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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미 Sep 07. 2024

스위스 호수는 방울방울



하이킹 없는 스위스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보고 싶은 곳은 튠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였다.

튠호수를 즐기기 위해 슈피츠를 목적지로 설정했다. 베른에서 슈피츠까지는 스위스 트래블 패스로 기차를 타고 이동했고, 슈피츠에서 돌아올 때는 유람선을 즐기기 위해 튠까지 유람선을 탄 후에 튠에서 베른까지는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경로로 정했다.


https://maps.app.goo.gl/FyRXDts6MJLTrdCx6



슈피츠 기차역이 높은 지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차역에서 호수까지 내리막길로 쭉 내려가면서 작은 마을인 슈피츠를 둘러볼 수 있다. 산책코스로 힘들이지 않아 딱 좋다. 내려가는 길에 가장 처음 만날 수 있는 곳은 Spiez Sign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슈피츠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혼자 여행을 하면 방울이랑 사진을 남기지 못하는게 아쉬운데, 중국어를 쓰는 동양인 분들이 사진을 찍고 계셨다. 내 앞의 동양인 부부가 그 분들께 부탁을 하길래, 나도 부탁을 해보았다. 뭔가 너무 정직한 사진이지만 그 나름대로 마음에 든다.


https://maps.app.goo.gl/eLqFnqRkQuZhuLb79



기차에서 내려서 유람선 탑승 시간을 확인하니 유람선 탑승 시간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았기 때문에 천천히 산책하며 마을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었다. 슈피츠 마을엔 공용 수영장이 있고, 그 옆으론 넓은 잔디밭이 있는데,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기도 하고,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하늘을 즐기기도 한다. 가족 단위로 놀고 있고, 강아지들도 뛰어놀고 있어서 정말 평화로웠다.


하지만 물가는 평화롭지 않은 스위스. 잔디 근처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으려는데, 샌드위치와 밀크티를 약20프랑 주고 먹었다. 한화로 약 3만원. 이게 어디야. 이 물가 비싼 스위스에서. 적당히 배를 채우고 선착장으로 걸어갔다.





유람선을 타고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호수를 가로지르는 일은 상상보다 더 좋았다. 산 꼭대기에 구름들만 봐도 감탄이 나왔고, 만년설이 흘러들어 오묘한 빛을 띠는 호수의 색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았다. 유람선 선착장마다 있는 작은 마을들에서 햇빛을 받으며 누워있으면 어떤 걱정도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주변에서 스위스 하이킹 여행의 후기만 들은 나는 추울 것을 대비해 플리스, 니트, 가디건 등 초겨울에 입을만한 옷들도 챙겨왔다. 심지어 내것만이 아니라 방울이 옷도 캐리어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뮌헨에서 더위를 호소했던 터라 스위스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친구들도 '이제 시원한 데로 가네'라고 해서 시원한 바람을 기대했으나, 웬 걸. 베른은 그냥 흔한 여름이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아침저녁보다도 따뜻한 여름이었다. 낮에는 뮌헨만큼이나 더웠다.


그래도 호수는 다르겠지, 유람선은 바람이 부니까 조금은 쌀쌀하겠지 하고 니트 가디건을 입고 갔다가 땀만 뻘뻘흘리며 돌아왔다. 산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면 스위스도 여름은 여름이다. 괜히 챙겨간 플리스는 끝까지 자리만 차지해서 기념품 살 때 캐리어 공간 부족으로 애만 먹였다.


사전 조사를 하지 않은 내 잘못이지만, 스위스 트래블 패스로 유람선을 탈 수 있는 것만 알았지 유람선에도 1등석, 2등석 자리가 나뉘는지 몰랐다. 사람들이 우르르 타길래 거기에 휩쓸려서 어찌저찌 자리를 잡고, 그마저도 좋았는데, 튠에 도착해서 배를 내리는 길에 1등석은 2층에 위치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호수는 좋았지만 뭔가 억울했다.



첫 날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후, 두 번째 호수로 향하는 다음날은 반팔도 입고, 혹시 모를 얇은 셔츠도 준비하고, 유람선 2층을 되뇌며 브리엔츠 호수로 향했다.



유람선을 즐기기 위해 베른에서 인터라켄 ost까지 기차를 이용하고, 인터라켄에서 브리엔츠까지 유람선으로 이동한 뒤, 브리엔츠에서 베른으로 돌아올 때는 기차를 이용했다.



인터라켄 ost 기차역을 나가면 횡단보도 바로 건너편에 선착장이 있고, 탑승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오늘은 2층 1등석 자리에 바로 올라왔다. 한결 쾌적하고, 시야가 1층보다는 확실히 트여있다. 출발을 알리는 고동소리에도, 빙하덕에 오묘한 에메랄드 빛을 띠는 호수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든 방울이.



브리엔츠 호수는 튠 호수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튠 호수는 중세마을인 슈피츠와 툰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 좀더 아기자기하고, 피크닉을 즐기는 느낌이라면, 브리엔츠 호수 쪽은 확실히 인터라켄 쪽에 있어서 그런지 하이킹을 하기에 더 좋아보였다. 브리엔츠로 가는 길에 여러 선착장이 있고, 그 중엔 기스바흐 폭포유람선 선착장이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폭포에 감탄이 나왔다. 멋진 폭포 주위를 트래킹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람선 선착장마다 내려서 하루씩 하이킹해도 좋을 것 같다.

유람선을 타고 가는 길에 호숫가에 자리한 예쁜 집들이 있다. 정원에서 낮잠을 자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다음 스위스 여행에서는 호숫가의 집을 빌려 한 달 정도 살면서 스위스에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다. 


 



브리엔츠 호수 선착장에 내려서 호숫가를 한 바퀴 돌았다. 오늘은 다행히 어제의 시행착오 덕에 반팔을 입고와서 그나마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산을 오르지 않을 거라면 스위스는 덥다.



더워서 눈에 보이는 아이스크림 집에서 만원짜리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푸른 빛 호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쳇바퀴로 영원히 잠들어 있을 것만 같던 내 몸의 세포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깨어났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라도 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 풍경 속에선 머릿 속이 오로지 호수로만 채워지면서 불필요한 것들이 먼지처럼 털려나가고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이 방학이 끝나면, 이 여행이 끝나면, 이 여름이 끝나면 날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늘 나를 사로잡고 있던 생각이고, 여행하면서 이 물음을 계속 떠올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머릿속이 깨끗하게 씻겨서 여행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어떤 면을 간직하고, 어떤 면을 떨쳐버릴 지는 나에게 달렸다.

이 여행은 방울이로만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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