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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wnist 오니스트 Jul 24. 2022

스타트업 대표가 1주일 자리를 비워도 될까?

2년 만에 다녀온 첫 해외 출장에서 배운 것

오니스트를 창업한 지 이제 만 2년이 되어간다.

회사의 전반적인 방향을 잡고, 인사와 회계 업무를 처리하고, 내 일을 하고, 실무 담당자들에게 피드백과 코칭을 전하고… 나 없이 돌아가는 회사는 사실 상상하기 어렵다. 아직 10명이 안 되는 작은 팀이기에 대표가 주장이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연차를 써본 적 없고, 2일 이상의 휴가는 상상도 못 한다. ‘뛰어난 성취를 위해서는 평범하지 않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일상. 내 일도 일이지만, 오니스트의 비전을 함께 만드는 주니어 팀원들이 많기에 실무를 하나하나 피드백하는 과정을 빠뜨릴 수 없다. 그들이 빠르게 성장해서 지금의 능력 이상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 나의 중요한 역할이다.



아무리 일이라지만, 내가 1주일이나 없어도 될까?


3월 말부터 우리 팀은 신제품 개발을 위한 원료사 서칭에 한창이었다. 그러다 5월에 유럽 최대 규모의 건강보조식품 박람회 Vitafoods Europe 개최 소식을 알게 되었다. 지난 2년간은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참가만 가능했는데 드디어 오는 5월 스위스에서 열린다고..!


오니스트를 창업하고 원료사와 메일, 화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원료사 사람들과 직접 만나지 못한다는 것. 코로나 상황도 있었지만, 원료사들이 전 세계 곳곳에 퍼져있어서 내가 직접 방문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했다.


영국과 유럽에 있는 모든 원료사들이 스위스 제네바에 모이는 자리, Vitafoods Europe은 3,000개 이상의 회사가 모여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공개하고 네트워킹하는 박람회다. 나에겐 꿈같은 곳이었다. 요즘 건강보조식품 시장의 담론은 뭔지, 우리 기준에 맞는 우수한 원료들이 얼마나 많이 나올지, 너무 너무 너무 궁금했다. 심장이 쿵쾅 뛰었다.


Vitafoods Europe


오니스트 이전 창업(맞춤형 건강기능식품 큐레이션 플랫폼) 때부터 나는 영양과 영양제 시장 자체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사실은, 컨설턴트 시절 매일같이 밤을 새우며 영양제로 건강을 챙길 때부터 쭈욱. 영양제 덕후가 이 시장에 유의미한 점을 찍어보겠다고 창업을 한 거다. 그 정도로 큰 목표와 관심이 있다면, 서울에 머물며 리서치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


가고 싶었다. 정말로. 하지만 우리 팀을 한국에 남겨둔 채 1주일 자리를 비우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 없이 회사가 괜찮을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은 물론, ‘내가 스위스에 갈 때야? 당장 할 일이 태산인데. 우리같이 작은 회사에서 대표가 자리를 비우는 게 말이 되니?’ 라며 내 생각을 검열하기도 했다.



나를 떠나게 한 2가지 계기


적절한 시기에 알게 된 <나는 4시간만 일한다>라는 책. 이 책을 읽으며 내 관점을 바꾸기 시작했다. 제목만 보면 YOLO를 위한 조금 일하고 많이 벌기 스킬 정도를 소개할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우선순위를 잡는 것에 대한 책이었다. 첫 100쪽을 읽자마자 요즘 내 생각이 얼마나 쳇바퀴 속을 맴돌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동안의 모든 노력을 가치 있게 할 바람직한 결과는 무엇일까? 가장 흔한 대답은 바로 ‘행복’이다.  (…) 행복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슬픔? 아니다. 행복의 반대는 반박의 여지없이 지루함이다. 흥분이야말로 실질적인 의미에서 행복의 동의어이고 당신이 추구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이 물어야 할 것은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가 아니라 “무엇이 나를 흥분시키는가" 이다." - 62쪽


