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에서 자랐고, 서울에서 살고 있다.
양쪽을 다 경험한 입장에서 말할 수 있다.
서울은... 지방을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방을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다.
지방은 지도 위의 공간이 아니다.
지방은 사람이고, 땀이며, 기술이고, 기억이고, 반복되는 노동이다.
그러나 서울은 지방을 언제나 수치와 행정단위로만 파악했다.
“지방의 평균 소득은 전국 대비 87% 수준이다.”
“지방의 청년 고용률은 수도권보다 4.5% 낮다.”
그러한 통계가 지방을 대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서울이 말하는 ‘지방’은
한 번도 실제 그 지역의 골목과 사람, 공장과 습관, 냄새와 불빛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정책을 짠다.
거대한 계획, 예산, 분배, 제도 개편.
그럴싸한 단어들이 쏟아지지만,
그 어느 것도 현장의 사소한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혁신도시 조성”, “지방대학 위상 제고”, “전국 단위 창업지원체계”…
말은 거창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지방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직접 두 발로 걷고 눈으로 본 경험은 적다.
예컨대 지방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서울 본사로 출장을 간다.
그는 1년 내내 절삭유 냄새를 맡으며 일하지만,
서울 본사에선 그 공정이 “고정비용이 과도한 공정 2”라고 분류된다.
그는 기계를 ‘안정적으로 돌리는 것’에 생계를 걸지만,
서울의 기획부서는 그 기계를 “대체 가능한 라인”으로 본다.
나도 회사의 손익만 따졌다. 외주가 더 저렴한 것을 알았을 때 많은 고민을 했었다.
지방의 땀은 항상 서울의 시선에서 ‘조정 대상’이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설계 자체가 지방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반박도 불가하다. 우리 모두 효율적으로 사는데에 집중해 있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뿐 더 빠르게 남들보다 더 질주하며
기존의 것들은 구식이 되고 낡은 것들을 뒤로하며
무지막지하게 질주하는 야생마 같은 것이 우리 사회.
하지만 대한민국의 서울이라는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유기적인 액체는 다름아닌
서울에서 만들어준 설계 대로 하나의 실물을 만들어내는 지방 제조업 노동자 그들의 피와 땀이 아닐까.
정치도 마찬가지다.
선거 때마다 균형발전, 지역상생, 지방분권이라는 말이 등장하지만
그 말들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되묻는 경우는 드물다.
지방 공장 하나가 폐업하면 수십 개 협력업체가 사라지고,
인근 상권이 죽고, 학령인구가 줄어들며, 초등학교가 통폐합된다.
그러나 정치권은 공장폐쇄를 “일자리 감소”라는 하나의 항목으로 처리한다.
서울의 언어로 요약된 지방의 현실은
너무 쉽게 추상화되고, 쉽게 무시된다.
이따금 ‘청년 정책’이 지방 청년을 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 정책의 설계자는 지방의 기숙사 방음 상태,
읍 단위의 대중교통 노선 단절, 도심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는 거리조차 모른다.
정책은 늘 그럴듯하지만 진정성이 없기 때문에 생명력이 없다.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는 것은 단순히 기회 부족 때문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다는 감각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 감각을 복원하는 일에 정치가 있었는가?
나는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의문을 제기해본다.
서울이 몰랐던 것은 지방의 구조뿐만이 아니다.
정치가 몰랐던 것은 그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도다.
사람은 정책이 아니라 감각으로 살아간다.
그 감각을 설계한 사람들 대부분은 서울 출신, 수도권 거주자,
혹은 지방을 떠난 후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지방을 말할 때,
그 말은 어디까지나 관찰자의 말이다.
아무리 진심이라 해도,
현장에서 들리지 않으면 그건 언어가 아닌 소음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먼저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지방은 낙후되었고, 그것은 오래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단단하게 살아있는 역량이 있다는 걸
제대로 본 적 있는가?
어떤 이는 지금도 공장에서 수출용 정밀 부품을 깎고 있고,
어떤 이는 지역에서 친환경 연료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어떤 이는 농어촌에서 자체 유통망을 구축해
자급자족형 생산 모델을 실험 중이다.
이것이 ‘지방’이다.
그러나 서울은 여전히 말이 많고, 정치도 말이 많다.
그 말 속에 지방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저 수치와 보조금의 대상,
표 단위의 계산 대상,
성장의 잔여 공간이 되어간다.
지방은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국가 구조의 재설계를 위한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그 실험을 말하는 이들이
진짜 그 땅을 걷고, 그 사람을 만나고,
그 삶을 이해했는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내가 경험한 지방은 단순히 불편하거나 낙후된 곳이 아니었다.
거기엔 지속성이 있었고, 노동의 품위가 있었으며,
살아가는 리듬과 인간적인 거리감이 있었다.
이것이 ‘지방의 가치’다.
우리는 왜 그것을 부끄러워하게 되었을까?
서울이 모르고, 정치가 모르는 것은
지방이 가진 구조의 복잡성이 아니다.
그들은 그 구조를 느끼려 하지 않았고,
느끼지 않기 위해 추상적인 말로 그 현실을 덮었다.
문제를 푸는 것보다, 말로 포장하는 게 더 쉬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구조가 지속될 수 없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그 말들을 걷어내야 한다.
누군가는 그 바닥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누군가는 그 느린 리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장을 마치며,
나는 어떤 정답을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 말은 꼭 남기고 싶다.
지방은 지금도 말없이 견디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곳을 떠났던 이유만큼
다시 돌아가야 할 이유도 존재한다.
서울이 모르는 것, 정치가 모르는 것.
그것은 단지 정보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