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이 싫어"
대통령 선거가 있어 임시 휴일. 별님이를 학원에 올려 보내고 1층 카페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지루하지만 그 따분함이 행복한 시간이다.
옆 테이블에 여대생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카페가 좁아 대화를 엿듣게 된다. 한 학생의 아버지는 대기업 건설회사에 다녔다. 외환위기 때 실직한 아버지는 딸이 안정된 공무원이 되기를 바란다. 딸은 공무원이 싫다고 말한다.
왜일까? 급여가 낮다지만 그래도 안정된 직업인데 싶어 그 이유가 궁금하다. 공무원 중에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순간 조금 놀랐다.
한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수만 가지 직업 중에서 자신이 좋아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좋아서 선택한 일도 실제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밖에서 보던 것과 달라 실망하기도 한다.
첫눈에 반하는 사람도 있지만 겪으면서 점점 더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담백한 사람이 좋다.
일도 마찬가지.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속은 모르는 일이다. 어떤 일이라도 몰입하면 행복하다. 몰입의 대상이 아니라 몰입 그 자체가 중요하다.
내 직업은 ‘산업보건전문가’이다. 직장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직업은 변한 적이 없다. 대학 전공부터 첫 직장도, 지금도, 아마 퇴직할 때에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산업보건을 선택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산업보건이 무언지 알지도 못했다. 어떤 때는 따분하고 어떤 때는 막막했다. 아무 의미 없는 일을 그저 월급 받기 위해 하는 것 같아 자책할 때도 있었다.
이 분야에 경력이 쌓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일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의미 있는 것은 그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철이가 KTX를 타고 세 시간 만에 안드로메다에 도착하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은하철도 999를 타고 여행하는 그 과정이 의미 있다. 직업의 종류를 떠나서 어떤 일이든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하면 그 일상의 충실함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일이 지겹고 따분할 거라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일도 너무나 버라이어티 해서 문제다. 제발 오늘 하루 지루하고 따분하길 매일매일 기도하며 살고 있다. (17.5.9, 25.10.19)
평온_안동댐ⓒ소똥구리(25.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