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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미 Aug 30. 2024

베른은 방울방울 절망편


독일에서의 5박 일정이 끝나고, 스위스로 향하는 기차 안. 늘 그렇다시피 나라에 가는 기차는 나라의 철도청을 이용해야 한다. 스위스 철도인 SBB를 타고 베른으로 향하는 길이다.



창밖으로 시선과 비슷한 높이의 거대한 호수가 보이면서 목가적인 풍경으로 바뀌면 독일의 국경을 넘어 스위스에 왔음을 알 수 있다.



뮌헨에서 베른으로 바로 가는 기차가 없어서 취리히에서 갈아타야 한다. 베른은 스위스의 수도인데도 스위스의 다른 도시에 비해 유명세가 약한 것 같다. 베른에 머물기로 결정한 것도 큰 이유는 없다. 취리히는 일단 숙박비가 정말 비싸서 제외했고, 하이킹을 위해 많이 방문하는 그린델발트, 인터라켄 등은 최소 6개월 전에 유명한 샬레를 예약한다는데, 여행 2주 전에 예약을 시도한 나에겐 어림도 없었다. 방울이랑 함께 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반려동물 동반 숙소를 호텔 어플에서 찾는 것이 쉬워서 검색되는 곳을 찾다보니 호텔은 주로 도시에 있었고, 너무 비싸지 않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서의 숙소를 찾다보니 베른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취리히에서 베른으로 SBB를 타고 도착했고, 긴 이동시간으로 지친 방울이와 나는 우버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짐을 풀자마자 방울이 산책도 하고, 나도 저녁을 먹을 겸 동네를 돌았다. 숙소는 베른 엑스포 근처였는데, 매우 조용한 동네였다. 여행지 느낌이 아니라 사람 사는 느낌이라 더 좋았다. 방울 강아지, 비싼 건 알아가지고 다른 도시와는 텐션부터 달랐다. 방울이도 스위스의 공기를 좋아했다. 일요일인데다가 저녁 7시가 다 되어서 그런지 주변에 식당도 몇 군데 없었는데 그마저도 연 식당이 없었다. 그러다가 동네 아저씨들이 맥주 한 병씩 하고 있는 식당을 발견했고, 조심스레 들어가보았다.



실례합니다, 하고 들어가니 밖에 계신 아저씨들과 똑같은 술톤의 얼굴을 한 사장님이 저녁을 드시다가 우리를 올려다 보았다. 저녁을 먹을 것이라고 하자 조금 당황하신 듯 했지만, 메뉴판을 내어주셨다. 


사장님이 건네주신 메뉴판은 영어가 아니어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유일하게 아는 단어인 'GAMBAS'가 눈에 띄어 감바스를 주문했다.


너무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것 같아 주방을 흘끗흘끗 쳐다봤는데, 새우를 한 개씩 일일이 씻고 손질하는 모습이 보여서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차려진 한 상.

샐러드는 기대도 안했었는데, 훌륭한 한 끼였다.

타국에서 이게 얼마만의 쌀인지, 예상치 못한 쌀밥에 감격스러웠다.

큰 새우의 오동통한 살에 적당한 간으로 볶아 감칠맛을 더해 다른 양념이 필요가 없었다. 새우는 일일이 손질되어 갈라져 있어 포크로 한 번에 떠서 입에 넣을 수 있도록 먹기 편하게 되어있었다.

샐러드는 전문점처럼 물기가 아예 제거되진 않았지만 양상추에 토마토, 이 기본적인 채소에 발사믹만 뿌려 기본에 충실해서 더 소박하고 좋았다.



긴 여행으로 힘들었을 방울이도 간식을 얻어먹었다. 유럽 사람들, 정말 이 사람들은 강아지에 진심이다. 이렇게 친절한 유럽은 난생 처음이다. 방울이 덕에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재밌는 여행을 하고 있다.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카드 결제가 안된다고 했다.

환전은 한 푼도 해오지 않은 나인데..

어쩔 줄 모르고 서있자, 사장님께서 내일 다시 들리든지 하라고 하셨다.

네? 전 외국인인데요? 저를 뭘 믿고..

 

내일 꼭 들르겠다며, 호텔 키를 보여주며 이 근처 호텔에 묵으니 내일 꼭 오겠다고 말하고 가게를 나섰다. 정감있는 곳이었다.