"돈을 많이 벌면 그때 원하는 걸 하겠어. 좀 현실적이 되라구! 척하는 건 그만두라니까. 인생은 영화가 아니거든. (…) 재정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생산적이라는 느낌이 필요했고 다른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 ‘X달러 만큼의 돈을 갖게 될 때까지만 일하고 나서 내가 원하는 걸 하겠어. 라는 식이다. X라는 숫자는 불확실성이란 두려움을 일으키는 공백을 피하기 위해 무한히 늘어날 것이다. 이 때가 바로 당신이 빨간 BMW를 탄 뚱뚱보로 변하는 순간이다. 직장인이든 기업가이든 예외 없이 말이다." - 63쪽


내가 고민하고 검열했던 생각들이 실제로는 옳은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대표로서,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시간과 우리 사업의 가치는 비례하지 않는다. 지금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결국엔 다 오니스트의 가치로 이어진다. 지금 나를 흥분시키는 게 업무 관련 박람회를 가는 거라면, 그 에너지를 제대로 써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오니스트 창업 자체가 불확실하지만 거대한 행복을 위해 지금의 확실하고 작은 행복을 포기하는 선택이었다. 지금 당장 그 박람회로 우리가 몇만 달러 치 제품을 수출하거나 원료 계약에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준비 중인 제품의 퀄리티를 높일 원료를 자세히 살피고, 업계 사람들과 네트워킹하고, 신규 기술 발표들을 보면서 트렌드를 예측해 우리만의 방식을 더 고민할 기회가 될 것은 분명했다.


짧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 속에서 언제나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져 왔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배움을 남긴 모든 경험은 나를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왔다. 이번 박람회 참여도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부풀어갔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계기도 예상치 못할 때 생겨났다. 우리 팀 멤버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였다. 스위스에서도 슬랙을 확인할 테니 필요한 대화를 할 수 있겠지만, 앞으로 1주일간 실시간으로 의사결정 필요한 것들은 나 없이 해야 한다고. 괜찮겠냐고. 이때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알렉시스, 그냥 다녀와요! 저희 걱정 마세요. 거기 가서 더 많이 배워와요.”


내가 자리에 없을 거라 불안해하는 마음은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내가 한 번 책임져보겠다' 씩씩하게 건네는 팀원이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 책에서 얻은 선배 사업가의 조언과 우리 팀원들의 듬직함에 용기를 얻어서 결국 그날 밤에 비행기 티켓을 샀다.


스위스로 출발!



평화로운 6일, 그리고 마지막 날


20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스위스. 낮에는 박람회를 돌며 내 일을 하고, 저녁에는 팀원들의 슬랙 대화를 살펴봤다. 태그된 메시지에 최대한 자세히 회신하며 내 터치가 필요한 부분을 빠짐없이 살폈다. 내가 없는 7일 중 6일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회사는 내가 필요 없다시피 알아서 잘 굴러갔다. 시차 때문에 우리 팀은 내가 잠든 동안 일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슬랙 대화로 의사결정 내리는 과정을 보니 모두 합리적이었다. 와. 이거 뭐지?


아드레날린 폭발하던 Vitafoods Europe 현장


심지어 나랑 가장 오래 호흡을 맞춘 팀원은, 내가 의사결정 내리는 방식을 지켜봐서인지 평소에 대화를 자주 해서인지 ‘미니미’처럼 나와 동일한 논리 구조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덕분에 마음이 더 편해졌다. 예정대로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2일을 여행으로 마무리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가기 약 1.5일 전, 룰루랄라 에베레스트 산맥을 향하는 중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 지표를 확인하는데 눈이 동그래졌다. 응? 이게 뭐지?


