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인물
도시를 둘러싼 벽에는 문이 하나뿐이다. 그 문을 여닫는 일이 문지기의 소임이다.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입구에서 문지기에게 내 그림자를 맡겨야 했다.
“그림자를 달고선 벽 안쪽에 발을 들일 수 없어.” 문지기는 그렇게 고했다.
“오래된 꿈이란, 이 도시가 성립하기 위해 벽 바깥으로 추방당한 본체가 남겨놓은 마음의 잔향 같은 것 아닐까요. 본체를 송두리째 모조리 들어낼 순 없고, 아무래도 뒤에 남는게 있어요. 그 잔재들을 모아 오래된 꿈이라는 특별한 용기에 단단히 가둔 겁니다.”
내가 보는 한 눈앞에 있는 건 병조림처럼 가둬진 ‘혼돈의 소우주’일 뿐이다. 우리의 마음이란 이토록 불명료하고 일관성이 결여된 것인가?
한 소녀가 당신 인생에서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춘다. 당신은 그때 열일곱 살, 건강한 남자아이이다. 그리고 그녀는 당신이 처음 입맞춤한 상대다. 당신이 누구보다 강하게 이끌린 아름답고 멋진 여자아이다.
“여기 있는 나한테는 실체 같은 게 없고, 내 실체는 다른 어딘가에 있어. 지금 여기있는 나는 언뜻 나처럼 보여도 실은 바닥이나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왜 나를 만나고 싶었어요? 나는 당신이 좋아했던 열다섯 살 소녀가 아니에요. 우리가 원래 하나였는지 몰라도 어릴 적에 떨어져 벽 안과 바깥으로 갈라졌고 서로 다른 존재가 됐어요.”
이제 알겠어? 우리는 둘 다 누군가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