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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남편에게 카페에서 브런치 먹자고 했더니

슬기로운 은퇴 생활, 첫째는 아내와 잘 지내는 것

by 유미래 Mar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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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 친정엄마 2주기라서 고향인 강릉에 다녀왔다. 친정엄마는 여든여섯에 천식으로 입원하셨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인지가 조금 나쁜 것 빼고는 건강하셨다. 어깨를 다치고 혼자 생활하시기 어려워 돌아가시기 전 2년 정도 맏딸인 우리 집에서 함께 사셨고, 다치기 전에는 강릉에서 혼자 사셨다. 지금도 친정엄마가 사시던 집이 그대로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나는 2남 1녀 중 장녀다. 장남인 큰동생이 친정엄마가 돌아가셨지만, 집을 그대로 두고 3년 정도는 사시던 집에서 제사를 지내드리자고 해서 집을 비워둔 채 그대로 두고 있다. 시간 되는 사람이 가끔 내려가서 살피긴 했지만 거의 집을 비워두어서 냉장고도 꺼두었고, 양념 등이 없어서 음식 하기 불편하니 삼 남매가 음식은 나누어서 준비해서 가지고 갔다.


나는 인천 서구에 산다. 남편은 강릉에 갈 때마다 늘 승용차를 가지고 다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강릉 가는 방법은 강남 고속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거나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되는데 거기까지 가기가 불편하다는 이유였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런 남편이 은퇴하며 달라졌다. 만 65세 이상은 지하철과 도시 철도는 무료이고, KTX도 평일에는 30%나 할인된다며 KTX로 내려가자고 미리 기차표를 예약했다. 내려가는 길이 막힐 수도 있어서 나도 좋다고 했다.


우리 집은 남편의 국민연금과 내 공무원 연금으로 생활한다. 가끔 자식들이 용돈을 주지만 그건 손주들에게 도로 다 간다. 은퇴하고 나서야 연금으로 살아야 하니 절약해야 한다고 남편도 인식하게 되었다.


내일 아침은 카페에 가서 브런치 먹지요


친정엄마 제사를 지내고 작은 남동생은 아직 일하고 있어서 먼저 올라갔다. 친정엄마가 계실 때는 일 년에 몇 번은 엄마가 계신 강릉에서 만났었고, 우리 집에 계실 때도 가끔 우리 집에서 만났었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삼 남매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각자 자기 자식들 챙기느라 바빠서겠지만, 부모님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지니 만나기 힘들었다. 주변에서 보면 여자 자매가 많은 집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자주 만나는데 우리 집처럼 여자 자매가 없는 집은 더 그렇다. 제사 지내고 나서 나이가 가장 많은 남편이 어렵게 말했다.


"어머니 안 계시니 처남들 얼굴 보기도 어렵네. 우리도 나이가 있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올해는 가끔 얼굴 보지."


잠시 숙연해졌지만, 남동생도 올케도 그러자고 했다.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가끔 만나서 밥이라도 먹으면 좋겠다. 그다음에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내일 아침은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며 브런치로 아침 식사하면 어떨까요?"

"좋지요. 강릉에 유명 카페도 있으니 가지요."


 올케가 거들었다. 남편은 그동안 한 번도 일부러 카페를 찾아간 적이 없었다. 우리 집 가까운 곳에도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유명한 호텔식 카페가 있어서 먼 곳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데 가보지 못했다.


쉬는 날이면 한 번씩 가고 싶어서 카페 가자고 말하면 남편은 시큰둥했다.


"뭐 하러 시간 들이고 돈 들여 복잡한 카페를 찾아가. 집에서 편하게 커피 내려서 마시면 되지."


그럴 때마다 말문이 막혔다. 이번에도 안 간다고 할까 봐 긴장했는데 의외의 대답을 했다.


"갑시다."


그 한마디가 어찌나 반갑던지 남편 손을 덥석 잡았다. 강릉은 커피의 고장이다. 일부러 유명 카페에 가려고 방문하는 분들도 있다.


