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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똥구리 Dec 17. 2023

꽃이 아름다운 건

[양촌일기] 잎과 줄기가 있기 때문

  일산호수공원 북쪽에는 장미정원이 있다. 정원 가운데에 원형 분수대가 있고 그 중심 아름다운 비너스(?)가 수줍게 서 있다. 비너스를 둘러싼 방사형 정원에는 장미꽃이 가득하다. 빨간색 장미는 물론이고 분홍색, 핑크색, 노란색, 흰색 심지어 파란색 장미까지 있다. 돌담으로 단정하게 꾸며진 화단 위 잡초 하나 곁에 두지 않고 오직 장미 줄기만 솟아 있다. 그 끝에 꽃들이 위태롭다. 꽃만 덩그러니 있으니 힘겨워 보인다. 


  사람들이 꽃만 좋아하니 그런 꽃만 남아 꽃만 커지고 잎과 줄기는 작고 가늘어졌다. 이런 꽃들은 온실에서 바람 한 점 맞지 않고 자라야 한다. 화려하지만 너무 여리고 힘겨워 보인다. 이런 식물은 자신의 줄기로는 자신의 꽃을 감당할 수 없다. 모든 장미 넝쿨은 지지대에 의존한다.     


  밭에 피어 있는 야생화는 꽃보다 줄기가 굵직하다. 두텁고 튼튼한 줄기 끝에 매달린 꽃은 소박하지만 아름답다. 초록빛 줄기와 연둣빛 잎사귀 사이 수줍게 핀 보랏빛 나팔꽃, 노랗고 하얀 들국화, 잡초 속에 아무렇게나 섞여 핀 자줏빛 여귀꽃. 비록 화원에서 팔릴만한 상품성은 없다 해도 그 생명력은 건강하고 아름답다.      


  사람은 예술과 문학을 즐기고 누리며 산다. 예술과 문학이 인생의 꽃이라면 우리의 일상은 인생의 줄기이며 이파리이다. 


  하루하루 성심껏 사는 것은 굵은 꽃대를 세우고 푸른 잎사귀를 돋아내는 일이다. 야생화야말로 진정한 꽃이다. 전문 작가, 전업 예술가의 눈에는 촌스럽고 초라해 보여도 성실하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자신만의 글을 쓰는 것이 작게라도 당당한 내 꽃을 피우는 일이다. 작아도 비바람에 흔들려도 쓰러지지 않는 내 꽃이 아름답다. 


  예술과 문학은 일상이라는 굵은 줄기 끝에 피어나야 한다. 두릅길 길가에 핀 꽃이 아름다운 건 푸른 잎과 굵은 줄기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photograph by soon(23.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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