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소방서 한편에 세워둔 차량에 올라 퇴근을 준비하는 서영기 소방관. 해가 짧아진 겨울이라 일찌감치 가로등은 황색빛으로 물들고, 무등산은 새하얀 이불을 덮고 있다. 서영기 소방관은 겨울 무등산을 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2017년 1월의 마지막 날,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요란한 출동벨이 산악구조대에 울려 퍼진다.
“산악구조대, 구조출동입니다. 어머니가 무등산 등반 후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현재까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상태. 무등산 중봉에서 가족과 마지막 통화 후, 연락이 안 되고 있음.”
해는 서쪽으로 한참 기울어 시나브로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드넓은 무등산에서 그것도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조난자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팀장인 서영기 소방관은 대원들에게 보온을 위해 핫팩을 뜨겁게 만들 것을 지시했다.
“발견하면 조난자 바로 보온 조치 해야 하니깐 미리 흔들어 놓고 침낭에 넣어둬.”
“알겠습니다. 그런데, 팀장님! 마지막 통화가 오후 4시 30분이라면 분명 하산하는 길일 텐데 중봉에서 중머리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중심으로 수색하는 게 어떨까요?”
“맞아. 그럴 가능성이 커. 그쪽부터 집중적으로 수색하자!”
수색의 우선순위를 정한 서영기 소방관은 119 종합상황실에 동부소방서와 무등산 국립공원, 경찰 등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고, 많은 인력이 무등산 중봉을 향해 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봉이라는 단서 하나만 가지고는 조난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미 무등산에는 어둠이 내려앉았고 기분 탓일까. 바람도 더 차갑게 느껴졌다. 서영기 소방관은 수색에 속도가 나지 않자 조그마한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가족과 통화를 시도했다.
“아! 이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 엄마가 예쁜 소나무 밑에 있다고 했어요.”
“네? 예쁜 소나무요?”
중봉과 예쁜 소나무. 막연하지만 단서가 하나 늘었다.
“팀장님, 중봉에 예쁜 소나무라면 혹시 거기 아닐까요? 용추봉 쪽에 있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영기 소방관이 받아쳤다.
“그래. 용추봉에 비스듬히 자란 천년송! 거기 맞지?”
“네, 팀장님! 일단 그쪽으로 가보는 게 좋겠네요.”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도심의 바람과는 사뭇 다르다. 살을 찌르는 듯 날카로움이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영기 소방관의 몸도 마음도 바빴다. 무전기를 꺼내 든 서영기 소방관은 무등산 곳곳에 흩어져 있는 대원들에게,
“산악구조대에서 알립니다. 현재 동원되는 인력들은 용추봉 쪽으로 올 수 있도록. 그리고, 인근에 절벽이 있으니깐 접근할 때 각별히 주의 바람”
해발 840m에 위치한 용추봉에 도착한 서영기 소방관은 비스듬히 뻗어 있는 천년송에 다가갔고 그곳에서 그토록 찾아 헤맨 구조대상자를 10m 절벽 아래에서 발견했다.
“상황실, 여기 산악구조대! 조난자 발견. 절벽 밑으로 내려가서 침낭 및 보온조치 중이며, 동부소방서 그리고 무등산 국립공원사무소와 함께 구조작업중임”
신고 접수 1시간여 만에 조난자를 구조할 수 있었던 건 서영기 소방관의 촉과 함께 무등산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기에 가능했다.
구조작업을 마치고 다시 산악구조대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팀장님! 용추봉에 있는 소나무 있잖아요. 앞으론 사람을 살린 소나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그것도 좋은데 수식어를 하나 더 달아주자고. 사람을 살린 ‘예쁜’ 소나무라고”
<광주 119특수대응단 서영기 소방령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