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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이령 Jul 15. 2024

나를 인정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3)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인물

인물 1: 문지기


도시를 둘러싼 벽에는 문이 하나뿐이다. 그 문을 여닫는 일이 문지기의 소임이다.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입구에서 문지기에게 내 그림자를 맡겨야 했다.
“그림자를 달고선 벽 안쪽에 발을 들일 수 없어.” 문지기는 그렇게 고했다.


소설에는 의식, 무의식 뿐만 아니라 전의식에 대한 묘사도 나온다. 전의식이란 의식에서 쓰이지 않는 데이터가 축적되는 공간이다. 주의집중을 할 때 전의식 속 기억이 의식으로 나올 수 있다.


우리에게도 소설 속 문지기와 같이 의식의 수문장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융의 심리학 이론에서도 그 설명이 나온다. 우리가 경험한 수많은 것들은 의식까지 도달하기 전까지 자아가 많은 부분을 걸러내어 제거한다. 실제로 자각하는 것은 아주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지기는 주인공의 그림자를 떼어내거나 돌봐주는 역할을 하면서 의식으로 나타나려는 무의식을 관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문지기의 중요한 역할은 일정한 시간에 문을 열고 닫으며 북쪽 문 밖에 사는 동물들을 들여보냈다가 내보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동물은 우리의 무의식에 사는 본능과 같고, 우리의 본능은 동물이 번식 과정 후에 버려지는 것과 같이 의식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 다시 억압된다.   



인물 2: 나(꿈 해설사)


“오래된 꿈이란, 이 도시가 성립하기 위해 벽 바깥으로 추방당한 본체가 남겨놓은 마음의 잔향 같은 것 아닐까요. 본체를 송두리째 모조리 들어낼 순 없고, 아무래도 뒤에 남는게 있어요. 그 잔재들을 모아 오래된 꿈이라는 특별한 용기에 단단히 가둔 겁니다.”
내가 보는 한 눈앞에 있는 건 병조림처럼 가둬진 ‘혼돈의 소우주’일 뿐이다. 우리의 마음이란 이토록 불명료하고 일관성이 결여된 것인가?


도시 속 주인공의 직업은 꿈해설사로 무의식의 내용을 불러와서 읽는 역할을 한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은 꿈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전의식의 기억들이 꿈의 형태로 위장되어 의식으로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꿈의 해석을 통해 대상자의 무의식 내용을 파악하려는 시도를 했다.


주인공이 도시에서 꿈 해설사라는 역할을 맡은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도시에서 유일하게 그림자를 가진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의 꿈(무의식)을 읽어 내는 것. 그림자는 주인공이 이러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진짜 인간만이 공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인공이 꿈 해설사가 되기 위해 눈에 상처를 내거나, 후반부에 소년이 주인공의 귀를 무는 행동을 하는 것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의식은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된다. 감각기관에 손상을 입는다는 설정이 주인공은 의식보다 무의식에 영향을 더 받는 사람으로 설정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 3: 소녀


한 소녀가 당신 인생에서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춘다. 당신은 그때 열일곱 살, 건강한 남자아이이다. 그리고 그녀는 당신이 처음 입맞춤한 상대다. 당신이 누구보다 강하게 이끌린 아름답고 멋진 여자아이다.
“여기 있는 나한테는 실체 같은 게 없고, 내 실체는 다른 어딘가에 있어. 지금 여기있는 나는 언뜻 나처럼 보여도 실은 바닥이나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왜 나를 만나고 싶었어요? 나는 당신이 좋아했던 열다섯 살 소녀가 아니에요. 우리가 원래 하나였는지 몰라도 어릴 적에 떨어져 벽 안과 바깥으로 갈라졌고 서로 다른 존재가 됐어요.”
이제 알겠어? 우리는 둘 다 누군가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의 실종은 하루키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티브이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첫사랑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그후 중년이 된 주인공은 소녀가 진짜 자신이 산다고 말했던 도시로 어느 날 갑자기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소녀는 주인공을 알아보지 못한다. 주인공이 소녀에게 묻자 소녀는 자신은 당신이 좋아했던 열 다섯 살 소녀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은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될 뿐, 현재 실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다가 그 대상을 잃는다면 그 상실의 기억은 현재의 나의 삶에도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 소설은 과거의 기억에 끊임없이 영향받고 있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년된 주인공이 사는 실제 세상에는 더이상 그가 사랑했던 열다섯살 소녀가 없다. 성장과 성숙은 그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고 완전히 놓아주어야 다음 단계가 시작될 때 이루어진다.


소설은 수미상관의 구조를 가진다. 1부의 시작 장면과 3부의 마지막이 비슷하다. 3부의 마지막에는 중년의 주인공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소녀를 만난다. 자신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소녀를 만난 것처럼 묘사된다. 그때 소녀는 주인공에게 ‘우린 둘 다 그림자에 지나지 않다.’고 말한다. 그 말에 주인공은 자신이 어린시절 자신과 소녀에게 사로잡혀 살아왔음을 깨닫는다. 꿈 같은 그 장면 이후에 주인공은 도시를 빠져나와 현실 세계로 완전히 돌아오게 된다.


진짜 소녀가 산다는 완결된 그 도시는 현실일까, 비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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