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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유 Mar 13. 2024

글 쓰기와 사진 촬영

겨우내 건강이 좋지 못했다. 출퇴근 외에 다른 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고 집에서는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편히 쉴 수 없었다. 건강 회복은 더뎠고 살포시 기운을 뿜어내려는 봄을 느낄 즈음에서야 나를 괴롭히는 새까만 기운들에게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운동으로 해소하던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여가기만 했다. 신체 리듬은 점차 꼬여가더니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몽롱한 정신으로 하루를 보내던 와중에 가까운 곳에서 일출이라도 보며 기운을 내자고 친구와 약속을 했다.


도시를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기로 하고 컵라면, 커피 등 간단한 음식도 챙기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는 각자 차를 타고서 50분가량 달려야 하는 거리였고 일출 시간을 맞추려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했다. 여전히 몽롱한 상태로 선잠을 자던 나는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몸이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이고 감각은 둔했다. 움직이고 있지만 온전히 내 몸을 인지하기 못하고 있는 어색하고 무거운 상태. 여차저차 준비를 마치고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금방 끊겨야 하는 벨소리는 끊임없이 울렸고 벨소리는 나를 불안과 초조함으로 끌고 내려갔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아내가 세심하게 간식을 챙겨주며 조심히 다녀오라도 한다.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은 친구 덕에 혼자서라도 다녀와야 하는가에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나는 쉬이 대답을 하지 못한다. 몸 상태가 좋지 못해 내 의지보다는 친구 덕에 겨우 움직이고 있음을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친구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만 같으니 이 새벽에 운전까지 해 가며 밖을 나갈 힘이 위태롭게 꺼져가고 있었다.


"ㅇㅇ이가 전화를 안 받네."


준비를 다 마쳤는데, 출발만 하면 되는데 가벼운 척했던 마음은 더욱더 천근만근이 되어 나를 주저앉히려 했다. 아내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가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친구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었고, 서로가 평소에 진지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사이다. 무슨 얘기든지 장난으로 받아넘기고 또 장난으로 맞받아친다. 그러면서도 서로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주고 도와준다. 어떤 고민이 있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고 서로 마음 상하지 않는 선에서 약을 올리고 놀려대는 것이 일상이다. 서로에게 무심한 것 같지만 가장 먼저 연락하고 의지한다. 친구와의 약속은 취소되거나 늦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애초에 미리 정확한 약속을 잡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하루 전이나 당일 한두 시간 전에 약속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약속이 취소되더라도 서로 마음 상해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일이 있겠거니 하고 다음에 보자고 한다.


전화기 너머의 친구는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이미 출발했다는 말과 함 아직도 집에 있냐며 해가 다 넘어가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연락이 안 되어서 출발을 주저하고 있는 나에게 오히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냐고 장난을 친다. 그래, 믿음은 없다. 우리의 약속은 대부분 그러했으니. 단지 언제나 가까이 있음을 안다. 그것만으로도 서로가 큰 힘이 됨을 나도 알고 친구도 안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나를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을 친구도 눈치채고 있음이다. 이 새벽 시간에 이렇게 까지 기분을 끌어올리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안다.


주저앉으려던 마음에 빛이 드리운다. 내 몸에 들러붙은 걸쭉한 검은 덩어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만 같다. 자고 있는 아이들 볼을 검지손가락으로 한 번씩 튕겨주고 집을 나선다. 이른 시간이라 차가 막히지는 않지만 달리는 차들이 많다. 그럴 리 없지만 모두가 일출을 보러 집을 나선 것인가 생각한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가고 있음을 알린다. 그렇게 한참을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니 지루할 새가 없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영하의 날씨에도 사람이 점점 많아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삼각대와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촬영을 하는데 진지하고 들뜬 모습에 자꾸만 눈이 갔다.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자리를 잡아 컵라면을 먹고 커피를 마시니 몸이 한결 따듯해진다. 우리는 카메라 이야기를 나누다 옆을 지나가시는 분께 카메라 장비 가격을 조심스레 여쭈었다. 대포처럼 보이는 커다란 렌즈가 꽤나 멋있어 보였다. 그분은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으며 입문하려면 처음엔 최소 2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깜짝 놀랐고 쉽게 덤빌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연신 핸드폰로 사진을 찍으며 이 멋진 장면을 최대한으로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옆에는 대포 같은 렌즈로 해를 겨누고 카메라를 조작하는 수많은 사진작가와 동호회 분들이 계셨다.


