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디저트는 여행자의 오아시스 - Riomaggiore, Italia
무더운 여름이었다. 남유럽의 햇살은 벗길 외투마저 남지 않은 나그네를 흐물흐물 녹인다. 물론 습한 한국의 여름과는 다르게 뽀송뽀송한 이탈리아의 공기는 그늘 밑을 피난소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아무리 느긋한 여행자라도 해를 피하긴 어려운 법. 나의 발을 당기는 곳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렇게 신난 발걸음은 한낮의 더위에 발목이 잡히곤 한다. 작열하는 태양빛을 한 번 맛보면, 그들이 이래서 선글라스를 끼는구나 몸소 깨닫는다. 맨눈을 찡그려가며 찍은 사진을 숙소에서 보면 두 번 깨닫는다.
따끔따끔한 햇살에 괴롭힘을 당하다 보면 여행의 열정도 맞불을 만나 한풀 꺾일만하다. 분명 나는 쉬러, 좋은 경험을 하러 온 것 같은데 분명 훈련이나 노동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눈에 들어오는 신선한 장면들이 마취제 역할도 하지만, 열기를 완전히 이겨내기는 역부족이다. 한낮의 더위를 레스토랑, 카페, 혹은 호텔에서 피한다고 해도 프라이팬처럼 달궈진 도시는 쉽게 식지 않는다.
하지만 고통의 이면엔 항상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상호와 제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모 기업의 TV 광고에서는 '여름이 좋은 이유가 어딘가에 시원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상품명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정확한 워딩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광고의 카피에 내 영혼이 격렬히 동의했으며 신경을 완전히 빼앗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 무더위 앞에서 우리가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서늘함이 일상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선, 당연하게도, 젤라또를 빼놓을 수 없다. 솔직히, 나는 젤라또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이 비유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누군가 신입사원 면접에서 써먹지는 않기를 기원한다). 그 근본은 여름의 우리를 만족시키는 차가운 아이스크림- 분명 다른 음식이지만, 우리가 보통 인식하는 이름을 잠시 빌린다 -이면서, 다양한 식재료로 빚어낸 총천연味의 음식이자 작품이다. 또, 그 자체로 훌륭한 여행 상품이자 문화적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너, 쌀 젤라또랑 수박 젤라또 먹어봤니? 완벽한 효도 상품이 아닐 수가 없다. 하나의 식품으로서 완전한 역할을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룰루랄라 더위를 피해 젤라또 가게, gelateria에 들어가면 우선 눈이 즐겁다. 다른 장식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젤라또가 가진 맛의 다양성은 곧 색의 다양성이다. 눈으로 고르는 재미가 있다. 시원한 매장 환경과 함께 먹은 더위는 새까맣게 잊었다. 나의 선택에 따라 금속 재질의 스쿱은 쫀득쫀득한 젤라또를 가른다. 이미 기대만발이다. 콘 혹은 컵에 담아 엔딩을 결정하는 재미 또한 챙긴다. 그 차진 감촉은 입 안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일반 샤베트 및 아이스크림과의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 맛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지금도 동전 몇 개를 건네고는 당당하게 가게를 나선다.
아무리 더워도 젤라또와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 향긋하고 달달하고 차가운 감각이 더위를 막아주는 양산처럼 느껴진다. 물론 가게 안에서도, 광장의 그늘에서도 젤라또의 맛은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 준비된 맛도 다양하고, 가게마다의 컬렉션도 다르기에 질릴 걱정도 없다. 이제 내 피엔 포도당이 넉넉하게 흐르고, 입 안엔 시원함이 달달하다. 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씩씩하게 나선다.
P.S. 또, 아무리 더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이탈리아에서 찾지는 않기를 바란다.
P.S.S. 추가로, 음식이 아무리 느끼해도 아메리카노 또한 웬만하면 찾지 않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