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0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일벌레 남편의 슬기로운 은퇴생활

‘국내여행도 다 못하는데 외국은 뭐 하러 가’라고 말하던 남편이 달라졌다

by 유미래 Mar 10. 2025
아래로

남편은 일벌레였다. 한 회사에서 35년 이상을 근무하고 60세에 퇴직하였다. 보통 ‘퇴직’은 ‘현직에서 물러남’을 뜻한다. 하지만 퇴직과 비슷한 의미인 ‘은퇴’는 ‘현직에서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냄’을 뜻하니 현직에서 물러나도 새로운 직업을 찾으면 은퇴는 아니다.     


남편은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한 후에 한 달 정도 지난 뒤에 같은 동종 업체에 취업하였다. 퇴직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는 작은 규모의 회사였지만 하는 일은 비슷하여 그 업체에서 남편의 능력을 인정하고 도움을 받아 성장하고 싶어서 부사장이란 직책으로 모셔갔다.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도 성실하게 일하며 건설 관련 회사였기에 공사를 수주하여 회사가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3년쯤 다니다가 퇴사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 2년 정도 쉬게 되었다.


쉬는 동안 즐겁게 여유를 즐기며 놀아도 되는데 거의 집에만 있고 밖에 나가지 않았다. 집에서 그저 옛날 사극이나 보며 지냈다. 충분히 일할 수 있는데 하는 일 없이 집에만 있는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며 우울증도 오게 되었는데 다시 아시는 분 소개로 비슷한 동종 업체에 부사장으로 취업하게 되었다. 퇴직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장인 후배가 회사에 와서 도와 달라고 해서 출근하게 되었다.   

  

출근하는 남편은 활기가 넘쳤고 퇴직 전처럼 의욕적으로 일하였다. 나도 그사이에 퇴직하게 되어 시간이 많았지만, 남편이 일하기 때문에 함께 놀지는 못했다. 일벌레인 남편은 일하는 것을 즐거워했고, 친구들은 거의 은퇴하고 놀고 있었는데 60대 후반에 일하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국내 여행도 다 못하는데 외국은 뭐 하러 가.     


퇴직한 나는 시간이 많아서 여행도 가고 싶고 즐겁게 놀고 싶었다.   

  

“여보 우리 동남아라도 다녀올까요?”     

“국내 여행도 다 못하는데 외국에는 뭐 하러 가.”     


라며 여행 가는 것에 반대하였다. 그렇다고 쉬는 날 국내 여행을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일하기에 휴일에는 쉬고 싶어 했다. 그런 남편이 야속하기도 하고 원망스러웠지만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었다.     


undefined
undefined
망막 수술 받기 위해 입원한 남편


그러다 지난 11월에 안과 병원에서 망막에 구멍이 뚫리고 백내장까지 있어서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하면 두 달 정도는 회복하느라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해서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11월 말로 은퇴하였다. 그때가 만 70세가 지난 시점이었다. 70이 넘도록 일했으니 이젠 쉬어도 될 나이였다.    

 

12월 초에 수술하고 집에만 있는데 며느리가 찾아왔다.     


“아버지 퇴직 기념으로 가족여행 다녀올까요?”     

“어디로 가려고?”     

“한국이 추우니까 베트남 같은 동남아로 가면 어떨까요?”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비행기 타도 되는지 여쭈어보고 결정하자.”     


그토록 외국 여행은 가지 않겠다던 남편이 은퇴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 생각이 바뀐 것은 얼마 전에 지인 모임에 다녀오고부터였다. 지인 중에 78세이신 형님이 계셨는데 젊었을 때부터 버킷 리스트가 남미 여행이었단다.     


이제야 여유가 생겨서 여행사에 예약하려고 했더니 나이가 많아 젊은 보호자가 함께 가야 가능하다고 했는데 함께 갈 보호자가 없어서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본인은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남미 여행 가기에는 많은 나이였던 거다. 남미 여행은 여행 경비도 만만찮아 함께 갈 분을 찾지 못해 아쉽지만 포기하고 말았단다.     


"자네들,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여행도 가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아. 그래야 나중에 후회 안 돼."

"형님, 많이 속상하시겠어요."

"다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이는 그냥 나이였어."     


이렇게 말씀하시는 지인 형님에게 무슨 말로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두 할 말을 잊었었다고 남편이 말했다. 그러며 남편도 모임의 형님 말씀을 듣고 그동안 내가 여행 가자고 말할 때 '외국 여행은 뭐 하러 가냐.'라고 말했던 것을 후회했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며느리가 동남아로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하니 속으로 반가웠다고 말한다.     


