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제도로 부모와 큰 대치 없이 무난하게 독립이라는 과제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 덕분에 20대 중후반에는 나에게 무슨 과거가 있었냐는 듯 까마득하게 잊고 마치 새 출발을 하듯 지내왔다. 그러다 출산을 하고 아기의 신생아시절 자연스레 엄마의 도움을 조금씩 받다가 잊힌 기억 세포들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잊힐뻔한 기억 세포들은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하마터면 영영 멀어질 뻔하다가 다시 찾아온 일상에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기억들이 자주 날 괴롭히는 것은 아니었다. 명절과 식구들의 생일날을 포함하면 대략 한 달에 한 번쯤 부모님을 만나게 되는데 이 기억들도 딱 그만큼 불편하게 하는 정도다.
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 정체를 한동안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식당에서 만나 밥만 먹고 헤어지고, 손주들을 보러 오셔서 용돈만 주고 가시는데도 내 안의 무언가 불편한 감정은 때마다 항상 남아있었다.
불분명한 감정들의 출처를 찾기 위해 한동안 불편함을 참고 꽤 오래 마음을 들여다봐야 했다. 그랬더니 20년 넘게 지속적으로 딸의 몸에 대해 말을 했던 엄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제일 첫 순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나를 맨 처음 돼지라고 부른 사람이 엄마라는 걸.
장난인 듯 약간은 충격받고 다이어트하길 바라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어쨌든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 하는 말이란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런데 학교에서 친구들이 놀리듯 해대던 말들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초등 고학년 아이는 엄마의 말이 이리도 오래 꼬리표처럼 본인을 따라다닐 줄은 몰랐을 것이다.
초등 고학년 어린이는 아쉽게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뚱뚱을 벗어나지 못했다. 상위권의 성적이 아니었음에도 잘하고 싶었던 열망만 가득했던 여고생은 20대가 되어 극도의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자 뚱뚱에서 통통의 단계로 넘어왔다. 엄마는 통통만 되어도 딸을 아주 흡족한 모습으로 바라보셨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