큰 남동생 부부도 모두 퇴직하고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홍천군에 있는 산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 가꾸며 살고 있다. 워낙 시골이라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서 늘 승용차로 움직인다. 나이 들어도 운전면허증 반납하긴 어렵다고 한다. 이번에도 차를 가지고 와서 동생 차로 가면 되었다.


강릉은 그리 크지 않다. 친정집이 강릉 시내라서 대부분 20분 안에 갈 수 있다. 우린 강릉에서 가장 유명한 테라로사 본점으로 갔다.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처음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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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건물을 기대했는데 겉모습은 공장 같기도 했다. 지만 카페 안은 넓기도 했지만 천장이 높아 시원해 보였다. 카페에 들어서는데 구수한 빵 냄새와 커피 냄새에 시장기가 느껴졌다. 빵과 커피를 먼저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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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종류는 베이커리 카페만큼 종류가 많지 않았으나 맛있어 보이는 빵 세 가지와 커피를 시켰다. 아침 대신 브런치를 먹으러 10시경에 왔는데 이른 시간이라 붐비진 않았지만, 앉아 있다 보니 손님이 계속 이어졌다.


브런치 글 이미지 7


분위기 탓인지 남편도 빵도 맛있고 커피도 괜찮다고 했다. 2층까지 있어서 남편과 궁금해서 2층에도 올라가 보았다. 가운데가 뚫려 있어서 1층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처음 카페에 온 기념으로 남편 사진도 찍어주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8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커피 좋아하는 며느리를 위해 남편이 커피를 사 가자고 했다. 며느리가 이곳 커피가 맛있다고 말하는 소리를 나도 들은 적이 있어서 몇 가지 커피 종류를 판매하였는데 그중 드립 커피 가장 큰 팩을 샀다. 푸꾸옥 가족여행에 대한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슬기로운 은퇴 생활 첫 번째가 아내와 잘 지내는 것


나이 들어 은퇴하고 있는 요즘, 남편이 생각도 바뀌고 내 말을 잘 들어주어 고맙다. 어차피 은퇴 후에는 함께 하는 사람이 부부이니, 부부끼리 취미도 같이 하고, 운동도 함께 하고, 여행도 다니며 오늘처럼 카페에도 같이 다니면 즐겁게 노후 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슬기로운 은퇴 생활의 첫 번째는 부부가 잘 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내 마음을 헤아리고 아내와 잘 지내는 것이 슬기로운 은퇴 생활의 첫째 요소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변화하는 것을 보며 앞으로 함께 할 노후 생활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카페에서 나와서 강릉역에서 서울행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 시간이 좀 남았다. 동생네도 시간이 있다고 해서 강릉역 가는 길에 안목 카페 거리를 지나 주차하기 좋은 송정 해변으로 갔다. 송정해변에는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다.


브런치 글 이미지 9


오랜만에 온 송정해수욕장은 날씨까지 좋아서 그 푸르름에 가슴이 탁 트였다. 늘 동해바다를 보며 자라서인지 바다는 동해가 가장 아름답다.


남편이 날씨 좀 풀리면 친정집에서 묵으면 되니 강릉에 와서 1~2주 정도 지내며 동해선 타고 부산도 다녀오자고 한다. 내가 강릉에 오는 것을 좋아하는 걸 알기에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해 주려는 거다. 나는 고향인 강릉 소리만 들어도 늘 가슴이 뛴다.


동해선 노선도동해선 노선도


2025년 1월 1일에 강릉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해선 ITX-마음이 개통되었다. 고속철도가 아니라서 아직은 5시간 넘게 오래 걸리는데 바다를 보며 가니 지루하진 않겠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KTX-이음이 개통되면 2시간 35분 정도에 갈 수 있다고 한다.


강릉은 KTX가 개통되면서 수도권에서는 당일로 다녀올 수 있다. 서울역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니 바다를 보고 놀다가 올라가도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내려올 때도 올라갈 때도 평일이었는데도 빈 좌석이 없었다.


남편이 약속을 꼭 지켜주길 바란다. 강릉에서 1~2주 지내며 동해선 타고 부산까지 다녀올 생각을 하니 벌써 기다려진다. 남편도 은퇴하고 나니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조금 달라지는 남편을 보며 앞으로의 노후 생활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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