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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Jul 08. 2022

태어나서 처음으로 - 12. 홈리스

23살, 난생처음 홀로 떠난 교환학생

https://youtu.be/c6MwAcaY9vQ

오늘의 영상




바쁘지 않게 살고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나의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매일 어떤 일들을 해내야만 나의 효용을 증명한 것 같다는 안도감에 살아가는 사람인지라, 일은 나에게 있어 필수적이다. 샌디에이고에서도, 인턴 자리를 하나 구했다. 무급이고, 무려 서부에서 뚜벅이인 나는 가기도 힘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인턴 기자, 그 네글자가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단어다.


출근을 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한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나의 근무지에 도착한다. 차로 이동하면 20분인 거리지만, 돈이 없고 차가 없는 나는 시간과 노력으로 때우고야 마는 출근길이다. 출근하는 길에 많지 않지만 몇몇의 홈리스를 본다. 힐끔- 보고서는 무서워 자리를 피한다. 버스에서도 최대한 그들과 멀찍이 앉는다. 파산한 사람인 경우도 있지만, 보통 정신질환자, 또는 약물 중독자라고 했다. 공격을 당할까, 얼른 그들이 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척 한다.


두려운 마음과 함께 한편으론 마음이 안좋다. 그들은 왜 도태되어야 했을까. 왜 혼자 길에 머물러야 했을까? 흔히, 사람들은 그렇게 사회에서 떨어져나간 사람들을 보고 '게을러서' 그렇다고 한다. 어떤 사회에선 진짜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렇게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잡아먹고야 마는 세상에선 아닐 것이다. 그들은 없는 사람이다. 거주지도 없고, 신원도 불분명하다.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이 풍기는 냄새만 제외하면.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돈이 없다. 생존을 하기도 어려운데, 서류를 발급 받을 돈이 있을리가. 그들의 존재를 증명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 사람들은 고로 일을 할 수 없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에서 한 번 도태 당한 이후로 쭉, 무시되어왔다.

모두가 나를 향해 얼굴을 찡그리고야 마는 세상에 눌러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돈이라는 것은, 또 사람의 인생을 까맣게 삼켜버리는 것이다. 나의 인생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먹혀버린 인생들을 보면서 당황한다. 생각을 조금 숨기며 바닥을 보면서 몇 걸음 걷는다. 나도 여기서는 완전히 외지인이다.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여권을 잃어버린 후로는 더더욱. 나도 여기서 일군 것은 없다. 난 지금 나의 생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이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다르다고 그들을 이렇게 피하는가, 비겁하다.


버스의 큰 창을 통해서 도로 끝이 소실점을 향해 모여 들어가는 모습을 본다. 모든 생의 연장선은, 저렇게 같은 점에서 시작된 것일텐데-. 잠시, 왜 한국에선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의문한다. 아마 이런 생각을 주는 사람들을 볼 일이 적어서였을 것이다. 왜지? 대한민국은 복지 시스템이 미국보다 많아 도태되는 사람들을 사회로 쉽게 복구 시킬 수 있나? 그럼 그런 '복지'는 정신 질환자들을 모두 시설에 넣어버리는 건가? 그들을 한 곳에 몰아넣어 사회에서 단절시키는 것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명명될 수 있는가? 다시, 내가 감히 그들의 인생에 끼어 들어갈 수 있는지 고민한다.


내가 그들의 삶에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결정할 권리가 나에게 있는가. 복지가 적절히 사회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다시 보여지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것이 그들을 정말 위하는 것이고, 적절한 것일까? 무엇이 잘못된 지는 알겠지만, 어떻게 옳게 만들지는 모르겠다. 사람을 위한 시스템에 먹혀버린 사람들에 대해 고민하다 사무실에 도착한다.


기사 작성을 위해 밤 새 들어온 소식지를 넘겨본다. 샌디에이고 지역에 작은 전염병이 돌아 노숙자들 몇명이 사망했다는 기사였다. 2일 새 8명이 죽었다. 탈수와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이 병의 원인으로 더러운 물과 음식, 그리고 약한 면역력이 지적되었다. 허탈했다. 더러운 물과 음식을 먹는 것도 억울한데, 병까지 생기다니. 신은 어쩌면 공평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짧은 기사를 작성했다. 육하원칙에 의거한, 매우 짧은 기사였다. 난 회사에서 제일 막내, 선배들이 남긴 지면을 채우는 역할을 맡고 있는 쪼렙이니까. 1명도 아니고, 8명의 죽음을 200자 내외로 요약하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 간단한 문장들로 정리된 말들은, 마치 '일반적으로 우리랑은 상관 없지만, 알려드리는 거예요' 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들이 노숙자라고 해도, 우리가 그들의 죽음에 이렇게 둔감하다는 것에서 인간들의 냉정함을 보았고, 무서움도 느꼈다.


학교 조별과제로 서울역 노숙자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었다. 처음에 악취와 온갖 거친 말로 나에게 두려움을 주던 그들은 알고보니 삶에 상처받은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없던 자신에 대한 경멸감, 사회에 대한 혐오가 그들에게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픈 딸이 병원에서 아파할 때 돈을 걱정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죽고 말테니 아빠는 자신에게 돈을 쓰지 말라고, 나중에 여행을 가라고 하던 딸의 모습도.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울었다. 나도 울어서 카메라가 조금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딸이 살아있었으면 나와 비슷한 나이일 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더 울었다. 촬영 마지막 날, 그는 롯데리아 햄버거를 사 왔다. 선물이라며. 딸이 좋아했다던 새우버거였다. 세트로 사주고 싶었는데, 돈이 조금 부족했다고 했다. 촬영을 때려치고 싶었다. 난 목적을 위해 온 것일 뿐인데, 왜 나에게 이 사람은 이렇게 잘 해주나. 난 당신의 딸도 아닌데, 왜 나에게 당신의 순진함을 내보이나.


미국은 본 적 없이 파란 하늘로 눈을 부시게 만들고, 반짝이는 야자수로 현혹한다. 그래서 무엇인가 -  그것이 일이든, 자본이든 - 에 먹혀버린 삶들은 금방 그 맑은 햇빛의 아름다움에 홀리고 만다. 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은 쉽게 잊히기도 하니까. 보이지 않는 척, 관계 없는 척.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뙤약볕을 온전히 맞기만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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