다행히 수술한 안과 병원에 가서 담당 의사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더니 많이 회복되어 비행기를 타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베트남 푸꾸옥으로 떠난 가족여행    

 

우리 가족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쌍둥이 손자와 아들 며느리 그리고 우리 부부 6명이 지난 2월 17일부터 3박 4일로 베트남 푸꾸옥으로 여행을 떠났다. 2월 들어 한파로 많이 추웠기에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잠시라도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나라로 여행 간다는 생각에 기뻐 잠이 안 왔다.     


며느리 덕분에 떠난 가족여행은 정말 즐거웠다. 베트남 푸꾸옥은 여행객 중 거의 80%가 한국 사람이어서 마치 제주도에 여행을 온 듯 여유가 있고 마음이 편했다. 간단한 영어와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했고, 아들 며느리 덕분에 자유여행으로 왔기에 바쁘지 않고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았다.


푸꾸옥 빈 원더스에서 타고 다닌 버드카푸꾸옥 빈 원더스에서 타고 다닌 버드카


푸꾸옥은 북부와 중부, 남부로 나누어 여행할 수 있는데 우리는 북부에 있는 리조트에 숙소를 예약하여 북부 여행만 하였다. 푸꾸옥 북부는 아시다시피 베트남의 삼성이라고 부르는 빈펄 그룹이 운영하는 리조트와 빈펄 사파리, 베트남 최대 테마파크인 빈 원더스가 있다.     


거기다가 베트남의 베니스라고 부르는 그랜드 월드에서도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고 곤돌라를 타고 운하를 즐길 수도 있다. 주변에는 카페와 음식점,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스파 등이 많아서 가볼 만한 곳이었다. 우리는 3박 4일로 다녀왔는데 짧아서 아쉬웠다. 다음에 간다면 최소한 4박 5일 정도로 다녀오면 좋겠다.

 

남편은 푸꾸옥에 여행 와서 마사지도 받고 리조트 내에 있는 사우나에도 다녀오고, 쌍둥이 손자들과 풀장과 바다에서 수영도 하며 즐겁게 지냈다. 아들과 며느리가 남편을 배려해서 여행이 힘들지 않게 일정을 잡았고 식사도 맞추어 주었다.     


푸꾸옥의 여행객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어서 편의점에서도 한국 라면과 컵라면, 햇반 등을 살 수 있었다. 조식은 리조트에서 먹고 점심은 간단하게 컵라면, 누룽지 등으로 먹었으며 저녁은 한국 식당이나 베트남 식당에 가서 먹었다.      


빈펄 사파리 기린 카페에서빈펄 사파리 기린 카페에서


여행 마지막 날 며느리가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아버지, 여행 어떠셨어요?”     

“좋았다. 오지 않았으면 서운할 뻔했어. 이제부터 엄마랑 가끔 여행 다녀야겠어.”
“그것 봐요. 내가 여행 가자고 하면 뭐 하러 가냐고 하시더니 오니 좋지요?”     

“그러세요, 아버지. 그동안 일하시느라고 고생하셨으니 어머니와 가끔 여행 다니세요.”  

    

아들도 거들었다. 남편은 이번에 푸꾸옥으로 가족여행 다녀온 것이 좋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쌍둥이 손자와 다녀왔으니 더 행복했다고 한다. 남편이 여행 재미를 들였으니 앞으로 어떻게 놀지 기대가 된다.     


아들 며느리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그동안은 주로 패키지여행을 다니느라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여행이 늘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자유 여행으로 여유가 있고 마음 편안한 여행이었다. 아들 며느리가 정말 고마웠다.     


은퇴 이후의 삶은 남편이 잠시 쉬는 동안 집에서 TV만 보며 무료하게 지냈듯이 계획 없이 보내면 허송세월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 완전하게 은퇴하며 남편의 생각이 바뀌었다. 그동안 못했던 여행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며 몸건강 마음건강을 챙겨 저속 노화도 실천하려고 한다.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즐겁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다양한 은퇴 후의 삶을 연재 기사로 작성할 예정이다. 은퇴 후 남편의 다양한 도전을 보며 퇴직을 앞둔 분이나 은퇴하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70세까지 힘들게 일한 남편이 이젠 편하고 즐겁게 은퇴 생활을 즐기길 응원한다. 더불어 나도 퇴직한 지 3년이 다가오니 남편과 함께 운동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며 멋진 노후를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연재 기사로 작성 중인 기사 1화입니다.


https://omn.kr/2cdb9


매거진의 이전글 은퇴한 남편에게 카페에서 브런치 먹자고 했더니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