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스케일링할래요!"
초등 3학년 어린이가 말한 문장에 들어있는 스케일링은 이에서 치석을 제거하는 그 스케일링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아이가 치아를 드러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여기서 이유라도 물어봤어야 뭔가 흐름에 맞을 것 같지만 어떤 연유가 나올지 두려워 일단 알아보겠다고 하며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아이가 스케일링을 언급한 날은 주말이었고, 월요일이 되면 평소 다니던 어린이치과에 연락하여 예약을 잡을 요량이었다. 잊지 않기 위해 메모장에 적어두기까지 했다. 주말 동안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나는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고른다면 1순위로 단연 치과를 꼽는 어른인데 이 이린이는 뭐지라는 마음이었다.
내가 혹시 무언가 못 보고 지나친 게 있나 싶어서 몇 달 전 학교에서 마친 학생구강검진 결과 통보서를 다시 펼쳤다. 모든 항목에서 특별한 이슈는 없고 정상 소견이었다. 작년 치과에서 검진 시 영구치만 첫 스케일링을 권유받아서 몇 번의 시도는 모두 실패하고 몇 주 후 재방문에서야 성공했던 기억을 아이는 다 잊은 듯싶었다.
어느 커뮤니티에서 외향형 자녀가 전교회장에 출마하려는데 내향형 엄마가 내심 마음속으로는 아이가 나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글을 보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내 꼴이 딱 그 꼴이다. 자신의 구강건강을 챙기려 치과에 방문한다는 아이를 보고 조용히 치과 예약을 잡은 것으로 할 일을 해냈음에 다행으로 여긴다.
예약 문의 시 아이가 앞니 영구치만 스케일링을 원해서 예약을 잡으려 한다는 말에 오랜만의 방문이라 검진도 함께 진행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상기시키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이도 치과에서도 모두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며칠 후로 치과 방문 예약을 잡아두었다고 아이에게 전달했고, 아이는 알겠다며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막상 가려니 겁이 난다며 취소해 달라는 말을 내심 기대한 어미였나 보다. 역시 어미의 마음이 새어나가지 않아서 다행이고 자녀는 부모와 다른 인간임을 다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집 앞에 도보로 갈 수 있는 치과가 있었지만 아이는 차로 20분 가야 하는 어린이치과를 고집했다. 부모로서는 번거로운 일일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아이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 치과에 방문하는 힘을 기르기에는 원하는 방향으로 손을 들어주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예약 당일 아이의 평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양치와 치실을 한 후 바로 출발했다. 오랜만의 치과 방문에 검진을 위한 엑스선 촬영도 진행되었다. 아이가 엑스선 촬영을 하러 들어간 사이 문 밖에 서있는데 우연히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진료차트 메모가 눈에 띄었다.
'스케일링하러 어머니가 아이 설득해 보시다가 진정되지 않아 다음에 다시 오신다고 하심'
피식 웃음이 났다. 작년의 일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데 아이는 어느새 성장해서 본인이 스케일링을 하러 오겠다니 솔직히 나에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지난 과오를 들추면 머쓱해할까 봐 그런 에피소드가 떠오를 때엔 입은 다물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경향이 있다. 이마의 주름은 덤이다.
치과 베드의 눕는 방향도 헷갈릴 만큼 오랜만에 방문한 아이는 이후 제법 편안하게 누워서 검진을 받았다. 치과용 거울로 꼼꼼히 검진한 결과 충치는 없었고, 흔들리고 있는 치아와 남은 유치의 개수 그리고 현재 사랑니 여부까지 알게 되어 예상외로 값진 시간이었다.
치과의사는 정말 스케일링만 하면 되겠다고 말씀하신 뒤 치위생사분이 나타나셨다. 아이의 예상대로 시간은 흘러갔고, 여전히 온몸에 긴장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아 보였다. 스케일링이 막 시작되려는데 치위생사분은 의아한 표정으로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스케일링이 하고 싶었어?"
같은 마음이라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벌어졌고, 아이는 그저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는 듯 표정을 지어 스케일링이 시작되었다. 언제나 치과 치료를 받을 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의 발 밑에 앉아있던 나는 아이의 발을 잡아주었고, 짧은 외마디가 두세 번 정도 들린 후 끝났다.
일부 치아만 스케일링하고, 엑스선 촬영까지 한 비용 11,000원을 수납하고 기분 좋게 치과를 나왔다. 그동안 치아 관리에 애써주어 고맙고 자랑스럽다며 쌀 반가마니나 되는 아이를 1초 정도 번쩍 들어 올렸다. 엄마도 어린이치과에서 좀 받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던지자 아이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발을 감싸 쥐는 스킨십은 누웠을 때 불편하지 않았을까 물으니 추웠는데 오히려 좋았다고 피드백을 해주었다. 9살에 첫 스케일링을 시작한 어린이는 19살이 되면 스케일링 10년 차가 될 테니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오늘도 어린이는 놀라우리만치 내가 그리도 원하던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 '건강한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