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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맘워너비언니 Oct 11. 2023

싱글맘 질투 시기라는 감정을 내려놓기

안녕하세요, 싱글맘 워너비 언니입니다. 오늘은 질투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보다 잘난 것 없는 것 같은데 왠지 나보다 더 이쁘거나 잘생기고, 건강하고, 능력 있고, 돈도 잘 벌고, 돈도 많고 남자복도 많아 보이고 부모도 잘 만난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인생이 불공평한 것 같고 열심히 살 이유가 없어지는 것 같을 때가 있지요?


 

부러움, 시기 질투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으로 내가 마음이 힘들고 상대를 미워하게 된다면 그때는 그러한 감정은 나와 주위를 파괴하는 악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잘 다스려야 할 감정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질투 나는 사람을 멀리하고 안 보고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작은 성공을 이루어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회피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발전할수록 그때 질투했던 사람들보다 훨씬 잘난 사람들을 계속해서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요.



나는 발전하는데 나보다 잘난 사람들은 늘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그때마다 질투라는 감정을 느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사람들은 원래 잘난 거라고 생각하며 체념하면서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요?



내가 아무리 예전보다 잘되고 돈 벌고 능력이 생겨도 질투가 생기는 마음 자체를 이해하는 순간에 오히려 질투에서 초연해졌습니다. 



제가 그렇게 마음먹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모든 억눌린 감정과 생각은 더 강력하게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온다.



자존심이 상해서 질투가 나도 질투 나지 않은 척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일단 생긴 감정과 생각은 그 원인과 이유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나를 평생 쫓아다닐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몸이 아프거나 술에 취하거나 그럴 때 그런 질투의 감정 때문에 더 괴로울 수 있습니다. 



나는 왜 그 사람에게 질투가 났을까?



예를 들어, 남편이 외도를 한 상대가 나보다 어린것 말고는 아무것도 잘난 것이 없어 보이면 그 어리다는 이유 자체로 질투를 시작하는 여성분들이 많습니다. 모든 사람은 나이가 들고 노화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노화된 나는 여자로서 가치가 없어지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어서 나보다 못나 보이지만 어린 저 여자보다 나의 가치가 낮아지는 감정을 가져야만 할까요?



진짜 질투라는 감정의 밑바닥에는 상실과 결핍에 대한 두려움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못났기 때문에 남편도 뺏기고 다시는 남편을 가지게 될 수 없을 거라는 상실감과 두려움이 있는 것이죠. 외도 자체는 내가 못난 것과는 관계가 거의 없습니다. 각자의 심리적인 이유가 더 큽니다. 나보다 학벌이 낮은데도 좋은 직장과 더 높은 연봉, 더 잘 나가는 사업체를 가지고 있어서 배가 아플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나는 그 사람보다 학벌, 능력이 좋은데도 더 가지지 못한 결핍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지금 가지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평생 가지지 못할 거라는 오해와 착각이 이성을 마비시킬 수도 있는 파괴적인 감정을 만들고 그로 인해 마음이 피폐해질 수 있고 그러한 피폐해진 마음으로 현실에서는 더 성과를 가지지 못하는 악순환의 현실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결핍과 두려움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그냥 받아들이세요.



지금 가난하고 상실된 관계에서 상실감과 두려움 슬픔을 뼛속까지 느끼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감정이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며칠 동안 실성할 정도로 울고 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자존심 때문에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두려워도 두렵지 않은 척을 하게 되면 공황장애라는 더 큰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결핍,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오해와 무지에서 출발한 것이다.



내가 잘나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은 너무나 큰 무지입니다. 종교나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 자체가 사랑이고 모든 존재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사실 아무런 감흥이 없습니다. 저는, 원래 인생은 불공평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각자 태어난 의식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눈앞에 펼쳐지는 인생의 레벨도 각자 다 다르게 됩니다. 흑인 할렘가에서 태어나 할리우드 셀레브리티가 될 수도, 재벌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마약에 찌들어 자살로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듯이 모든 인간은 인생 모든 찰나에 내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자유의지로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는 싱글맘인 현실 앞에서 “나는 돈을 더 많이 벌 거야", “나는 더 건강하고 아름다워질 거야"라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인생의 선택과 태도는 더 많은 가능성과 더 나은 현실을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나이에 이혼맘이라 다 수군거릴 테니 사람들을 피하고 살자”, “ 이 나이에 무슨 도전이야?”,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진 태도는 앞으로도 의구심 가득하고 체념해야만 하는 현실을 창조해 낼 것입니다. 



내가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그 사람도 결국 인간이고 그 사람 나름의 인생의 고충과 힘듦이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 인생의 우주를 보거나 겪은 적이 없고 내가 가진 상실과 결핍의 두려움에 의해 마냥 부러워하고 질투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겠죠?

 


나보다 나아 보이는 현실을 가지고 있다고 그 사람을 마냥 시기 질투하고 있으면 나는 언제 발전해야 합니까? 그리고, 인생의 기준이 왜 꼭 그 사람이어야만 할까요? 기준과 중심이 내 내면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자문해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시기 질투하고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냉정해져야 합니다. 



