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 서쪽으로 일 층짜리 본관이 있었다. 검은 아스팔트를 칠한 오래된 목재 건물이었다. 교무실이 가운데 있었고 현관에는 ‘학교종’이 매달려 있었다. 교사 앞쪽에 넓은 운동장이 있었고 운동장 가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있었다. 플라타너스는 그곳을 기억하는 가장 강렬한 상징이다.
조회시간이었을까? 학년별로 양팔 간격으로 줄지어 서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이웃 마을까지 퍼져 나갔다. 그리고 체육복을 입은 선생님이 구령대에 올랐고 담임 선생님은 자기 반 학생들과 마주 보고 섰다. 구령대 선생님의 호각소리에 맞추어 국민체조가 시작됐다. 그때가 삼십 년 전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요즘 다시 이 체조를 아침마다 하고 있다. 체조를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아침잠에서 깨어나는 것이고 둘째는 건강하기 위함이다. 원래 잠이 많은 편이라 쉽게 떨치고 일어나지 못한다. 잠이 덜 깨어도 억지로 일어나 국민체조를 하면 확실히 잠이 깬다. 샤워까지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하다. 일찍 일어나 국민체조를 하면 이렇게 여유로운 아침시간을 얻을 수 있다.
원체 몸이 유연하지 못하고 뻣뻣하다. 살면서 등산도하고 산책도 해왔지만 유연성을 위한 노력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 VJ특공대에 70대 체조의 달인 할머니가 출연하였다. 다리를 펴고 허리를 굽히면 가슴이 무릎에 닿았다. 왕년에 체조 선수였나 싶을 정도로 유연했다. 할머니는 육십 세까지 국민체조 한번 안 해본 너무나 평범한 분이었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 이곳저곳 아파 오자 육십이 넘어 혼자 체조를 시작했다. 십 년 넘게 동네 공원에서 꾸준히 운동을 했더니 지금은 유연성이 이십 대 젊은이 못지않게 되었다. 겨우 5분간의 체조로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5분 국민체조는 하나의 계기이다.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시작이고 하루를 여는 신호이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언뜻 보면 더 이상 갈림길이 없어 보인다. 이제는 삶의 형태가 다 갖춰지고 다 드러나 더 이상 새로운 것도 발전될 것도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살던 대로 사는 수밖에 없을 것만 같다.
그렇지 않은 것이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변할 수 있고 늦지 않았다. 체조 할머니는 육십에 시작해서 칠십에 팔팔하시다. 결코 늦은 때는 없는 것이다.
동편 창밖은 아직 깜깜하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국민체조를 시작한다. (17.2.15, 24.10.15)
사진_호수공원산책길ⓒsoddongguri(24.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