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와 허벅지가 터질 듯
소라게는 외골격이 없다. 식탁에서 만나는 골뱅이나 칠리새우처럼 마냥 부드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연한 살을 내놓고 살 수는 없으니 소라게는 빈 소라 껍데기를 겉옷 삼아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 몸이 커지면 더 큰 소라 껍데기를 찾는다. 우리가 옷을 갈아입고 이사를 하듯 제 몸에 맞는 소라 껍데기로 바꾸는 것이다.
아들 나이 열다섯, 이제 중학교 삼 학년이 되었다. 코로나로 집에 틀어박혀 지냈지만 겨울을 지나며 훌쩍 키가 자랐다. 성장한 소라게가 새 소라 껍데기가 필요하듯 아들도 더 큰 교복이 필요해졌다. 동네 수선집에 가서 교복 바지 단을 내려 한 뼘 정도 길이를 늘였다. 셔츠는 수선이 안 되어 두 벌을 새로 샀다. 교복 치고 턱없이 비쌌지만 훌쩍 큰 아들을 생각하니 마음은 흐뭇하였다.
나는 아무렇게나 입는 편이다. 사실 신경 써 입어도 별로 태가 나지 않으니 차라리 무심하다. 아들은 나름 멋쟁이다. 학원에 갈 때도 꽤 맵시를 내곤 한다. 그러더니 이제는 교복뿐만 아니라 평상복도 몸에 맞지 않게 커버렸다.
아들은 내 옷 중에 학원에 입고 갈만한 옷이 없는지 물었다. 설마 하며 내 청바지를 꺼내 주었더니, 딱 맞는다. 내게는 헐렁한 바지가 아들에게는 조금은 끼게 딱 맞았다. 엉덩이와 허벅지는 터질 듯하다. 키는 아직 나보다 엄지만큼 작지만 다리는 나보다 길어 바지 길이가 딱 맞는다.
아들은 몸집만큼 힘도 세져서 이제는 아빠를 힘으로도 이겨보려 한다. 화장실에 가다가 부엌으로 가다가 마주치면 피해 가지 않고 몸싸움을 걸어온다. 씨름하듯 밀고 당기다 결국에는 아빠를 침대에 내동댕이 치고서야 제 갈길로 가버린다.
주말에 집에 가면 아들은 제 방에서 함께 자자 한다. 싱글침대라 가뜩이나 둘이 자기에 좁은데 이제 아들 덩치가 커져서 더더욱 비좁다. 하지만 중삼 아들이 함께 자자는데 마다할 아빠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아버지와 함께 잠을 잔 게 언제인지 모른다. 국민학교 이삼 학년 때 아궁이에 불을 때는 사랑방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잔 게 마지막이다. 그때 이후로 부모님과 함께 잠을 잔 적은 거의 없다. 가족 여행을 갔을 때 한 집에서 잠을 잤을 뿐 한 이불에서 잔 적은 없다.
언젠가 아버지가 병실에 계실 때 다리가 저리다고 동생과 어머니에게 다리를 주물러 달라 하셨다. 내게는 그러지 않으셨다. 큰아들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아버지 손을 잡고 아버지를 안아본 게 언제인지 모른다.
그때는 다 그랬다. 그때 사람들은 당연히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아버지와 나는 그때 사람이다. 아들과 나는 지금 사람이다. 아버지와 나는 전기도 겨우 들어온 마을에 장작불을 떼며 살았다. 아들은 신도시 아파트에서 태어나 넷플릭스를 보며 살았다. 아버지와 나는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을 빼곤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딸기, 인삼, 고추, 마늘, 배, 사과, 벼... 농사는 지겹고 지루했다. 지금 아들과는 연결점이 거의 없다. 겨우 주말이 되어서야 함께 자전거 타고 호수공원에 가거나 정발산에 오를 뿐이다.
아기 때, 곤히 자는 아들의 날숨은 참으로 달콤했다. 자는 아들 옆에 누워 자는 아들 얼굴을 들여다보다 아들의 날숨을 들이마시면 꿈꾸듯 행복하였다. 지금도 그 숨 내음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금요일, 집에 가면 아들 방에서 자야겠다. 아들이 쫓아낼 때까지는 아들 얼굴을 매만지고 숨소리를 들으며 함께 잠들고 싶다.
(21.3.21, 23.12.10)
ps. 지금 아들 고2, 쫓겨난 지 오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