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엔, 혼자 마리엔 광장으로 나섰다. 뮌헨 레지던츠를 가기 위함이었는데, 강아지는 동반이 안돼서 방울이는 숙소에 두고 왔다. 국내 여행에서 방울이를 데리고 다니면, 어쩔 수 없이 강아지 동반 불가능한 곳을 갈 땐 숙소에 두고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방울이는 낯선 환경에 자신을 버리고 가는 줄 알고 한참을 짖곤 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저녁을 먹으러 혼자 나갈 때 방울이가 짖어서 조금 안심시키고 문 밖에서 1분 후에 다시 들어가고, 같이 있다가 나가고, 2분 후에 다시 들어가는 식으로 시간을 늘리며 다시 돌아온다고 알려준 뒤 나오곤 했었다. 그런데 이 똑똑이 방울 강아지가 내가 집을 나왔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꾸 새로운 곳으로 장소를 옮기니 집으로 쉽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것을 눈치챈 것 같다. 뮌헨에 도착하고 나서부터는 빨래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리셉션에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내려갔다와도 짖지 않고 침대에서 잘 기다렸다. 그래서 오늘은 방울이도 그간의 여행으로 피곤했을 테니 좀 쉬고, 나도 마음을 놓고 아침에 뮌헨 레지던츠에 다녀왔다.
뮌헨 레지덴츠의 입장 시각은 오전 10시이다. 어차피 아침 6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여유롭게 보기 위해 입장 시간에 맞춰 갔다. 오전 10시보다 몇 분 정도 늦게 문이 열리고, 입장해서 기념품샵 같은 곳에서 표를 구매했다. 예약은 따로 하지 않았다. 뮌헨 레지덴츠는 레지덴츠, 보물관, 영화관으로 구성되어 있어 각각의 표를 따로 구매할 수도 있고, 패키지로 구매할 수도 있다. 레지덴츠를 관람하는 것은 뮌헨에서 필수인 것 같고, 보물관도 화려해보여서 레지덴츠와 보물관 패키지를 구매했으나 내 취향상 레지덴츠 입장권만 구매해도 될 것 그랬다.
일부러 사람 없을 때 뮌헨 레지덴츠의 상징적인 공간을 찍으려고 일찍 간 이유도 있는데, 일단 일본인 아저씨한테 새치기를 당했고, 그 아저씨가 내 앞에서 표 사는 거 버벅거려서 원래 표 사는 창구가 한 곳이었는데 그 사이에 다른 창구가 열려서 내 뒤에 있던 사람이 쪼르르 그곳으로 달려가서 순식간에 순서가 세 번째로 밀려났다. 근데 또 착각을 해서 레지덴츠로 들어갔어야 하는데 보물관으로 들어가버려서 어쩔 수 없이 보물관을 보고 나오니 이미 사람은 넘쳐 있었다. 원하는 사진은 못찍어서 아쉽지만, 이렇게 다음에 또 갈 이유가 생겼다.
결과적으로 마음에 드는 사진은 없지만, BTS 지민 팬이라며 사진을 흔쾌히 찍어주시던, 남편분과 여행을 오신 일본인 아주머니, K pop을 좋아한다며 한국 스타일로 사진을 찍어주려고 노력해준 귀여운 독일인 친구들 덕에 혼자 이 광활한 곳을 아무 말도 못하고 혼잣말로 우와 우와 하며 돌아볼 줄 알았는데, 나름의 스몰 토크로 재밌었다.
레지덴츠는 화려함의 연속이었다. 천장화, 샹들리에, 금 등으로 천장까지 꼼꼼히 꾸며놓은 장식들을 구경하기 위해 고개를 들고 다니느라 10년 동안 척척학사가 되느라 어느덧 나의 고질병이 되어버린 목디스크가 약간 고쳐진 것 같았다.
한국어 도슨트가 없어서 영어로 들은거라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이전에 바이에른 뮌헨 공국과 오스트리아 의 합스부르크 가문 간의 결혼 관계가 있었고, 바이에른에서 시집간 엘리자베스라는 황후가 매우 사랑을 받아 시시라는 애칭까지 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사진은 6년 전에 방문했던 오스트리아의 쇤부른 궁전인데, 이번에 방문한 뮌헨 레지덴츠와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시집간 시시를 위해 뮌헨 레지덴츠와 비슷하게 쇤부른 궁전을 지어준 줄 알았는데, 당시의 라이벌이었던 프랑스에서 베르사유 궁전을 지었기에, 이에 질 수 없다하고, 뮌헨과 비엔나에서도 뮌헨 레지덴츠, 쇤부른 궁전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 바로크 양식이 유행이었기 때문에 이 양식을 따른 것일 뿐이라고.
어쩐지, 베르사유 궁전과 쇤부른 궁전, 뮌헨 레지덴츠의 구조가 비슷했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84형 4베이 구조 같은 것이랄까.
뮌헨 레지덴츠 관람을 마친 후 주변에 스벅을 찾았다. 아아.. 나에겐 아아가 필요해..
이 세상은 스벅 없었음 어떻게 돌아갔을까..
