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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08. 2022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다

에피소드 1-나는 딸이었다

어느덧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언제나 똑같은 계절은 없다.

반복되는 일에도 매번 최선을 다한다.

  -전소영 그림책 ‘연남천 풀 다발’ 중      



 얼마 전 퇴직한 선배님이 퇴직 인사를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뇌수술을 받으시고 치료하면서 속상함이 있으셨던 것 같다.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어요. 후배님들도 지금 건강하고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것을 감사하며 사세요.”

 나도 이제야 그 말을 실감한다.


 평생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으셨던 친정어머니께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생겼다. 어머니의 자랑이 ‘나는 건강하여 평생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고 수술도 안 했다.’는 거였는데 연세가 드시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2020년, 2021년은 코로나19로 친정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매일 전화로만 안부를 묻곤 하였다. 2021년은 백신 접종이 70세 이상부터 시작되던 때여서 5월에 2차 백신 접종을 하게 된 어머니를 간호하기 위해서 연가를 내고 강릉에 내려갔다. 1차 접종 때는 큰 동생이 내려갔고, 이번에는 내가 겸사겸사 내려가기로 하였다. 남편과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강릉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탔다. 예전에는 고속버스나 자가용으로 내려갔지만 KTX가 생기고부터는 늘 기차를 이용하고 있다.      

 집에 도착하자 친정어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셨다. 다음 날 백신 접종을 해야 하기에 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저녁을 먹고 그날은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오랜만에 만난 친정어머니는 예전에 비해 많이 늙으신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혼자 생활하실 수 있음에 늘 감사하다.      


 다음날 어르신들 모이는 장소로 어머니를 모시고 가니 그 동네 반장님이 나와 계셨다. 두 대의 승용차로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서 백신 접종을 해 주신다고 해서 우린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백신을 맞고 오셔서 해열제를 드시고 누워 계시게 하였다. 함께 TV도 시청하고 옛날이야기도 하며 쉬었다. 우리가 비를 몰고 가는지 이상하게 우리가 강릉에 가면 비가 오는 날이 많아서 거의 집에서 보내다가 서울로 올라오곤 한다. 이번에도 이틀 동안이나 비가 와서 집에서 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백신을 맞으시고 별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아 너무 다행이었다. 이틀을 강릉에서 보내다가 우린 서울로 올라왔다.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연세 드신 어머니를 혼자 두고 올 때면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는 혼자 계시는 것이 편하고 동네에 친구분들도 있어서 심심하지 않다고 하신다. 어머니 의견을 들어 그렇게 하고는 있지만 자식으로서 죄송한 마음이 크다.

인동덩굴-제주 검은오름에서

 강릉을 다녀오고 1주일 뒤에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마당에 있는 인동 덩굴을 자르려고 잡아당기다가 좁은 골목 벽에 부딪혀서 다쳤다고 하시는 거다. 잠시 정신도 잃으셨다고 하니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금방 달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 윗집 사모님께 연락을 드려 내려가 보시도록 부탁드렸다. 윗집 사모님은 어머니와 40년 정도 이웃으로 살고 계신 분이라 혼자 계신 어머니를 늘 챙겨주시는 고마우신 분이다. 엄마가 많이 다치지 않으셨는지 살펴봐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혼자 계시는 노인들을 위해 강릉 시청에서 위탁하여 돌보아주는 관리사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뼈에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해서 약간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다음 날 어깨가 아픈 것 같다고 해서 관리사님께 병원에 모시고 가달라고 부탁드렸다. 병원에 모시고 가서 X-Ray를 찍어보니 탈골이 되어서 팔을 맞추고 팔걸이를 하고 왔다고 했다. 어머니께 팔걸이는 절대 풀지 말고 무거운 것은 들지 마시라고 신신당부하며 금요일에 내려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남편과 내려가 보니 팔이 아프지 않다고 팔걸이도 풀고 집에 있는 재활용 등 무거운 것을 손수레로 끌고 가서 버리고 오셨다는 거다. 병원에서 주신 진통제를 드시니까 아프지 않은 건데 다 나으신 걸로 알고 그러신 것 같다. 걱정되어 토요일에 정형외과에 가서 다시 X-Ray를 찍어보았다. 다니시던 병원이 토요일은 운영하지 않아 다른 병원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심각하게 말씀하셨다. 다시 어깨가 빠져서 맞추기는 했는데 뼈가 부서질 까 봐 제대로 맞추지 못해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거다. 의사 소견서를 써 줄 테니 수술은 아산병원에 가서 해야 한다고 했다. 걱정이 너무 되었다.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하였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일단 팔걸이를 풀지 않도록 하고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월요일에 올케가 내려온다고 하여 우린 출근을 해야 하기에 일요일에 서울로 올라왔다. 엄마 혼자 두고 올라오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올케가 내려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충주에 있는 병원에 입원시켰다.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빈혈이 심하고 영양상태가 너무 안 좋아 지금은 수술할 수 없다고 했단다. 혼자 계시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신 것 같다. 너무 속상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병원에서는 팔을 풀지 못하도록 어깨띠뿐만 아니라 붕대로 오른팔을 몸에 고정시켜 팔이 붙도록 하는 것 같았다. 병원에 계시는 동안 올케가 아침부터 밤까지 어머니를 간호하느라고 고생하였다. 병원에서 수술하고 입원하신 지 19일 만에 퇴원하셨다. 퇴원하고 아들 집에서 어깨 팔걸이를 풀 때까지만 모시고 있었으면 좋으련만 병원에서 퇴원하며 집에도 안 들르고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너무 놀랐다. 환자도 그런 환자가 없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셨는데 정신도 없으신 것 같고 완전 얼이 나가신 것 같아 저절로 눈물이 났다.      


 우리 집에 오셨지만 나와 남편이 출근해야 하기에 아침을 간단히 차려드리고 점심도 쟁반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고 출근하였다. 낮시간 동안 혼자 계시는 것이 너무 걱정되어 오후에 조퇴하고 일찍 들어가기도 하고 재택근무하는 아들에게 부탁해서 우리 집에서 일하게도 하였다. 혼자서 식사도 차려 드시지 못하고, 식사할 때는 연신 코를 푸느라 옆 사람이 불편하기도 하였다. 우리 집에 오셔서 마음이 조금 편해지셨는지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이 보였다. 집에 온 남동생과 올케도 어머니가 많이 좋아지신 것 같다고 누나 수고 많다고 하며 안심하고 돌아갔다.     


 친정어머니는 요즘 늘 말씀하신다.

 “딸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을까.”

아들보다는 내가 편한 것 같고 나도 아직은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친정어머니를 돌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몇 년을 우리 집에 함께 사시면서 딸 힘들다고 아이들을 보살펴 주신 어머니다. 당연히 퇴직 후에는 내가 모시려고 했는데 그 시기가 조금 당겨진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에게도 잘해 드리라고 늘 부탁을 한다.

 “어머니, 더 나빠지지 말고 지금처럼 오래 사셔요.”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란 말을 요즘 가슴에 늘 새기며 산다. 남보다 부족한 것을 속상해하지도 않으며, 편하게 여행만 다니는 퇴직한 친구들을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냥 매일매일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머니가 요즘 허리가 많이 안 좋아서 잘 걷지 못하셔도 아직 인지능력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평범한 일상이 우리에겐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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