이 짧을 때 가져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파리가 처음이라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면서 틈틈이 파리에 오면 방문해야하는 곳들 위주로 여행 계획을 짰다. 올림픽 경기를 보는 날은 딱히 다른 일정은 잡을 수 없었고, 올림픽 경기가 없는 날은 유명하다는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등을 방문했다.


루브르의 모나리자는 도대체 어떻게 감상을 해야할까. 앞에 몰려있는 사람들에 놀라고 저 인파 속으로 들어가서 맨 앞까지 자연스럽게 밀려서 모나리자를 그나마 가까이서 보고 돌아나왔다.



매일 관광지에서 만나기 전, 엄마는 도대체 라면은 언제 갖다주냐며 메시지를 보냈다. 제발 좀 그만 물어보라고, 내가 가져오라고 할 때 가져오면 된다고 몇 번을 말해도 매일 아침 메시지를 보냈다. 미술관 돌아다니는데 라면을 들고 어떻게 다닐거냐며 결국 짜증을 냈다.

도대체 엄마는 나한테 왜그러는 걸까? 어휴 정말 안맞아.




파리의 상징인 에펠 타워. 올림픽 기간이라 에펠 타워도 오륜기를 달았다. 에펠 타워 근처 공원도 올림픽 야외 경기장으로 활용되고 있어서 마르스 광장 쪽에 하루종일 앉아서 에펠타워를 감상하려는 계획은 실행하지 못했다. 흔히 알려진 에펠타워 사진 명소들이 올림픽으로 인해 막혀있어서 그 장소들에서 에펠타워를 찍진 못했다.


엄마를 위한 관광 코스로 센느강 유람선을 탔는데, 유람선 위에서 보는 에펠 타워가 멋있었다. 에펠 방울 사진도 남길 수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센느 강변에 위치한 파리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을 둘러볼 수 있었다. 멀리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닥 흥미롭지 않았다. 다음에 유람선을 타야한다면 해질녘에 타는 것 이외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엄마는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샹젤리제 거리를 걷는 것은 의미가 없었지만 그래도 파리에 왔으니 남들 가는 곳은 가봐야 우리 엄마도 한국에 돌아가서 파리 다녀왔다고 할 수 있으니, 개선문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것도 참 엄마한테 불만이던 부분인데 12시까지 만나기로 했으면 그 시간에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만나야 하는데, 꼭 엄마는 30분이나 한 시간 일찍와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고, 그러다 내가 도착하면 연락도 잘 안되고, 외국이다보니 엄마가 주변에 보이는 건물을 말해도 난 모르니 서로 헤매다가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늦게 만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누군가 가족여행은 전생의 죄를 씻는 거라고 했으니, 그래. 내 죄가 이렇게 크다. 이번 기회에 씻어내자. 도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죄를 씻어야 하는 걸까. 하며 최대한 짜증을 안내고 참고 또 참았다.




엄마랑 처음 시도해본 에스카르고. 달팽이요리라 듣기에도, 보기에도 거부감이 느껴진다. 어느덧 일주일이 흘러 엄마랑 마지막으로 파리에서 하는 식사여서 프랑스식으로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도전도 하고 싶었다.


에스카르고를 주문하니, 달팽이를 집을 수 있는 집게와 끝이 길면서 두개로 갈라진 포크가 세팅된다.

이후 달팽이를 고정시킬 수 있는 동그랗게 홈이 패인 접시에 달팽이가 올려져서 서빙된다. 집게로 동그란 달팽이집을 쥐고, 포크로 살살 돌리면서 달팽이살을 빼낸다. 파슬리, 오일, 후추로 양념이 되어 있고, 약간의 마늘 맛도 난다. 한입에 왕 넣고 씹었는데, 흔한 골뱅이 식감이다. 골뱅이 종류를 먹으면 그 안에 내장이 나오는 느낌이 싫은데, 달팽이는 의외로 그런 부분이 적고 쫄깃한 부분만 있어서 6개라 두 개씩 할당이 되었는데 첫 번째를 먹고나니 다음 에스카르고는 두려움 없이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날에서야 드디어 엄마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라면을 받았다.

쇼핑백에 뭘 바리바리 싸와서 뭐가 이렇게 무겁나 하고 숙소에 와서 풀어보는데, 라면, 부탁하지도 않은 볶음김치, 1월에 나랑 싸우고 나서 날 주려고 사놓은 바지, 속옷들, 파리에 오기 전 부탁한 방울이 귀청소약이 있었다.


옷을 입어보니 내 스타일도 아니고, 색도 별로고 괜히 캐리어 짐만 늘어나서 투덜거리다가 문득 빨아서 차곡차곡 개킨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서울집에 가서 잘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못을 박아놨는데도 내가 집에 오면 갈아입을 속옷이 없을까봐 사놓고 빨아놓고, 그 이후 명절 때도 정말 서울집에서 안 자고 가니까 파리까지 가져온 것이다.



마음이란 것이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상대방은 표현을 해줘야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데, 마음을 그대로 말하기가 참 어렵다. 마음이 다르게 전달되어서 서로를 속상하게도 만들기도하고 오해가 쌓이기도 한다. 엄마는 그 마음이란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라 그렇게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싸들고 온 것이다.



여행 마지막 날, 또 약속시간보다 빠르게 나온 엄마한테 짜증이 났지만, 기분 좋게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어서  많이 기다렸어? 라고 물으며 식사를 마치고, 파리를 한 바퀴 돌고, 이번 여행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라고 물었다. 엄마는 뭘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좋았다고, 짧게 대답했다. 난 이후의 여행 일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다.


사실 진짜 대답은 엄마의 블로그에 있었다. 엄마는 블로그에 일상을 올리곤 하는데, 우리의 파리 여행 후기도 올라와 있었다. 엄마의 여행 마지막 글에는 내가 물은 질문에 대한 답이 있었다. 큰 딸의 여행에서 뭐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에 엄마는 마음 속으로 너네랑 함께해서 모든 것이 다 좋았어. 라고 대답했단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미숙한 엄마를 이번만큼은 봐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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