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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ca Jul 23. 2022

우울증이라구요?!(2)

안타깝게도 고액의 한방치료조차 내 병을 고쳐주진 못했다. 낫지 않는 몸 상태에 절망하며 그동안 쓴 병원비만 벌써 수백에 달했다. 이렇게 고달픈 삶을 이어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점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나쁜 마음마저 들기 시작했다. 현대 의학으로도 방법이 없다면 내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과연 무엇일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간절함이었을까?


우연한 기회에 강원도 산속에 난치병을 고치는 기도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지금이라면 혼자 이런 장소에 찾아가는 건 상상도 못 했겠지만, 죽을 만큼 절박하던 당시의 나에게 이성적인 사고가 남아있을 리 만무했다. 조금만 걸어도 쓰러질 듯 어지럽고 혼미한 정신으로 어느새 나는 기도원으로 가는 봉고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곳은 특이한 곳임은 분명했다.


깊은 산속에는 학교 기숙사 같은 몇 동의 건물이 있었는데 예상 밖의 많은 사람들이 머물며 기적(?)의 기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듯한 그곳에서는 집회와 식사시간 외에는 모두가 나가서 을 하며 자급자족의 공동체 생활방식을 따르고 있었다. 집단 체면에 걸린 듯 나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밭에 나가 상추를 감자를 캤다. 단순하고 규칙적인 생활과 친환경 식단의 힘이었는지 미친 듯 널뛰기하던 신경이 조금씩 안정됨을 느꼈다. 나처럼 아픈 사람들이 기도를 받고 싹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빨리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다.


마침내 찾아그날, 두근거리며 들어간 기도실 에는 하얀 옷을 입은 할머니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 아픈 머리와 목을 꿰뚫어 보더니 치유의 기도를 해준다고 했다. 그냥 조용히 기도만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수행하던 아주머니 두 분이 다가와 내 양팔을 잡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가 나의 아픈 목을 두드리며 본격적인 기도를 시작하자 마치 불에 타는듯한 통증이 식도에 느껴졌다. 작고 가냘픈 할머니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공포스러운 일이다. 갑작스런 위기 상황에 기함한 나는 비명을 지르며 팔을 뿌리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 곳을 빠져나왔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죽고 싶을 만큼 아프고 우울하나에게 사실은 아주 강력한 삶의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출구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기도원 사건의 충격으로 한동안 칩거했던 나는 고등학교 친구였던 숙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녀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몇 안 되는 나의 여고시절 친구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숙을 만났는데 순정만화에 빠져있던 우리는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필기조차 하지 않던 숙은 시험 전날에도 하루 종일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냈고 그런 그녀와 함께했던 나는 첫 시험을 보기 좋게 망하고 말았다. 같이 놀았는데 숙은 전교 1등. 알고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대표로 경시대회에 나갔던 IQ 150의 천재였다. SKY를 목표로 하는 소수정예 특별 반이었던 그녀는 서울대 입시 전날에도 영화를 보러 나갔다가 결국 지방의 한의대로 진로를 전향했던 것이다.   


각설하고, 과 마음의 병으로 만신창이가 된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나 환자와 의사의 모습으로 숙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미 유명 한방병원에서 크게 데었던 터라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천재성을 알기에 몸에 좋은 보약이라도 한 첩 지을까 했다. 특별히 정신건강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강남의 - 정신 분열증 치료로 유명한 – OOO 한의원에서 몇 달간 수련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오직 대화로만 환자를 치료한다는 진료비 수천 만원대의 OOO 한의원에서 숙이 배운 핵심은, “~해야 된다” 생각만 버려도 마음의 병이 대부분 낫는다는 것이었다.     


내려놓는 법.


단순하지만 중요한 숙의 조언대로, 나는 조용히 내면을 관조하며 나를 압박하는 수많은 생각과 걱정들을 하나하나 노트에 정리하며 내려놓기를 시도했다.


 빨리 이직해야 는데.. ”

"  내년엔 이사 가야 는데.."

 결혼해야 는데..”

 부모님이 건강하셔야 는데..

...


무엇보다 “얼른 몸이 나아서 예전처럼 다시 정상적으로 살아야 는데”라는 조급하고 초조한 염려 자체가 지금의 나를 가장 무겁게 압박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많은 “~해야 된다” 는 강박들은 지금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당장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아니었다. 내면의 지나친 강박과 불안이 신체화로 발현되어  나를 이토록 아프게 한 것이다.


나름의 결론.


나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먹고, 자고, 생각(걱정)이라는 것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쓸데없는 망상과 잡념을 떨치기 위해 눈을 뜨면 힘들어무조건 밖에 나가 땀이 나도록 걷고, 산에 오르며,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아프고 난 후로 10kg 가까이 살이 빠지고 손끝도 수시로 떨려왔지만 이렇게 땀을 흘리고 산에 오르면 내면에 뭔가가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를 짓누르던 불필요한 걱정과 생각들을 내려놓으며 점차 기나긴 터널의 끝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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