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러운 마음

by 코스모스

우울증에 걸리니 이전의 나와 다른 모습 중 하나가 변덕스러움이다.

이전의 나를 돌아보면 선택은 심사숙고하여 신중한 편이었고, 결정하면 딱히 번복하거나 뒤돌아보지 않았었다.


지금은 우울증 정도가 조금 나을 때 하는 선택과 정도가 심할 때 하는 선택이 손바닥 뒤집듯 오락가락 한다.

나아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순간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은 주저앉는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


사건 이후 손 놓은 테니스를 다시 시작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마침 인기있는 시립 테니스장의 단체 수업에 딱 한자리가 남아있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라 신나서 신청을 했더랬다.

바로 다음 날 후회 했다. 아직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웃으며 얘기할 자신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한번 하기 시작하니 겉잡을 수 없다. 오지랖 넓은 동네 언니, 오빠, 친구, 동생들 중 누군가는 새로 들어온 회원에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까? 이전 아파트에 사는, 노이의 학대 사건을 다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어떤 교류도 하지 않고 말한마디 없이 단체 수업에 임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여러가지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정상적인 대처를 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으로 내 앞에 벽을 쌓기 시작한다. 그 벽은 점점 올라와 단단하게 내 앞을 떡하니 막고 있다.

결국은 자신이 없어져 신청했던 수업을 취소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사 와서 남편도 나도, 아이들도 고생했으니 제주도 여행을 가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제주도는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곳이고, 몽글몽글한 기억들이 많은 곳이다. 때마침 특가 항공권을 저렴하게 예약할 수 있었다. 휴가를 이틀이나 쓰기는 힘들다는 남편에게 꼭 휴가를 써달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정성스레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숙소들을 알아봤었다.

하루 이틀 출발할 날이 가까워오니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나갈 돈도 많은데 가면 괜히 돈만 더 쓰고 오겠지. 겨울의 제주는 아이들과 할 게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몰라. 어차피 여행을 가도 육아의 연속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겠지. 이런 상태로 가면 애정하는 제주도에 괜히 안좋은 기억을 남기게 되는게 아닐까. 또 다시 벽이 한층한층 쌓여 올라오고 있었다. 한번 쌓이기 시작한 벽은 너무 견고하게 내앞을 막고 있어서 그걸 깨부술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날짜가 임박했을 때 남편은 힘들었지만 휴가를 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너무나 고마웠지만 가고 싶지 않아졌다고 얘기 했다.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항공권을 예매할 당시의 신났던 순간은 또 금방 물거품이 되어 있었다. 남편에게 싫은 소리만 잔뜩 듣고, 수수료를 조금 내고 항공권을 취소 했다.


막상 취소하고 나면 공들여 이것 저것 알아본 소중한 시간들이 생각나서 또 아쉽다. 어쩌잔 말인가. 변덕이 죽끓듯 하는 사람을 혐오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딱 그러고 있다. 기분이 좀 나아졌을 때는 희망에 찬 여러가지 계획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선택은 금방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내 모습은 나조차도 가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랑이 영어 학원 선택, 감사한 분들께 인사, 세랑이 수영 수업 동행, 독서 계획 등등. 하루에도 몇번씩 결정이 바뀐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심각한 변덕쟁이일 것이다.

우울증이 나아가는 과정은 내 기대보다 훨씬 길고, 생각하지 못한 변덕스러움으로 자주 당황스럽다. 게다가 아직은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들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만나는 건 꺼려진다.


글을 쓰는 지금은 조급하지 않은 마음으로 내 속도에 맞게 생각하고, 이런 나를 내가 이해해주면 된다고 긍정의 기운을 내뿜고 있다. 언제 또 땅굴을 파고 들어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