저녁도 맛있게 먹고, 이 동네가 마음에 들어 산책을 조금 더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맛있는 식사 덕에 암울한 숙소를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었는데 들어와보니 처참하긴 했다.

내가 정리에 소질이 있는 편이 아니라 숙소가 엉망이긴 한데 남은 사진이 이것 밖에 없다. 이 숙소는 하루에 15만원이 넘는 곳이다. 스위스 물가가 비싸니까라고 정당화하며 짐을 풀고, 자리에 누웠다. 낮에는 호수며 산이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숙소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고 잠만 잘거니까 괜찮겠지라며 날 다독였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았다.

끊임없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문을 뚫고 들려서 여기가 실내인지 실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옆 방인지 윗 방인지 구별이 안되는 다른 방의 말소리들, 옆 방의 드라이기 소리는 마치 내 귀에 대고 머리를 말리는 것 같았다. 복도에 지나다니는 발자국 소리는 물론, 저 멀리서 문을 열었다 닫는 소리까지 모든 소리가 들렸다.


나 혼자였다면 4일만 딱 눈감고 참았을텐데, 그저 날 따라왔을 뿐인 아기 방울이까지 소리가 날 때마다 피곤함에 눈을 감았다가 귀를 쫑긋 세우고 방문을 주시하며 소음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 써보고 손으로 귀를 막고 잠들려고 노력도 해보고, 이어폰도 껴보고, 혹시 화장실을 통해 내려오는 소리일까 해서 화장실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소리 비교도 해보았다. 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소리가 안들린다한들 바깥 소리에 민감한 방울이가 잠을 한숨도 못자는 것은 너무 미안하고 속상했다.



저녁 9시에 잠을 청했는데, 방울이를 토닥이며 "방울아, 괜찮아, 괜찮아."를 연발하다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새벽 4시였다. 화가 났다. 더이상 잠은 못잘 것 같아서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7월 29일부터는 사촌동생이 합류한다고 연락이 와있었다.



이 좁은 방의 소음 때문이었는지, 사촌동생이 합류 후 8월 8일에 돌아간다고 해서인지, 저녁에 로비에 모여있던 10대 미국인들이 같이 있던 여자애들에게 세보이기 위해 내가 방울이랑 지나가는데 강아지 소리를 내며 깔깔거리는게 거슬렸는지, 8월 16일이었던 귀국 일정을 당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위스가 새벽 4시니까, 한국은 오전 11시. 고객센터가 운영할 시간이었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8월 2일에 파리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니스 3박, 베니스 3박을 할 예정이었는데 그 이후엔 계획이 없었다. 고객센터의 도움을 받아서 베니스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를 예매하고,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8월 8일로 바꿨다.





비행기를 바꾸고 나니, 원래 계획하고 있던 마지막 일주일의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나름대로 여유 예산이 생겼다.

이 불면증으로 생긴 용기는 이 후진 절망호텔에 들어올 때마다 보이는 바로 옆 호텔을 예약하는 것까지 이어졌다. 당장 오늘부터 나머지 3박을 예약했다.

처음부터 비싼 호텔을 예약했으면 소위 멍청 비용이라 불리는 이 아까운 돈이 나갈 일이 없었겠지만, 뭐 사람 일이라는게 다 마음처럼 됐으면 이 세상 참 살기 쉬웠겠지.


파리에서 엄마랑 여행 후, 사촌 동생이랑 여행을 하고 다시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이 왜 망설여졌는지 모르겠지만, 여태 숙소도 안잡고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이렇게 되는 것이 옳았다.


이렇게 한 바탕 소동을 하고 나니 어느덧 6시가 되었고, 방울이를 데리고 일찍 산책에 나섰다. 이 숙소만 아니라면 스위스는 정말 좋았다.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공기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날이 밝아오는 것을 느끼며 방울이랑 산책에 돌아와서 한시라도 빨리 방을 옮기고 싶은 마음에 새로 예약한 옆 호텔에 체크인 시간을 물어봤다.


