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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민 Nov 20. 2022

학종은 좋은 제도인가, 나쁜 제도인가

학종에 대한 지탄

  

내 나이대의 누구나 한 번씩 사회주의 이념에 빠져 있었던 시절이 있었듯이, 대학생 무렵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의 흉터와도 같은 굵직한 역사들이 다 지나갔을 법한 김영삼 정권 말기에도 시위는 많았다. 스스로 운동권이라고 이름 붙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몇 번 누구누구를 따라 시위에 나갔던 적이 있다. 소위 지랄탄이라고 하는 것들이 거리로 떨어져 땅에서 계속 돌면 맵고 뿌연 연기를 뿜어냈다. 그럴 때마다 눈에 담배연기를 불어 넣으면 괜찮아진다는 걸 선배들로부터 배워나갔다. 사상을 공유하면서 유대가 생기고, 그 유대만으로 세상이 충분히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마르크스 전공자인 정치경제학 교수는 수업에서 “20대에 공산주의에 빠져보지 않는 사람도 바보고, 20대가 끝나기까지 그대로 빠져 있는 사람도 바보다”라고 이야기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낭만과도 같은 그 시기의 열병이었던 것이다.      






그런 낭만과 이상을 나는 입학사정관을 하면서 다시 한번 만났다. 바로 ‘학종’이라는 이름의 이상이었다. 나는 입학관리본부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학생부종합전형을 보고는, 우리나라의 입시 전반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누구보다 설렜다. 하지만 학종으로 한 해 입시를 겪고나선 느꼈다. 학종은 인간의 편협함을 시험하는 제도에 가깝다는 것을 말이다.
      


학종에게도 어떠한 대단한 힘은 있다. 이것은 학생이 아니라 철저하게 대학에게 부여되는 힘이다. 대학이 학생을 선택한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대학을 향해 정시로 뽑는 인원을 늘리라는 압박이 있자, 서울대에서는 올해부터 정시에 학생부 서류평가를 포함했다. 내부적인 사정이야 모르겠지만, 이런 행보에 정치적인 냄새가 물씬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주변 환경까지 다 고려해서 학생의 관심사를 평가할 수 있을까? 블라인드제도로 학교가 공개되지 않으면, 그 학생의 진짜 실력은 무엇을 통해 판단할 수 있을까? 한 학생의 진짜 역량을 몇 명의 입사관들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게 애초에 가능한 이야기인가?
 






 학종은 취지는 좋은 낭만적인 제도와도 같다. 그리고 대게 낭만은 현실을 떠나야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학종을 시행하는 측에서 가지고 있는 크나큰 맹점은, 학교의 환경을 파악해서 평가를 한다고 하지만 정말 그 환경을 파악하는 것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이다. 블라인드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대학에서 학교의 이름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블라인드 제도는 학교의 이름을 가리는 게 아니라, 공정성이라는 이름의 허울로 대입제도를 감시하는 자들의 눈을 가리는 것이다. 결국 학종은 기본적으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평가를 해야 하는 제도임에도, 학교 전반으로 평가를 하니 학생 개개인의 노력들은 학교 이름뒤에 가려지게 된다.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적으면 몇백건에서 많으면 한 해당 거의 천 건이 가까운 컨설팅을 한다. 가장 슬픈 것은 학부모와 학생이 찾아와 학생부에 거짓말을 쓰자는 다짐을 하고, 내 앞에서 거짓말 할 것들을 상의하러 오는 상담이 꽤나 있다는 것이다. 학종은 어떻게 보면 학년기에 놓인 전 국민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통로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학생부를 학생에게 대신 기록하게 하지 않고, 본인이 스스로 정직하게 쓰는 선생님은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나쁜 선생님’이다.      



우리나라의 의식 수준이 아직까지 올라와 있지 않기 때문에 학종은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낭만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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