우리는 주변을 산책하고 각자의 사색을 즐긴 후 근처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며 너무 좋았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하늘에 별이 보이다 어느 순간 희미해지더니 산 너머에서 황홀함을 가득 담은 붉은빛이 올라온다. 이를 시샘하는 구름이 앞을 막아서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설레고 벅차오르는 순간을 우리는 쉬이 잊지 않는다. 이 순간을 기억하면서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해 사진작가님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계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많은 에너지가 압축되어 있다. 그 힘에 가까이 있기만 해도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모두가 압축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순간, 타인이 나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도록 마음의 수련을 놓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또 오자는 약속과 함께 각자 시동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때부터 틈만 나면 카메라 검색 삼매경에 빠졌다. DSLR, 미러리스, 렌즈, 조리개, 셔터 스피드, iso, 필터, 구도, 삼각대 등 사진을 알아가는 재미에 빠졌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에 이르렀다. '카메라와 렌즈가 있다고 한들, 사진 촬영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이 없는데 사진을 찍어서 어떻게 활용하지?' 분명 재미는 있을 것 같은데 사진을 찍고 난 다음이 없었다. 재미는 찾았지만 철학이 없는 빈 껍데기였다. 철학이 없다면 카메라와 렌즈는 오래가지 못할 비싼 장식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글을 쓰고 싶어서 블로그를 하다가 나와는 너무 맞지 않아 우연히 알게 된 브런치를 시작할 무렵. 나는 글을 쓰고 싶었지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글을 쓰고 수정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행복을 느끼고 있음은 당연하고 여전히 출간이 내 목적은 아니다. 사진 역시 스스로 자문해 보니 나에게 흥미를 가져다주고 배우고 싶다는 의욕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일을 경험하고 글을 써도 내용이 다르듯, 같은 것을 보더라도 카메라와 렌즈의 조작에 따라 전혀 다른 사진이 탄생한다는 것이 매력이라고 느꼈다. 좋은 글과 잘 쓴 글이 있듯 사진도 메시지가 잘 드러나는 사진과 감탄을 자아내는 사진이 있는 것이었다. 더 멋진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것, 더 멋진 사진을 담고자 노력하는 것이 글쓰기와 닮았다. 글쓰기를 하면 글이 된다. 사진 촬영을 하면 사진이 된다. 내가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오직 나만의 결과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결과가 좋던, 나쁘던 관계없이  창작 행위 자체가 살아가고 살아내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진작가를 직업으로 삼는 것은 내 목표가 아니다. 좋은 결과물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받고자 하는 생각도 없다. 나만의 창작 활동을 해 나가는 것, 내가 오랫동안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공부하고 시도할 수 있는 것,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결과는 그다음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핸드폰에 담겨있는 옛날 사진을 보니 시간이 정말 빠름을 실감한다. 핸드폰도 좋지만 카메라가 있으면 용도에 맞게 더 많이 사진촬영을 할 것 같았고, 아이들과 행복한 순간을 더 많이 기록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내를 설득하는 데는 내 나름의 철학이 아닌 위 내용으로 더 많이 촬영하고 최대한 오래 기억하자는 내용으로 설명했다. 철학 얘기를 꺼내면 아내를 설득하는데 내 철학을 강요하는 것만 같아서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없는 돈을 탈탈 털어 카메라 장비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이젠 아이들과 어딜 가더라도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물론 실력은 초보 중에서도 왕 초보다. 그럼에도 사진을 알아가는 재미와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





(연습 삼아 찍어본 야경, 약간의 효과를 추가해서 장난감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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