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이 쌓이고 모여서

by 코스모스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월요일 10시. 아동보호센터에서 상담이 진행되었다. 총 20회기가 진행되었는데, 단순한 계산으로만 20주, 5개월이다. 중간에 공휴일이나 이사 등의 사정이 있어서 미뤄진 것을 생각하면 거의 6개월 정도 상담사님을 만났다.


상담이 시작될 때, 나는 역시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고 많은 일에 온 촉각이 곤두서 있을 때였다. 아이의 학대사건 이후 겨우 두세 달 정도 지나갈 즈음이었다.

첫 상담날은 가기 싫은 몸을 겨우겨우 일으켰다. 아이의 등하교, 병원 진료 때 외에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한없이 무기력했다. 상담을 받겠다고 말한 게 후회스러웠다.

그래도 일단 가 보자.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4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한 겨울의 칼바람에 몸은 더 웅크려졌고, 기대감이 없어서 그랬는지 버스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의 햇살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상담사님은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소극적인 마음으로 최대한 웅크려있던 나는 곧 무장해제되고 만다. 그녀는 그 어떤 거짓이나 가식의 미소가 없었다. 첫날부터 나도 모르게 하나 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한없이 무거운 이야기들에도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죠?'가 아니었다. 누구나 겪을 수 있을만한 일인 것처럼 반응해 주셨다. 그 당시 내게 필요했던 게 그런 태도였던 것 같다. 별일 아닌데 왜 그러냐는 뜻이 아니고, 공감이나 위로가 없으셨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고통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니 좀 내려놓아도 된다는 뜻이었으리라. 대부분의 사람이 내가 겪은 일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당황했었다. 상담사님의 반응은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마음속 응어리들이 조금씩 해체되고 있었다. 엉키고 설킨 실들에 조금씩 공간이 생겼다.

이게 첫 상담에서 가능하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남들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하며 펑펑 울고 나올 줄은. 사건 이후 처음으로 후련함 엇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 이후 나는 매주 월요일의 오전 10시를 기다리게 되었다. 우울하고 앞이 안 보이던 시기에 제자리에 있지 않고 아주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지구의 깊디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못 나올 줄 알았는데, 조금씩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상담받으러 가는 버스 창에 내리쬐는 겨울의 햇살은 따뜻했다. 그 햇살마저 나에게는 위로였고, 희망이었다.


상담사들은 원래 그래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를 정말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 주셨다. 이런 상황에서도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넘치게 잘하고 있다고 힘을 북돋아 주셨다. 무슨 말을 해도 진심으로 내 편이 되어 주셨다. 아이가 학대당하는 줄도 모르고 어린이집에 보낸, 세상에서 없어져 버려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하찮은 존재인 나를 존중해 주셨다.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전적으로 지지받은 적이 없었다. 나중에는 남편 욕, 시가 이야기 등등 남들 하게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깃털 같은 고민들도 다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유일한 수다 상대를 그렇게 반년 정도, 일주일에 한 번 만났다. 일주일에 한 번인 만남들이 쌓이고 모인 힘은 쉬이 사라지지 못했고 한 사람을 살렸다.


아직도 뭐 하나 해결됐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게 없지만 20회 차 상담에서는 상담사님과 웃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 상담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상담사님을 안 만났으면 어쩔 뻔했을까. 물론 우울증 약과 이사 같은 것들이 함께 콜라보된 결과겠지만 말이다.

아직 우울증 약은 줄지 않고 그대로이다. 하지만 과호흡이 오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아이들을 더 많이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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