마케팅과 매출 지표가 내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달랐다. 우리 팀에서는 매월, 매주 단위로 마케팅 지출과 매출 목표를 세우는데 이 수치가 미리 논의된 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무슨 일이냐며 떨리는 손으로 팀원에게 슬랙을 보냈다. 근데 웬걸. 나 없는 동안 혼자 책임져보겠다는 생각으로 사전 공유 없이 스스로 마케팅 지출을 바꾼 거였다. 그래서 매출 목표 달성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 깊은 한숨과 함께 ‘내가 너무 믿었나?’라는 후회만 가득했다. 웅장한 에베레스트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표정이, 아니 나라는 사람 자체가 몇 시간 동안 굳어졌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상황을 바꿀 수 없었음에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역시 스위스에 오면 안 되는 거였을까. 어떻게 팀원에게 문제 제기를 할지,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이 뒤죽박죽했지만 결국 문제는 시스템이라고 결론내렸다. 지금처럼 개개인의 역량에 모든 걸 맡기는 구조라면 언젠가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거다. 오히려 1년 뒤쯤 회사가 더 성장했을 때 이런 문제가 생기면 정말 큰일이었겠다. 이번 문제는 시스템을 잡아나갈 기회로 삼자. 스스로를 위로하며 여행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애써 마음을 달래며 스마일...^^...



2주를 불태워 만든, 반전에 반전


한국에 도착하니 월요일 오전 10시. 장시간 비행이 너무 피곤해서 하루 쉴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에 가자마자 짐 풀 새도 없이 씻고 출근했다. 우리 마케팅 팀 위클리 회의는 매주 월요일 오후 3시. 스위스에서 보낸 1주일이 앞으로의 일정에 절대 나쁜 영향을 주면 안 된다. 굳게 다짐하며 위클리에 들어갔다. 하나하나 엇나간 지표와 일정을 바로잡았다.


비록 실수는 있었지만, 우리 팀원들은 잘못된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회고와 앞으로의 실수를 막을 대안을 같이 가져왔다. 정말 고마웠다. 5월 1~2주차에 만들지 못한 매출을 3~4주차에 몰아서 달성할 계획을 함께 세웠다. 돌아오자마자 야근 폭풍에 휘말렸다. 휴.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 내가 자리를 비운 데다 중간에 문제도 있었지만, 지난 5월 오니스트 월 매출은 역대 최고를 달성했다. 가정의 달 프로모션으로 재구매하는 고객분들이 정말 많았고, 일찍부터 준비한 프로모션이라 오퍼레이션이 기대 이상으로 원활했던 덕분이다. MBTI 중 P가 절대적으로 많은 우리 팀이라 직전에 으라쾅쾅 빠르게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프로모션은 준비 기간도 길고 작년 경험도 있었기에 아무래도 괜찮았지 싶다. 오니스트는 이제 곧 2년이 되는 팀이고 제품 출시가 재작년 12월이었으니 ‘작년 경험’이 있는 것 자체가 낯선 게 유머 포인트. 내년은 또 어떠려나.




내가 맡아야 할 새로운 역할


나는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주장을 넘어, 오니스트의 선장이 되어야 한다. 저 먼 바다에 어떤 기회가 있을지 찾고, 내가 찾은 기회를 팀에 생생히 보여줘야 한다. 회사가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려면 내가 현실에만 매여 있어선 안 된다. 책상 앞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직접 발로 뛰며 원료사들과 네트워크를 쌓아야 한다는 내 생각이 맞았다. 앞으로도 그렇게 미래를 향한 일을 계속해야 한다. 없는 여유에 사치를 부리는 게 아니다.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물론 그러면서 실무도 계속해야 한다. human error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더 확고히 만들어야 한다. 회사는 궁극적으로 내가 아닌 ‘시스템'이 존재하기에 돌아가게끔 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는 대부분의 일을 노션에 아카이빙하며 개인의 배움이 모두의 것이 되도록 정리하고 있다. 매번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공통의 프로세스를 찾아나가려 한다. ‘각 업무 담당자에게 내 권한을 위임할 수 있을 만큼 시스템화하는 것이 스타트업에 필요한 역량이 아닐까?’ 생각할 만큼 이 일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내가 다음에 자리를 비울 때쯤, 오니스트는 정말로 괜찮을 것이다. 괜찮게 만들어야지. 당분간은 야근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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