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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08. 2022

고맙다! 내 딸 최고!

에피소드 1-나는 딸이었다

엄마, 옷 입고 있다가 딩동~ 하면 문 잘 닫고 복지관 다녀오세요. 지팡이도 꼭 가지고 가시고요.”

 “전화 오면 옆으로 찍~ 밀어서 받으세요. 지금 한번 걸어 볼게요.”

"맞아요, 그렇게 받으면 되요. 잘 했어요."

 “고맙다! 내 딸 최고!”     


 요즘 아침마다 매일 친정어머니와 주고받는 이야기이다. 요즘 어머니는 장기요양급여 4등급을 받으시고 주간보호센터를 나가고 계시다. 스마트폰으로 전화받는 것을 가르쳐드려도 다음 날이면 또 잊어버리고 전화를 못 받으신다. 아들, 며느리가 전화하면 받으시고도 조금 후에 전화받은 걸 잊어버리고 전화 온 줄 알고 또 전화를 건다. 요즘 저녁에 퇴근하면 전화를 확인하고 내 이름만 남기고 통화 목록을 지워드린다. 안 그러면 반복해서 전화를 자꾸 걸기 때문이다.     


 지난주 일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낮잠을 주무시고 나오신 친정어머니가 나를 보고 하신 말씀이다.

“여기 앉아 있던 아저씨 어디 갔어?”

 친정어머니가 남편을 두고 한 말이다. 코로나 확진 후 어머니의 인지능력이 점점 더 나빠지는 느낌이다.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고 치매 증상을 보여 퇴직하기 전까지 낮에 돌봐주실 요양보호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변에 말하다가 장기요양급여 등급을 받으면 국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국민보험공단에 장기 요양 인정 신청을 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관심이 없던 주야간보호센터나 요양원 등에 관해서도 알아보게 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팔 탈골로 입원하신 것조차 기억 못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총명하던 어머니도 나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의료보험 공단에 장기 요양 인정 신청을 하고 몇 주 후에 공단에서 담당자가 나와 어머니께 여러 가지를 질문하고 상태를 살피고 가셨다. 가시면서 이번에는 어려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연세가 있어서 대상이긴 하지만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안 되어 더 좋아질 확률이 크기 때문에 등급이 바로 안 나올 거라고 하셨다. 병원에서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고 결과가 오길 기다리던 중 이번에는 등급을 못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다렸다가 다시 신청하면 되지 뭐.’     


 두세 달이 지난 후 다시 한번 등급 신청을 하였다. 공단에서 오신 분이 어머니 보고

 “어르신, 좀 어떠세요?”

라고 하시자 친정어머니가 냅다

 “뭐가 좀 어때, 이렇게 누워 있느니 죽는 게 낫지.”

 그 말씀을 들은 공단 직원은 몇 마디 물어보지도 못하고 어머니의 증세를 다시 확인하고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의사 소견서를 다시 제출하고 기다렸는데 4등급으로 확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장기 요양 인정등급은 아주 심한 1등급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조금 필요한 5등급으로 되어 있는데 어머니가 4등급을 받았으니 그렇게 심각한 요양 등급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등급을 받은 후 모임의 언니가 소개해준 주야간보호센터에 연락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방문하기로 하였다. 집에서 혼자 계시는 것보다 센터에 가시면 친구분들도 있고, 식사도 챙겨주고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해서 좋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직장에 지각 신고를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로 하였다. 어머니도 한번 가보겠다고 약속을 하셔서 별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거실에서 어머니 목소리와 남편 목소리가 들렸다.

 “얘가 날 정신병원에 데려가려고 거짓말을 시켰어. 난 안 갈 거야.”

 “어머니, 영아가 무슨 거짓말을 시켰다고 하세요.”

 남편은 60이 넘은 날 영아라고 지금도 부른다.

 사실 공단에서 직원이 나왔을 때 어르신들이 너무 똑똑하게 대답하여 등급을 계속 못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대답하는 연습을 좀 했었는데 주무시다가 번뜩 그 생각이 난 모양이다.

 겨우 어머니를 달래서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그날은 주무셨다.    

 

 다음 날 남편은 출근하고 어머니께 복지관인데 한번 가보고 마음에 안 들면 가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모시고 갔다. 센터는 생각했던 것보다 넓고 깨끗했으며 어르신들도 많이 계셨다. 갈 때까지 내키지 않아 하던 어머니는 가시자마자 복지사님의 안내로 할머니들이 계신 곳을 가시더니 좋아하셨다. 어머니께서 평소에도 워낙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빨리 적응하실 것 같았다. 상담하고 어머니를 남겨두고 출근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주 야간 보호센터에 다니시는데 지금은 친구분들이 전화하면

 “복지관에 가서 5시 30분에 와서 전화를 못 받았어. 거기서 저녁까지 먹고 와서 아주 편해.”

라고 하시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시는데 그 모습이 나는 너무 씁쓸하다.    

 

 이렇게 시작된 주간 보호센터 생활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다녀오시면 낮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시며 아이들처럼 좋아하신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말 심한 어르신도 있으신 것 같아 아직은 의사 표현도 하시고 혼자서 옷도 입으시고, 양치도 하시는 어머니가 그저 감사할 뿐이다. 처음 퇴원하고 올라오실 때는 잘 걷지도 못하시고 목욕도 시켜 드려야만 했는데 지금은 목욕 준비만 해드리면 혼자서 머리도 감고 목욕도 하시게 되었다.


 주야간보호센터는 월 150~160만 원 정도 급여비를 내야 하는데 등급을 받으면 다행스럽게 정부에서 보조받아 30~40만 원 정도의 급여비를 내게 되어 큰 부담은 안 되었다. 그동안 어머니가 회갑을 하신 해부터 우리 삼 남매는 통장으로 매달 용돈을 조금씩 입금해 드렸기 때문에 지금도 남동생들이 매달 입금해 주고 노령연금도 30만 원을 받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 그저 어머니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말고 오래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나도 조금 있으면 퇴직을 하니까 그땐 시간도 많아 어머니를 잘 돌보아드리고 어머니와 추억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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