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씻긴 뒤, 욕조에 남아있는 물을 빼내기 위해 배수구 덮개를 열면 배수구 위로 토네이도처럼 회오리가 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박성관 소방관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10여 년 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2012년 7월의 어느 날, 구조대 사무실 벽시계는 새벽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박성관 소방관은 고막을 찌르는 출동 지령에 나른했던 몸이 굳어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구조출동! 구조출동! 목욕탕 안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는 신고!”
구조차에 올라 현장으로 출동하던 중,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신고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119구조대원입니다. 어떤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겠어요?”
“그게… 목욕탕 안에 누군가 계속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어요. 근데, 남탕이라 제가 들어가기가 곤란하고… 또, 도움을 줄 분도 주변에 없어서 119에 신고한 거예요.”
신고자의 말처럼 현장은 지나가는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한 골목길 목욕탕이었다.
“저기예요. 저기. 빨리요. 빨리. 살려달란 소리가 계속 나요. 빨리요.”
“흥분하지 마시고, 차분하게 기다려주세요.”
박성관 소방관은 안절부절못하고 흥분한 신고자를 안심시키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몇 걸음 옮긴 뒤 바라본 현장은 황당함과 긴박함이 섞여 있었다. 대중목욕탕의 탕에 엎드린 채 한 쪽 팔이 배수구에 파묻혀 있던 A씨. 미처 배수구로 빠지지 못한 탕 속 물은 A씨의 입과 코까지 넘실대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하게 만들었다.
박성관 소방관은 A씨의 호흡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팔을 조심스럽게 빼내려고 했는데, “아”하는 외마디 비명만이 목욕탕을 가득 채워졌다. 빠져도 단단히 빠졌는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결국, 구조차에 있던 각종 공구를 사용해 탕 안에 물을 빼내는가 하면, 흙먼지와 소음을 일으키며 배수구 주변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버티세요.”
시끄러운 구조작업에 동요되거나 불안하지 않도록 A씨를 안심시키며, 구조작업은 계속됐다. 그리고 얼마쯤 흘렀을까 배수구 주변 바닥은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PVC관이 남성을 팔을 꽉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구조대원들은 수작업을 통해 PVC관을 절단하기 시작했다. 마치 세공업자처럼 조심스럽게 진행됐고, 3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토록 바라던 남성의 팔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구급대원들이 응급처치해 드릴겁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팔이 빠진 건가요?”
박성관 소방관의 조심스런 질문에 남성은 고개를 떨구며...
“평소처럼 목욕탕 영업을 마치고 탕에 있던 물을 빼내려고 배수구를 열었는데요. 하필 그때 큰 이물질이 배수구로 흘러가는 거예요. 손을 뻗어 잡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팔이 배수구 안으로 쑥 들어갔어요. 아니 순식간에 빨려 들어 간거죠.”
전날 목욕탕 영업을 마친 뒤 무려 10시간 동안 팔이 배수구에 빠진 상태로 있었단 이야기에 안쓰럽기까지 했다.
소방서로 복귀하는 길, ‘배수구 안에 거름망도 설치돼 있었어도 막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최근에도 수영장 배수구에 아이들의 팔이 빠졌단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박성관 소방관은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목욕탕 구출작전’을 이야기하며 배수구 주변에 물살이 거센 곳에 가지 않도록 안전교육도 잊지 않았다.
<광주 서부소방서 박성관 소방장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