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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09. 2022

친정어머니 얼굴에서 나를 본 날

에피소드 1-나는 딸이었다

 작년 이맘때 일이다.

“내가 생전 안 넘어졌는데 새벽에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서 얼굴에 멍이 들고…….”

 친정어머니께서는 86세로 강릉에 혼자 계시기에 늘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된다. 그런데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12월에 뵙고 여태 뵙지 못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코로나를 왜 그렇게 겁내 했는지 웃음이 나온다.


 전화 통화는 가능하면 매일 한 번은 하려고 다짐하지만 바쁘면 그것도 못 할 때가 있다. 어머니와 통화하고 걱정이 되어 5월 연휴 때 강릉에 내려가겠다고 했더니 아직은 위험하니 차로 내려오면 모를까 대중교통 타고 오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냐고 하시며

“나는 괜찮으니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천천히 내려오라.”

고 하신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내려가면 좋아하실 것 같아

 남편에게 

 “엄마가 다치셨다는 데 가 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넌지시 말을 꺼냈더니 5월 연휴에 한 번 내려가자고 한다. 그런 남편이 고마웠다.     


 5월 연휴 때 KTX를 타고 강릉에 갔다. 친정어머니께서는 너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얼굴에 아직 멍 자국이 남아있고 팔에도 상처가 있었다.

 “정말 큰 일 날 뻔하셨네요. 뼈를 안 다친 게 천만다행입니다.”

남편이 말하자

 “나도 이제 많이 늙은 것 같아. 다리에 힘도 없고…….”

 잔주름도 많지 않으셨고 목소리도 청청하여 전화 목소리로는 젊은이 못지않으신데 오랜만에 뵌 친정어머니는 예전보다 허리도 굽어지고 얼굴도 야위어 많이 늙어 보였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래 사셔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우리 집에 모셔 가고 싶었지만 친구분들이 있는 이곳이 더 좋다고 하셔서 억지로 모시고 갈 수가 없어 마음만 속상해진다. 주방의 냉장고와 싱크대 등이 엉망이라 버릴 것은 버리고 청소해 드렸다. 맡 반찬도 몇 가지 해드리고 말동무도 하며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내다 올라왔다. 그래도 잠깐이지만 직접 뵙고 올라오니 안심이 되었다.    

 

 친정어머니 얼굴에서 나를 보았다. 눈도 점점 작아지는 것 같고, 흰머리도 많이 나왔다. 이마에 주름도 잡히고, 했던 말 또 하고, 허리도 많이 굽어지신 것 같다. 머리숱도 줄어들었고 반찬도 자꾸 짜게 만드신다. 깜박깜박하시고 자꾸 누우려고 하신다. 나와 똑같다. 나도 요즘 무슨 일을 하면 피곤하고, 눈도 잘 안 보여 책을 읽으려면 꼭 돋보기를 끼고 본다. 방에 무엇을 가지러 들어갔는데 생각이 안 나서 다시 거실로 나온다. 깜박깜박할 때가 너무 많다. 

 나도 나이 들면 친정어머니처럼 될 것 같다. 친정어머니처럼 곱게 늙어도 좋다. 하지만 더 건강하였으면 좋겠고 자식들에게 짐이 안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친정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교사셨는데 암으로 51세 초겨울에 세상을 떠나시고 한 번도 돈을 벌어보지 못한 어머니께서 하숙을 치며 동생들을 공부시켰다. 아버지 퇴직금이 조금 있었지만 나중에 아들 결혼할 때 집 사는데 보태주어야 한다고 쓰지 않고 가지고 있으셨다. 큰 동생은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까지 진학을 했고, 작은 동생은 의대라 생각보다 학비도 많이 들었다. 맏딸인 나는 2년제 대학을 나와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한 터라 어머니께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드리긴 하였지만 친정어머니께서 힘이 많이 드셨을 것 같다. 내가 동생들 학비를 좀 보태드려서인지 지금도 우리 큰 딸이 최고라고 하시며 딸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냐고 하신다.  

    

 나는 결혼하고 아이가 없어 걱정이었는데 5년 만에 임신이 되었다. 큰아이 낳기 한 달 전부터 친정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올라오셔서 함께 살게 되었다. 직장에 다니는 딸을 위해 손자 육아를 맡아 주신 거다. 16개월 만에 둘째를 또 출산하게 되어 거의 쌍둥이 같은 손자를 돌보시느라고 많이 힘드셨을 텐데 한 번도 힘들다고 안 하셨다. 큰애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손자를 돌보시다가 강릉으로 내려가셔서 혼자 살고 계시다.

 어머니가 회갑을 맞이하셨을 때부터 친정 3남매가 매달 통장으로 용돈을 보내드리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용돈이 있어 친구분들께 가끔 점심도 사시고 자랑도 하신다. 자식들은 용돈을 아끼지 말고 맛있는 것도 사드시고 옷도 사 입으라고 하는데 모은 용돈으로 많지는 않아도 손주 입학할 때 용돈도 주시고 졸업할 때도 축하금을 주신다. 그런 할머니를 모두 좋아한다.  

   

 우리 집 둘째가 장가를 가서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손자가 5개월 정도 되었을 때부터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2박 3일 동안 우리 집에 데려와서 봐주고 있다. 며느리는 1주일 동안 힘들었으니 집에서 좀 쉬라고 하고 아들과 쌍둥이 손자만 우리 집에 온다. 주위에서는 직장도 다니는 분이 힘들게 주말까지 손자를 보면 너무 힘들지 않겠느냐고 한다. 나도 작년에 회갑을 했기 때문에 체력도 떨어지고 허리도 좀 아프고 힘들긴 하다. 하지만 친정어머니가 우리 아이들을 돌보아 주셨듯이 나도 손자들을 돌보아 주는 것이 보람도 있고 너무 행복하다. 그런 나를 걱정해서 주말이면 어김없이 친정어머니께서 전화하신다.

 “쌍둥이 왔냐? 우리 딸 힘들어서 어떡하니. 아픈 데는 없고?”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는 늘 자식 걱정이다. 60이 넘은 딸인데도 마냥 아기처럼 대하신다. 그런 어머니 사랑에 나는 1/100도 보답 못 하는 것 같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해요. 어머니 은혜에 보답하려면 아직도 멀었거든요.’

 친정어머니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서 증손자 효도까지 받으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요즘 인지 기능이 많이 떨어지시는 것 같아 걱정이다. 노인성 치매가 시작되는 것 같아 너무 두렵다. 제발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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