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저녁 무렵 은파호수를 한 바퀴 돌기 위해 집을 나섰고 한 초등학교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1톤 트럭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전조등을 번뜩이며 달려왔다. 아무리 방과 후이지만 초등학교 앞에서 과속한다 싶어 기분이 살짝 상했다. 내 바로 뒤에 멈춰 선 화물차는 오른쪽으로 차머리를 내밀며 옆으로 지나가고 싶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내 오른쪽에는 무단주차가 되어 있어 내가 비켜주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정지선을 정확히 지키고 있었고 횡단보도에는 사람들이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비켜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차가 과속한 것에 대해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켜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파란색 1톤 트럭을 보니 혹시 생계형 운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사람들이 다 길을 건넜기에 횡단보도 중간까지 차를 앞으로 빼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트럭은 내 옆으로 지나갔다. 그렇게 지나가고 말 줄 알았다.
그런데 트럭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큰소리로 한마디를 던졌다. 창문이 내려가는 찰나, 그 짧은 시간에 혹시 욕을 하려나 긴장했는데, 날아온 한 마디는 “고맙습니다!”였다.
이 한마디에 속 좁게 생각한 것과 왠지 생업으로 바쁜 분에게 미리 비켜주지 못해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그 트럭 운전자는 나와 다시 만날 일도 없고 만난다 해도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다.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분이 얻을 이득은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받은 작은 양보에 고마움을 표하니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었다.
은파호수에 가는 동안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가 좋은 노래 후크처럼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날 호수를 걷는 내내 밤바람은 유난히 상쾌하였다. (15.6.2, 23.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