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똥구리 Dec 17. 2023

조금 돌아서 가자

  군산시립도서관 뒤편에 작은 공원과 산책길이 있다. 그 길을 걷다 보니 포장된 산책길 옆 잔디밭이 붉은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포장된 산책길로 가려면 몇 걸음 돌아가야 하고 잔디밭으로 가면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편리를 찾는 사람들 발길에 풀이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 걸음 수를 세어 보았다. 포장길로는 아홉 걸음, 풀밭으로는 일곱 걸음이다. 딱 두 걸음. 두 걸음 아끼기 위해 풀밭은 벌거숭이 맨땅이 되어버렸다. 한 사람 한 사람은 풀밭에 겨우 두 걸음 딛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밟고 또 밟으니 풀은 아예 자라날 수가 없다.


  붉은 황톳빛 맨땅을 보며 다른 이들에게 사나운 눈초리를 보내고 가시 돋친 말로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살짝 째려보고 지나가듯 한마디 던졌을지라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런 작은 상처를 받고 또 받으면 그 사람의 마음에도 풀 한 포기 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겨우 두 걸음이다. 정해진 길로 돌아가면 풀들에게 피어날 시간을 줄 수 있다. 두 걸음만 돌아서 가자.(15.6. 5, 23.12.17)


                                                                                       ⓒphotograph by soddongguri(15.6.3)





작가의 이전글 아들과 내 바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