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우리 교회 총권사회가 제2 성전에서 있었다. 우리 교회는 본당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제2 성전이 있다. 제2 성전은 시골 같은 곳이다. 들어가는 길도 구불구불 산길이라 운전을 잘하는 사람만 가능하다.
제2성전 뒷산에는 밤나무가 많다. 밤나무가 오래되어 키가 정말 크다. 작년에도 이맘때쯤 총권사회가 있었는데 점심 식사 후에 밤 줍던 것이 생각나서 집에서 비닐봉지 두 개를 챙겨갔다. 하나는 함께 밤 주우러 갈 다른 권사님께 드리려고 한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하여 자리에 가방을 두고 친하게 지내는 권사님과 뒷산으로 갔다. 권사님께서 차에 집게가 있다며 꺼내주셔서 나도 비닐봉지를 드렸다. 우리 말고도 밤 줍는 분들이 계셨다. 혹시 밤을 주우러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구두대신 편한 운동화를 신고 왔는데 잘했단 생각이 든다.
산 아래에도 밤송이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산 아래쪽 밤송이 사이에 떨어져 있는 밤은 벌레 먹은 밤이 많았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떨어진 밤이 보였다. 밤송이에도 밤이 들어 있어서 밤을 꺼내 봉지에 담았다. 집게가 큰 역할을 하였다.
밤 줍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제법 알이 굵은 밤도 많이 주워서 신났다. 밤이 많아서 한참 주웠는데 작은 봉지에 가득 찼다. 밤은 권사님 차에 두고 행사장인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아직 예배가 시작되지 않아서 물도 마시며 기다렸다.
예배 후에 점심 식사를 하고 시간이 있어서 2차 밤 줍기를 하러 갔다. 아침에 주워서인지 밤 줍는 요령이 생겨서 알이 굵고 좋은 밤을 주웠다. 시간이 없어서 많이 줍진 못하고 30개 정도 줍고 내려왔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가 보다. 평소에는 보물 찾기라던가 행운권 뽑을 때 잘 뽑지 못하는데 오늘은 보물찾기 쪽지도 찾아서 행운의 30명 중 한 명이 되어 선물도 받았다.
집에 와서 주워온 밤을 물에 담갔다. 함께 밤 주운 권사님이 밤을 물에 담가서 뜨는 것은 벌레 먹은 밤이라 건져서 버리라고 했다. 생각보다 물에 뜨는 것도 많았고, 밤에서 벌레도 몇 마리 기어 나왔다.벌레는 물론 남편이 처리했다.
요즘 시력이 나빠져서 벌레 먹은 밤까지 모르고 주어 온 거다. 그래도 다행히 남은 밤이 더 많았다. 밤을 까서 냉동실에 넣었다가 약밥 할 때 넣으려고뜨는 밤을 건져내고 밤 껍데기를 벗기기 시작했다.
밤껍데기 벗기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겉껍질을 벗기고 속껍질까지 벗겨야 한다. 밤을 까며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친정엄마는 가을이면 밤을 사서 껍질을 벗겨서 추석에는 밤 송편을 만들어 냉동시켰다가 주셨다. 깐 밤도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우리가 가면 싸 주셨다. 이렇게 힘들게 까신 줄도 모르고 먹기만 했었다.
처음에는 밤 까는 것이 힘들어 괜히 밤을 주워와서 고생한다고 생각했는데 깐 밤을 보니 뿌듯했다. 지퍼백에 나누어 냉동실에 넣었는데 밤을 넉넉히 넣은 약밥을 서너 번은 만들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알이 굵은 밤도 있어서 슈퍼에서 파는 밤 몇 개 들어있는 것과는 맛이 다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힘들겠다며 내일 하라고 했지만, 성격상 일을 두고 자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밤늦게까지 밤을 다 깠다. 고생했다며 남편이 뒷정리는 해 주었다. 나중에 맛있게 약밥 만들어 먹을 생각에 손이 아픈 것도 참으며 밤을 깠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은 이때 사용하는 말 같다. 그래도 밤을 주워오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