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쥐방울 Jun 03. 2024

특수교육대상자가 된 아이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던 평일 오전이었다. 가족 모두가 직장과 학교, 유치원을 별일 없이 잘 가주었기에 그야말로 정적만이 흐르는 단 몇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무언가를 먹고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고, 자그마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며 히죽거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발신번호 070으로 시작하는 전화벨이 울렸는데 발신처가 어딘지 퍼뜩 떠올라 안면근육이 약간 경직될 정도로 조금은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사실 기다리던 전화였다. 4월 말에 유치원생 아이의 특수교육대상자 신규 접수를 했고,  일주일 뒤 진단평가를 받았으니 5월 말에 결과를 알려주겠다던 그 연락이 분명했다.


예감이 맞았다. 발신상대는 교육지원청 특수교육센터 담당자분이었고, 아이가 선정이 되었다는 결과를 알려주셨다. 관련서비스는 현 기관 담임선생님께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덧붙여주셨다. 소식을 듣자마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도 그럴 것이 특수교육 세계에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어미는 이번 일의 결과에 대해 어느 쪽이 높은 확률일지 섣불리 예측하지 못했고 반신반의한 마음이었다. 심지어 이번 심의에서 탈락하게 되면 같은 진단평가로 두 번은 더 심의를 더 넣어볼 수 있기에 어떤 유형으로 다시 넣어봐야 하나 플랜을 짜보기도 했었다.


통화 종료버튼을 누를 때까지 감사하다는 말씀을 족히 세 번은 넘게 한 듯했다. 아이에게 무엇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응답해 준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서는 곧장 펑펑 눈물만 났다. 이것이 나와 내 아이가 잠시라도 앞으로 살아갈 현실세계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2024년 중반에 신규로 특수교육대상자가 된 아이는 고작 6개월 뒤면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거주지역에서는 상급학교 진학 시 대상자 재신청을 해야 하기에 선정소식을 듣게 됨과 동시에 한 달 전에 준비했던 서류와 거의 유사한 서류를 한 번 더 준비해서 기관에 전달해야 했다.


처음 준비하는 것이 아닌데도 여전히 빈칸을 하나하나 채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비장애아동이지만 특수교육에서 분류하는 8가지 유형 중에 해당될법한 장애유형을 골라 적는 것, 대상자 의뢰 사유 등 머리로는 숨이 턱턱 막히는 장벽이었지만 그래도 꾸물거릴 여유 없다며 빠르게 움직여주는 손 덕분에 마칠 수 있었다.



교육청에서 분류하는 신분은 일반 유치원생에서 특수교육대상자로 달라졌지만 사실 당장 크게 무언가 바뀐 것은 없다. 만 5세 아이는 취학을 준비해야 하기에 특수교육 학급이 있는 유치원으로 따로 옮길 의사를 비치지 않았고, 현재 유치원에서 일반학급으로 지내면서 초등에 적응하는 것을 더 목표로 삼았다.


사설 발달센터에서 언어치료를 주 2회 받고 있는 것도 모두 자비로 다니고 있지만 앞으로 교육청에서 지원되는 바우처가 있다면 방학 때 더 횟수를 늘리게 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는 초등 저학년까지 특수교육의 도움을 받아 단체생활 및 동학년 학습에 어려움을 덜 겪길 바라는 마음이다.


단기간에 극적인 발달 성장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아이들이 있고, 무엇보다 나를 지키면서 불행한 육아를 하지 않으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는다. 주말이 지나가고 이렇게 월요일이 또 찾아오는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그런 엄마 아닌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