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의 햇살이 한 일

by 코스모스

둘째의 어린이집 학대 사건 이후 다양한 곳과 통화를 했다. 아동보호센터 직원, 장애인복지관 관장님과 직원, 경찰서 담당자, 경찰청 수사관, 경찰청 형사, 구청 직원, 보건소 상담사, 변호사, 기자, 구의원, 국회의원 보좌관 등이다.


처음엔 '시스템'에 의한 형식적인 통화라고 생각했다. 가족 외 모든 사람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학대 사실을 안 날, 통화 녹음을 했다는 이유로 자기 허락을 왜 안 받냐며 나중에 어디에 쓰려고 녹음이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형사와 매번 귀찮은 듯 전화를 받는 구청 직원은 나에게 왜 더 깊은 땅굴로 안 들어가냐며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올 때마다 밥 잘 먹는지, 운동하는지를 물어보던 보건소 직원(그렇다는 답이 절대 나올 수 없는 질문)도 있었다.

이런 몇 번의 통화 말고는 대부분이 나와 노이를 도와주려는 의도였다. 인간에게 치가 떨리는 환멸이 나는 한편,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로 위로를 받기도 하는 괴상한 날들이었다.


아동보호센터의 직원은 나에게 심리 상담을 권유했다. 상담을 받도록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고통이었기 때문에 쉬이 그러겠다는 답이 안 나왔다. 결국 그녀의 설득에 편도 40분 걸리는 곳으로 가서 매주 1회 심리 상담을 받게 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별로이면 그때 그만두면 될 거라 생각했다.


첫 상담 날 아침부터 가기 싫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우울증이 극에 달하던 시기라 무기력한 것도 있었고, 조금의 희망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아보겠다고 말한 것이 후회되었다. 짧은 시간 동안 갈까 말까를 수만 번 고민했던 것 같다.

눈곱만큼 남은 나의 자아는 미리 정해진 약속을 당일에 취소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며 꿈틀거렸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애초에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나는 남들이 흔히 하는 '밥 한번 먹자.'라는 말도 빈말이나 예의상이라는 이유로는 쉽게 하지 못했고, 했다면 꼭 만날 약속을 잡았다.


알량한 나의 자아는 물먹은 솜 같이 무거운 몸을 조금씩 움직이게 했다. 철벽을 쌓은 마음 상태로 연신 한숨을 쉬어 댔지만 가는 길을 검색하고 있었다. 처음 타 보는 번호의 버스였다. 드라마처럼 그날따라 버스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물 나게 따뜻했다. 한 겨울의 햇살이 이렇게 따뜻하다 못해 뜨거울 수 있는 건가. 온통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했던 나는 그 햇살이 불편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빛이 있는 곳으로 슬며시 발 끝을 내밀어 본 것이.

애써 눈물을 눌러 담고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듯한 동네에서 내렸다. 이전까지 이런 곳에 아동보호센터가 있었다는 건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작은 사무실과 회의실 같은 곳 그리고 상담을 할 수 있는 방이 두 개 있었다. 그중 하나의 방에서 심리 상담사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는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았다.

그때까지도 내가 상담 첫날부터 펑펑 울고, 가슴속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꺼내어 놓을 수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그렇게 위태로운 우울증 환자의 심리 상담이 시작되었다.

버스의 그 불편한 햇살이 기어코 나를 끄집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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