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세랑이가 내일부터 2학년 교실로 등교한다.
둘째 노이는 모레부터 유치원 특수반의 6살로 등원한다.
작년엔 첫째와 둘째의 첫 초등학교, 첫 유치원 생활을 앞두고 엄마인 내가 참 많이도 바동댔었다.
첫째는 첫째대로 소극적이고 소심한 성격이 걱정이었고, 둘째는 학대 사건 이후라 모든 것이 불안했었다.
고맙게도 너무 좋은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나서 아이들은 일 년을 그럭저럭 잘 지나왔다. 늘 아이들은 나의 걱정보다 한 발 앞서 나아가고 있었다.
한 번 해봤으니 올해는 조금 다를 줄 알았다.
주변의 선배 엄마들은,
'아이가 커가면서 육아가 편해지는 게 아니야. 육체적인 힘듦이 정신적인 힘듦으로 바뀌는 거지. 그나마 귀엽기라도 한 어릴 때가 더 나을 걸.'
이라고 말했다. 공감하지 못했고, 당시 힘든 나의 상황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첫째는 어느 정도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지만, 장애를 가진 둘째는 아직도 나의 손발이 많이 필요하다. 첫째는 기특하게도 일찍부터 혼자 샤워도 하고, 책가방도 혼자 알아서 챙기고, 혼자 자고, 옷도 알아서 혼자 골라 입는다. 둘째는 아직 기저귀도 떼지 못했고, 밥도 혼자서는 제대로 먹지 못한다. 옷도 입혀주고, 신발도 신겨주고, 잠도 재워줘야 한다.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와 손이 많이 가는 아이, 챙길게 극과 극인 두 아이를 키우면서 육아의 정신적, 육체적 고충은 경중이 없음을 깨닫는다.
세랑이는 2학년 새로운 반에 같은 반 남자아이 두 명과 함께 올라가게 되었다. 과밀학교라 학급수가 많아서 많이 섞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친한 친구는 고사하고 같이 올라가는 여학생이 한 명도 없을 줄은 몰랐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데 아마 한 학기 정도는 소요될 것이다. 억울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한마디를 못하고 눈물을 삼킬 아이다. 볼 때마다 답답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나의 과거를 생각해 보면 크게 다르지 않아 별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너처럼 비슷하게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고, 주변을 관찰하고 있는 친구를 한번 찾아봐. 누가 다가오길 기다리지 말고, 그런 친구에게 말을 걸어보는 건 어때?"
씩 웃지만, 별다른 대꾸는 없다. 결국 오늘 '내일 개학이 너무 긴장 돼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러 들어갔다.
노이는 특수반에 같이 있던 언니, 오빠들이 졸업을 하고 초등학교로 올라갔다. 새로운 빈자리는 노이와 같은 나이인 아이 두 명으로 채워진다고 했다. 특수 교육 대상자 아이들은 저마다 정도와 특징이 너무 다양해서 반에서의 노이 생활은 아예 예측이 안된다. 마침 선생님도 전근을 가셔서 새로운 분을 뵙게 된다. 보통 둘째는 첫째로 인한 육아 경험으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고, 그래서 수월한 부분도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에게 노이는 첫째로 인한 육아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될 때가 많아 섣불리 예상하지 않기로 한다.
내일의 일은 내일의 아이들과 내일의 내가 맞이하겠지. 무탈하게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두 아이가 나의 따뜻한 기운을 받아서 힘을 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집으로 돌아오는 개학날이면 좋겠다.
세랑이가 개학날 에피소드들을 신나게 늘어놓았으면 좋겠다.
노이가 개학 다음 날 등원할 때 편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