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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미 Sep 14. 2024

베른 올드타운은 방울방울

베른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된 아름다운 도시이다. 돌길, 대성당, 시계탑, 그 주위를 이루고 있는 작은 마을 등 여타 다른 유럽의 도시와 겉모습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죽 늘어선 석조 아케이드, 길 중간중간의 특색있는 분수들이 베른만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베른을 둘러볼 땐 장미공원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베른은 걸어서 다녀도 될 정도로 작은 도시이고, 올드타운 이외에는 평지가 아니라 경사로를 오르내려야한다. 

처음에 베른역에 도착하면 버스나 트램을 타고 장미공원으로 향한 뒤 Rose garden> Bear pit > Old town> Bern station의 경로로 여행하면 내리막길이면서 다시 베른역에 도착하는 당일치기 일정을 짤 수 있다.




나는 방울이랑 베른에서 4박 5일을 보내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이틀은 호수를 돌아다니다가 떠나기 전 마지막 날은 베른을 온전히 즐기기로 결정했다.


숙소에서 트램을 타고, 치크글로게 역에서 내렸다. 매시 4분 전에 시계의 인형들이 움직이며 베른을 상징하는 곰이 나타난다. 정각에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가 모래시계를 뒤집으면 탑 꼭대기의 인형이 종을 망치로 두드려 시간을 알린다.



굳이 시계탑의 정시 종소리를 찾아서 볼 이유는 없지만 올드타운을 돌아다니다 보면 시계탑을 마주하게 되니 우연히 시간이 맞는다면 4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할 정도는 된다. 트램에서 내리니 9시 56분이어서 치트글로게 종소리를 듣고 올드타운 일정을 시작했다.





어떤 계획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처없이 방울이랑 산책을 하다가 방울이가 원하는 방향대로만 갔는데 대성당이 나왔다. 스위스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성당인데, 강아지랑 들어갈 순 없어서 내부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외벽의 조각들이 정말 정교해서 감탄이 나왔다.


성당 옆엔 작은 공원이 있는데 그 옆엔 빙하가 녹아 스위스의 호수빛을 띠는 아름다운 아레강이 흐르고 있고, 강 옆의 주황색 지붕의 마을이 있는 베른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스위스에 오기 전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는 스위스어로 하고 싶어서 스위스의 언어를 검색해봤는데, 인접한 국경지역에 따라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쓴다고 한다. 독일에서 넘어와서 그런지 독일어를 쓰는 비율이 더 많게 느껴졌다. 인사는 'Hallo'라고 독일어로 하는데 감사 인사는 'Merci'라는 프랑스어로 하는 식이었다.


베른에서는 '베른 독일어'라 불리는 독일어가 베른 식으로 변형된 형태의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독일어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다른데, 베른의 베른 독일어식 표기는 Bärn이고, 곰은 베른 독일어로 Bäre이니 베른은 곰의 도시가 맞다.


Bear pit에는 베른의 곰이 산다. 올드타운은 지대가 높고, 아레강이 흐르는 곳까진 경사지대인데, 그 경사지대에 곰이 살고 있었다. 누군가는 동물원보다 나은 환경이라고 하지만, 이게 정말 곰이 살기에 좋은 환경인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어찌됐든 사람들이 구경을 하며 만들어 내는 소음에, 도시 한복판이니 자연과 비슷할 리가 없었다.






베른에서의 마지막 점심으로 어딘가에서 유명하다고 들어본 스위스 퐁듀를 먹어보려고 올드타운 내의 퐁듀집을 찾아갔다. 내부는 어수선해보이는데 일단 식사는 된다고 해서 방울이랑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퐁듀가 나왔고, 찍어먹을 것으로는 빵만 나왔다. 먹는 시범을 보여줬는데, 빵밖에 없는 것이 아쉬웠다. 

빵 그만.. 빵 그만...

난 사실 빵순이가 아니었나보다.

10일 넘게 빵만 먹으니 질린다.

일행이 있었다면 다른 메뉴도 함께 먹었을 텐데 빵에 치즈만 찍어먹으려니 한 세 개 먹고 질렸다.


계산을 하려고 종업원과 눈을 마주쳤는데, 테이블로 와서 하는 말이 현금 계산만 가능하단다.

요즘 세상에 현금만 되는데가 어딨냐고 나 카드만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ATM 위치를 알려주며 요즘 세상에 어디서든 돈 뽑을 수 있다며 뽑아오라고 했다.


나는 굴복하지 않고, 강경하게 카드로 계산하고 싶다고 주장했고, 내가 지금 수중에 있는 현금이 저번에 외상값 갚으려고 환전한 70프랑에서 50프랑은 감바스 할아버지네서 쓰고 20프랑만 남았다고 하자, 20프랑만 주고 가라고 했다.

퐁듀는 34프랑인데, 이게 무슨일이야.

괜히 먹고 찝찝해졌다.

설마, 치즈의 쿰쿰함이..?





장미공원은 방울이랑 오기 전 날에 정말 그냥 장미가 중간중간 펴있는 작은 공원일까봐 혼자 산책겸 왔다가, 여기서 바라보는 뷰는 방울이랑 함께 느껴봐야겠다 싶어서 다음날 방울이랑 꼭 와야겠다고 생각한 곳이다.


베른에 왔다면 장미가 피어있지 않더라도 장미공원에 방문하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바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레강이 흐르는 베른 올드타운의 풍경에, 높이 솟아 있는 대성당의 첨탑까지.

눈을 감아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런 풍경, 그런 바람.


이 풍경 속에서 꼭 방울이랑 같이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한참을 이 자리에서 서성였다.

다들 벤치에 앉아서 풍경을 즐기고 있어서 사진을 부탁하기에 그들의 휴식을 깨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나도 일단 풍경을 눈에나 담아보자 하고 풍경에 빠져있을 때쯤,

흰 벙거지 모자에, 쨍한 하늘색의 바람막이, 톤온톤으로 맞춘 등산 바지, 하이킹 운동화, 소매치기를 의식한 옆으로 맨 작은 가방을 맨 사람이 내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이세요?" 묻자

"오, 네, 맞아요."라며 내가 강아지랑 있어서 현지인인줄 알았다고 하셨다.

나도 여행 중인데 혹시 사진을 찍어주실 수 있냐고 묻자, 본인도 혼자 오셨다고, 안그래도 풍경만 찍고 가기 아쉬웠다고 하시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탄생한 이렇게 마음에 드는 사진.

역시 한국인 최고.

한국인들이 사진을 제일 잘 찍는다.



베른에서의 마지막 산책길에 만난 예쁜 수국.

베른에서 너와 함께 한 이 여름은 사라지지 않겠지. 이 풍경도, 이 온도도, 네가 나를 올려다보던 그 눈빛도.




그리고 유럽에서 처음 만난 고양이.

생각해보니 유럽엔 길냥이가 없다.

반려동물이 잘 관리되고 있어 그런지, 유기묘, 유기견이 드문 것 같다.

이 예쁜 까만털을 가진 고양이도 뒤의 건물에 사는 산책냥이였다.



다이어트 중이라 한창 미모에 물이 오른 방울이와 이제 파리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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