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살 아들에게 배운다
지난해 가을 그리고 올해 겨울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 아들 딸과 함께 아파트 단지 내 낙엽을 하나 둘 모아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품이라야 하얀 도화지에 낙엽 모양 그대로 붙이는 정도다. 아들과 딸이 낙엽 위치를 잡아주면 내가 글루건으로 고정시켰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을 만들면서 '놀이가 아니라 진짜 작품이 되어가구나'를 새삼 느끼게 됐다.
처음에는 생각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붙이던 아들이 어느 날은 골똘히 생각하며 이리저리 글루건 위치를 세세하게 잡아주자 ‘어쭈, 이것 봐라’ 하며 헛웃음이 나왔지만, 완성 후엔 함박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출근 한 주말 오후,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이제 낙엽을 모으자며 '식물탐험대'의 시작을 알렸다.
식물탐험대란?
급조한 명칭이다. 아들 딸에게 소속감과 모험... 뭐 그런 걸 주기 위한 건데, 다행히 좋아한다.
아들 딸과 함께 솔방울을 줍고 낙엽을 줍기 시작하던 중 낙엽이 아닌 피어있는 꽃까지 꺾어 버리며 너무 많이 모은 아들에게 내가 물었다.
“아들, 낙엽이 너무 많아서 작은 도화지에는 다 못 붙이겠다. 너무 많아”
“아빠, 그게 아니고... 낙엽 위에 붙이고 또 붙이면 다 붙일 수 있어. 어... 어... 또 만들면 되지”
내 아들이라 그런 걸까?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대견해 보인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다.
그릇이 작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그릇을 남들보다 더 멋지게
채울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걸
하나의 작품이 끝나고 또 다른 작품을 만드는 저녁, 이젠 도화지에 붙일 낙엽이 부족해졌다.
오늘, 마흔 살 아빠는 만 4살 아들에게 배운다.
그릇을 키울 수 없다면 그릇의 개수를 늘리면 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