광장을 지나면서 귀여운 기념품 가게도 구경하면서 Victuals market으로 이동했다.
농수산물과 올리브 절임 등을 주로 팔았고, 납작 복숭아 시즌이면 한 번 사볼만도 한데, 내 눈에 띄는 건 없었다. 오늘의 최종 목표는 방울이 간식을 사가는 것이었다. 마리엔 광장 근처로 강아지용품 판매점을 알아놨는데, 아직 오픈 전이었다. 그래서 옆의 카페에 들러서 브런치를 먹었다.
이탈리아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었고, 할아버지신데도 정말 세련되셨다. 팬케이크를 시켜서 적당하게 배를 채우고 바로 옆의 강아지 용품점으로 들어갔다.
강아지에게 천국같은 나라인데 의외로 용품점은 작아서 놀랐다. 역시 뭐든지 한국이 좀 좋은 편이긴 하다. 그런데 이 곳은 마치 편집샵처럼 품질이 좋은 것만 팔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앞의 손님이 사장님에게 사료 상담을 받고, 사료를 사갔다.
나는 방울이의 사료는 충분히 챙겨와서 간식 위주로 둘러보았고, 열빙어가 이렇게 많이 들었는데 7유로 정도로 싸서 왕창 사오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제간식이라는 이유로 열빙어 한 마리당 1000원 꼴이다. 결국 만들어놓고 냉장보관한거를 꺼내주기 때문에 독일의 이 열빙어와 별반 차이 없어보여서 정말 탐났지만, 이후의 여행에서 감당할 자신이 없어 고민하다가 내려놓고 다른 간식을 샀다.
그리고 정말 탐났던 리드줄. 이건 지금봐도 안 산 것이 후회스럽다. 고급스러우면서 튼튼해 보이는 이 리드줄은 60유로 정도 한다. 너무 비싸서 보기만 하고 돌아왔는데, 이후에 파리에서도, 니스에서도, 베니스에서도 가격은 비슷한데 이 정도로 예쁜 것은 보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돌아가는 길에 독일의 올리브영 같은 DM에 들러 강아지 간식을 찾아보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선 없었는데, 뮌헨에서는 매장의 규모가 커서 그런지 반려용품도 팔았다. 우리 방아지 다이어트 때문에 짜먹는 간식을 끊은지 1년 정도 되어서 이 간식을 사갔다.
귀여운 혓바닥으로 너무 잘먹는 우리 강아지. 내가 많이 안짜주면 스스로 이빨로 물어서 내용물이 나오도록 할 줄도 안다. 1년 만에 먹으니 어때? 정말 맛있지? 역시 이 맛이다싶지?
어느덧 뮌헨을 떠나야할 시간이 왔다. 방울이와의 자취를 남기러 한산할 때 일찍 칼광장으로 나섰다. 뮌헨에서 중앙역 근처에 숙소를 잡았고, 영국 정원정도의 거리를 갈 것이 아니라면 웬만한 관광지는 도보 10분 이내로 가능해서 굳이 대중교통 1일권이 필요없다.
시청이라고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신 시청 앞에도 산책했다. 아름다운 곳이라 늘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이 날은 어린 친구들이 틱톡을 찍는지 춤을 추고 있었다. 요즘은 정말 어딜가나 SNS구나. 심지어 배경음악은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였다. 누가봐도 2011년생 이하로 보이던데, 그 시절 대학생이었던 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머리를 뒤로 넘기는 듯한 춤동작을 하며 후렴구에 낄 뻔 했다. 구경꾼들이랑 보면서 잘 참다가 '누가 네가 나보다 더 잘 나가. NONONONO NANANANA'에서는 진짜 못참을 뻔 했지만 어글리 코리안이 되지 않고 잘 참고 얌전히 구경하다가 다른 성당으로 향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미국인 남자 두 명이 조그만 강아지와 함께 가는데 방향이 같았다. 길에서 강아지끼리 인사를 나누고 각자 갈 길을 가는데, 숙소의 엘리베이터까지 함께 타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에는 프랑스인 부부, 미국인 남자 두 명과 강아지, 나와 방아지 이렇게 세 팀이 타있었다. 프랑스 아주머니가 강아지를 매우 좋아하신다며 미국인의 강아지에게 자꾸 말을 걸며 예뻐하고 계셨다. 미국인은 강아지가 부끄러움을 느껴서 보호자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친근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프랑스 아주머니는 상관없다며 강아지에게 '넌 정말 아름다워. 네가 어떤 행동을 해도 상관없단다. 그저 아빠와 행복하게만 살으렴.'이라고 얘기했다. 엘리베이터 천장에 닿을 정도로 키도 크고, 덩치가 컸던 그 남자는 대답의 의무를 느꼈는지, 강아지 목소리를 대신하며 '노력해보겠쯈미댜. 감샤해요'라고 대답했다. 계속 듣고 있던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그래서 내가 안고 있던 방아지에게도 시선이 쏠리고 셋이 각자 키우는 강아지 얘기로 스몰토크를 하며 각자의 방으로 헤어졌다. 강아지 대신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해 주는 것도 만국 공통이니 싶었다. 역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