나의 경쟁상대는 어제의 나라는 구태의연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질투라는 그 감정은 내 내면이 튼실하지 못하여 나는 평생 결핍되고 상실만 경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굴복한 것인지,  아니면 해낼 자신이 없어 미워하고 깎아내려야 할 누군가가 필요한 것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결혼생활이 외도로 깨어졌다면 외도의 원인 제공이 나에게 정말 눈곱만큼도 없었는지, 그 이전 남편을 단 한 번도 깎아내린 적이 없었던지, 마음속으로 원망하고 저주했던 적은 없었던지 자문도 해봐야 합니다. 그러한 자아 성찰 전에 무조건 전 남편과 외도녀를 욕하고 미워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반쪽짜리 분석이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상간으로 인해 파경을 경험한 커플의 공통점은 이미 외도 이전에 정서적인 이혼을 완료했다고 대부분 인정합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상간녀, 상간남을 공격하는 것이 소송에 도움이 된다면 그러할 수도 있지만, 이미 정서적 이혼을 했으면서 상황을 욕하는 것은 아마 동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인생은 아무것도 상실될 것이 없습니다. 이 몸도, 관계도, 학벌도, 자격증도, 돈도 어차피 잠시 빌린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사과가 사과를 소유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돈을 흐르게 하는 통로이지 돈 자체를 소요할 수 없기 때문에 둔 그릇을 키우라는 이야기를 수많은 부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상실되고 결핍될 것이 없습니다. 그것에 대한 두려움만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나의 사람 그릇, 둔 그릇을 키워가는 수행이 전부라는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보면 더 편해지지 않을까요?

 

 



세 번째,  애정결핍은 자기 파괴를 낳을 수 있다.



한때 저도, 미친 듯이 공부하고 어느 정도 성적을 유지해야 어머니로부터의 꾸지람과 잔소리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성적을 조져버리고 나는 원래 하기 싫은 공부였으니 내가 알아서 할 거야라고 대들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 성적을 유지해야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그다지 재밌지도 않은 공부를 의무감처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는 학원과 많은 사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학원을 다 다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는데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시험 직전이면 EBS 강사를 집에 초빙해 과외를 받는 아이를 보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 사립대에 진학하고 그 아이는 지방 전문대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래도 그 아이는 집으로부터 끝없는 지원과 풍족한 용돈과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고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대형 세단을 끌고 다녔습니다. 



같은 시기 아버지는 두 집 살림으로 지방 근무를 핑계 대며 1년에 단 며칠만 서울에 오는 생활을 하였고 아무런 재정적 지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은 기본이고 핸드폰 건너로 애정 섞인 “우리 딸 언제 집에 올 거야?"라는 음성을 옆에서 들으며 시기 질투와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수능 당일에도 두 집 살림으로 저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 진학 후, 그때, 사랑받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부모는 사랑을 주지 않고, 부모는 가난한 데다 자식에게 애정도 없고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고 세상을 원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자인 그 아이도 시기 질투했었지요. 나의 애정결핍은 부모도, 친구도 다 원망하고 세상도 원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생존을 위해서 저는 잠시도 멈추지 못했습니다.  자격증 시험을 보고 국내 대형 회계법인,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부자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30대 중반까지 부잣집 이쁜 딸로 인생을 즐기고 적당히 결혼해서 적당히 잘 살고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대한민국 가장 부촌에서 가장 큰 아파트 평수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보면 다 부럽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의아했지만, 그녀들은 모두 다 진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너는 스스로 거기까지 일궈낸 거고,
우리는 남이 만들어준 성 속에서 살고 있으니
주인 행세를 제대로 못하잖아.



제가 그들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자연히 없어진 시기도 아마 제가 자격증을 취득하고 첫 회사에 들어갔을 때부터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제가 시기와 질투 대상이 되었습니다. 소심했던 저는 시기 질투를 표현하지 않고 공부로 풀었지만, 그녀들은 험담으로 저를 공격해서 조금씩 멀어졌고 이혼을 계기로 완전히 보지 않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혼은 그녀들이 시기 질투했던 내가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상황이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내가 그렇게 고군분투했어야만 했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애정결핍에 대한 공포의 감정은 강력합니다. 늘 불안하고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하고 뒤처질 것 같고 번아웃이 와도 쉬지 못하고 계속 뭔가를 하는 중독적이고 강박적인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그러한 결핍감을 다행히 좀 더 생산적인 방향에 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런 결핍감을 느끼지 않고도 열심히 해서 더 편안하고, 너그럽고, 여유로운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에게 애정결핍을 심어줬던 저의 부모님은 저의 눈치를 많이 보고 저를 무서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늙고 나약해진 저들 때문에 그런 결핍감을 느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처구니없기도 하고요. 



부모가 된 저는 그래서, 애정을 미끼로 아이에게 어떠한 것도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습니다. 애정 그 자체를 미끼 삶으면 그것은 어마어마한 인생의 대가로 돌아온다는 것을 제 부모님 말고도 많은 케이스를 보고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의 치부일 수도 있는 수십 년간의 제 일화까지 이야기하며 말씀드린 이유는 질투와 시기는 다 허망이고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드리기 위함입니다. 



다음에 좀 더 알차고 진솔한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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