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나의 고민과 상념은 거의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분명 일을 할 땐 이렇게 깊게 고민하지 않았던 일인데, 온 에너지가 아이들 쪽으로 향해 있다.
세랑이의 첫 영어학원, 방과 후, 운동 선택, 새 학기 아이의 적응에 대한 고민과 노이 발달 센터의 수업 내용 및 스케줄 조정, 학대에 대한 일들의 처리 등이다.
영어 학원만 해도 규모가 작은 학원과 대형 학원, 숙제량, 원어민 유무, 학교와의 거리나 셔틀, 시간대, 화장실 상태 등등 고민할 거리가 수두룩하다. 학원들은 모두 어쩜 그렇게 제각각인지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않으면 귀를 팔랑거리며 이랬다 저랬다 오락가락이기 일쑤이다. 실제로 겨우겨우 하나의 학원을 선택했는데 며칠 사이에 자리가 없다고 했다. 결국 아이 개학 직전에 결정되었다. 그에 따라 이미 신청해 놓은 방과 후 수업들의 시간이 안 맞아 취소하고, 자리 있는 방과 후를 찾아 겨우 신청했다.
대부분의 선택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이라 한 고민이 안 끝나도 다른 고민, 또 다른 고민이 자꾸 생겨서 멀티로 고민했다가 안 했다를 반복했다. 누군가 옆에서 내 모습을 본다면 가슴을 치며 답답해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내 일이면 더 빨리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 일이라 더 신중해지는 거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머릿속을 이렇게 꽉 채우다 어느 순간 정신이 차려졌다. 내가 없는 것 같았다. 적당히 해도 되는 일인데 온 에너지를 여기에 쏟으니 다른 게 들어올 틈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세랑이가 영어를 더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노이가 갑자기 말을 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노이의 재판일은 감감무소식인데, 내가 죽어라 생각한다고 해서 그게 앞당겨지거나 미뤄지는 것이 아니다.
출근해서 일을 하는 상태였다면 아이들을 향한 에너지를 지금의 반이라도 쓸 수 있었을까? 워킹맘이 신체적인 에너지는 더 쓰겠지만, 정신적인 에너지의 용량은 이러나저러나 같다는 결론이다. 일에 대한 고민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 아이들에 대한 고민의 공간은 작아질수 밖에 없다. 특히 나 같은 사람은 고민할 게 없으면 고민을 키우고 만들어서라도 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엄마이기에 아이들에 대한 고민과 선택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온통 머릿속이 그 생각뿐인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한동안 책도 손에서 놓고 있었고, '나'로서 챙겨야 할 것들에 소홀했다. 대충 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머릿속에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 말이다. 아이들 일에 대한 고민은 어차피 끝이 없는지라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조금의 활기가 생겼다. 도서관에도 가고 싶고, 남편이랑 영화 보자고 얘기했던 것도 생각이 났다.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제야 집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라도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밥도 싸서 먹고 싶어 졌고, 자전거도 타고 싶어졌다. 우울증은 그대로 현재진행형이라 생활 반경을 늘리는 건 아직 힘들지만, 좁은 반경 안에서도 충분히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내 머릿속이니까 '나'도 좀 비집고 들어가 보자.
내 정신적 에너지를 '나'도 좀 나눠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