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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령 Jul 15. 2024

나를 인정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1)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세계관 파악

처음 발표한 때로부터 꼭 사십 년이 지났다. 그사이에 나는 서른한 살에서 일흔한 살이 되었다. 나에게 이 작품은 줄곧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신경쓰이는 존재였으므로. 그것은 역시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가시였다. 사십 년만에 새로 쓰면서 다시 한번 ‘그 도시’에 돌아가보고, 그 사실을 새삼 통감했다.
요컨대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80년판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미진하다는 생각에 2010년대에 <세계의 끝과 하이보일드 원더랜드>로 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한 번 더 다른 버전으로 이행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2020년판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다. 위의 인용구는 책의 ‘작가후기’를 일부 편집한 내용이다. 작가는 40여 년 간 같은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작가가 잘 꺼내놓고 싶었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일수록 쓰기 어려운 것은 어느 작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하루키가 벽과 도시로 만든 견고한 세계관을 이해하며 이 소설을 읽어보자. 물론 답은 책을 읽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이야기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 서평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심리학자인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을 참고하였다.



도시는 무엇일까?


움직임이 없고 말수 적은 이 도시에서 너는 태어나 자랐다. 간소하고 정밀한, 그리고 완결된 장소다. 전기도 가스도 없고, 시계탑에는 바늘이 없고, 도서관에는 단 한권의 책도 없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본래의 의미만을 지니고, 모든 것이 각자 고유의 장소에, 혹은 눈길이 닿는 그 주변에 흔들림 없이 머물러있다.
“제가 생각하기에 도시를 둘러싼 벽이란 아마 선생님이라는 한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의식일 겁니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의식은 빙산과 같아, 수면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건 극히 일부입니다.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가라앉아 감춰져 있습니다.”


주인공의 첫사랑인 소녀는 주인공에게 한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소설은 ‘현실’과 벽 내부의 세계인 미지의 ‘도시’가 배경으로 나온다.


위의 내용은 미지의 도시에 대한 설명이다. 도시는 빈틈없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벽에는 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문지기가 지키고 있으며 하루 중 일정한 시간에 벽 외부에 사는 짐승만이 그 문을 오갈 수 있다. 벽은 자유롭게 모양을 바꿀 수 있어 주인공은 도시 내부의 지도를 그리려고 하지만 완성할 수 없었다. 도시 내부는 완결된 공간으로 묘사되며, 결정적으로 그곳에는 ‘그림자’가 없다. 주인공이 문을 통해 도시로 들어갈 때도 그림자를 떼어놓고 들어가야했다. 과연 그곳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이야기의 후반부에 도시로 떠나버린 소년을 찾는 소년의 형이 등장하여 도시에 대한 힌트를 준다. 도시는 ‘의식’의 세계라는 것. 프로이트에 ‘지형 이론’에서는 인간의 정신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의식은 빙산이 물 위로 솟아있는 뾰족하고 작은 일부분으로 묘사된다. 전의식은 물 바로 밑에 잠겨있는 부분이고, 무의식은 물 속에 깊이 잠겨있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도시는 ‘의식’의 세계이다. 의식은 지금 알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며, 현실원칙에 의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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