산책하고 돌아오니 오전 7시였고, 혹시 지금은 체크인이 안되냐고 묻자, 너무 이르다고 했다. 역시 무리한 부탁이긴 했다. 그래도 괜찮아. 오늘 오전만 밖에서 보내면 절망호텔은 이별이다.

일단 절망호텔에 돌아와서 조식을 먹고, 이후의 체크인을 위해 미리 짐을 정리했다. 그래도 오늘의 여행 스케쥴은 수행해야돼서 방울이를 데리고 베른 시내로 나섰다.



일단 오늘 해야할 중요한 일은 감바스 할아버지에게 외상값을 갚기 위해 환전을 하는 것이다. 

요즘에야 트래블 월렛 등의 카드로 편하게 현지의 ATM을 이용해 편하게 환전을 할 수 있지만, 내 통장의 돈은 비상 현금이라 쓰기가 싫었고, 출국 전 날, 엄마가 사이버 머니가 아닌 현금으로 돈을 준 것이 있어서 이 돈을 쓰고 싶었다.


구글 맵에 무작정 'exchange'를 검색하자 작은 환전소들이 검색되어 그곳들을 찾아갔는데, 한국 돈을 환전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큰 은행에 가면 될까 싶어 큰 은행에 갔는데, 회원제로 운영되어 환전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 저는 어쩌죠..? 라고 묻자,(역시 물어보는게 최고다.) 베른역 바로 옆에 은행에서 환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오늘 원래 베른역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돌아돌아 다시 가게 되는구나.


은행 직원분의 친절한 설명 덕에 헤매지 않고 바로 찾았고, 기다림 끝에 아주 무서운 수수료를 떼고 70프랑으로 환전했다.




드디어 오후 2시가 되었고, 캐리어를 싸서 옆 호텔 건물로 옮겼다. 쾌적함을 온 몸으로 느꼈다. 방울이도 한결 편안해 보이고, 오늘부터는 푹신한 침대에서 소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잠들 수 있다. 심지어 정수기도 복도에 설치되어 있어서 물 값도 아꼈다.



방에서 조금 쉬고, 외상값을 갚으러 다시 감바스 할아버지 식당에 갔다.

여전히 바깥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계시는 어제 동네 할아버지 멤버분들이 계셨다.



오늘은 감바스가 아닌 다른 것을 먹어보려고 했으나 이 말이 포르투갈어인지 정말 알아볼 수가 없었고, 그나마 stockfish라는 단어가 있어서 그것을 골랐는데, 정말 최고의 식사 중 하나였다.


생선을 프라이팬에 요리한 것일까? 구운 것인지 튀긴 것인지 요리에 대해 잘 몰라서 구분을 못하겠지만, 생선이 정말 부드러웠다. 이런 생선요리는 처음 먹어봤다. 촉촉한 랍스터같은 식감이었다. 올리브유가 풍미를 더하고, 구운 양파를 곁들여 먹으면 단 맛까지 느껴진다. 사이드로 나온 감자튀김은 짭쪼롬해서 간이 따로 필요가 없다.


역시나 물기가 조금 있는 정감있는 샐러드.


방울이는 이런 고마운 사장님이 머리 좀 쓰다듬으려고 하자 캬르르컁컁 하며 난리를 피워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지만, 싫은 걸 어떡해. 사장님도 어깨를 으쓱해보이시고 강아지가 그럴 수 있지 하며 웃으며 간식을 가지고 오셨다.


70프랑 중에 오늘 먹은 것까지 50프랑을 계산했다.

내일도 오고 싶었으나 현금이 남은 것이 20프랑밖에 없어서 다시 오진 못할 것 같고, 다른 식당도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식당만큼 맛있고, 퀄리티 좋은 음식을 하는 식당은 이후에 없었다.



이 날 방울 강아지는 애착인형과 함께 곯아떨어졌다. 꼭 다리는 인형에 올리고 자야하는 방울이가 새근새근 자는 모습을 보니 다시 한 번 멍청 비용을 내고서라도 숙소를 옮기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공간이 주는 평안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깨달았다. 


여행 일주일이 지나는 시점에 남은 3주 간의 여행이 막막하게 느껴졌었는데, 막상 귀국일정을 당기니 마지막주 일정이 사라졌고, 약 2주 조금 넘는 여행 기간이 남자 짧게 느껴지면서 이제서야 조금 아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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